[책&생각] 온돌과 붉은 산

한겨레 2022. 8. 12.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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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대서문 소개 푯말에 사진 한 장이 붙어 있다.

조선후기의 무신 구수훈(具樹勳, 1685~1757)은 <이순록(二旬錄)> 에서 산이 헐벗은 것은 온돌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에 의하면 옛날에는 모두들 판방(板房) 곧 마루방에서 지냈고, 온돌방은 노인이 아니면 거처할 수 없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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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관의 고금유사]

영국인 허버트 폰팅이 1903년께 찍은 서울 근교의 모습. 뒤쪽에 민둥산의 모습이 보인다.

북한산 대서문 소개 푯말에 사진 한 장이 붙어 있다. 옛날 대서문 사진인데 주변을 보면 온통 붉은 산이다. 나무 한 그루 없다. 요즘 북한산의 우거진 숲과는 딴판이다. 사진은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촬영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 시기 서울 주변 풍경 사진을 보면, 예외 없이 헐벗은 붉은 산이다. 왜 그리도 헐벗고 붉은 산이었던가?

조선후기의 무신 구수훈(具樹勳, 1685~1757)은 <이순록(二旬錄)>에서 산이 헐벗은 것은 온돌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에 의하면 옛날에는 모두들 판방(板房) 곧 마루방에서 지냈고, 온돌방은 노인이 아니면 거처할 수 없었다 한다. 왕실의 경우도 마찬가지라 왕의 후궁이라 해도 마루방에 지내야 했다. 그러던 것이 자신의 시대 곧 18세기에 와서 보통의 서민들도 모두 온돌방에서 지내고, 방의 크기도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고 한다. 땔나무가 어디서 나오겠는가? 온돌이 3, 4배 늘어나자 주변 산의 푸른 숲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헐벗고 붉은 산은 그렇게 해서 생긴 것이다. 이후 사정은 다 아는 바다. 숲이 사라진 산은 비가 오면 토사를 쏟아내어 물길을 막았다. 산이 물을 머금을 수 없으니 작은 가뭄에도 하천이 말라붙었다. 농토는 척박해졌고 흉년이 자주 들었다. 여기에 더하여 구수훈은 모두가 온돌방에서 지내면서 추위를 견디는 힘이 사라지고 질병에 걸리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한다. 그뿐인가. 숲이 사라지자 짐승들도 사라졌다. 굶주린 호랑이가 인가로 내려와 사람을 해치기 시작했으니, 호환(虎患) 역시 헐벗은 붉은 산의 산물이었다.

대한민국은 20세기 이후 산림녹화에 성공한 유일한 나라다. 나무 심기에 한국인이 쏟은 열정은 높이 평가받아 마땅한 것이다. 그런데 그 울울창창한 숲이 열정만으로 만들어진 것인가? 한국인은 20세기 후반에도 온돌을 포기하지 않았으니, 그 바닥을 데우는 열은 숲이 아닌 다른 데서 가져와야만 했다. 1980년대 초반까지 나무 대신 연탄이 온돌을 데웠다. 달리 말해 식목사업과 함께 시작된 석탄산업이 숲은 키웠던 것이다. 이제 한국의 탄광은 사양산업이 된 지 오래다. 석탄(발전에 쓴다)·석유·가스 등 거의 모든 에너지가 수입품이 된 지 오래다. 한국인이면 너나없이 자랑스러워하는 저 우거진 푸른 숲은, 사실상 수입산 석탄·석유·가스가 키운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생각이 복잡해졌다. 러시아가 천연가스 공급을 완전히 중단하면 독일은 어떻게 될까? 또 우리는? 대서문에서 흥국사 쪽 구릉지의 빽빽한 활엽수림을 내려다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도 한다. 아파트에도 온돌이 있어야 하는 한국 사람들이니, 국제정세의 변화로 석탄과 석유, 가스가 수입되지 않는다면, 혹은 수입량이 줄어든다면, 저 숲들은 온전할까?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장작을 실어 나르는 꼴을 볼지도 모를 일이다. 구수훈이 말했듯 푸른 산이 붉게 변하지 않을까? 또 이렇게 에너지를 대량으로 소비하는 삶이 지속가능한 것일까? 급변하는 세상에 대책이 절실한데, 한쪽에서는 성상납이니, 내부총질이니, ‘비대위’(걸핏하면 ‘비대위’를 만든다! 지겹지도 않은가?)니 하면서 드잡이질로 날밤을 새우고, 한쪽에서는 능력도 없이 과분한 의석을 가지고 그저 세월이나 보낸다. 한심하구나!

강명관/인문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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