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기자가 운영하는 펀·집·숍] 나를 사랑하는 방법 시 읽기와 시 쓰기

박희준 입력 2022. 8. 12. 05:00 수정 2022. 8. 12.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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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때 처음 접한 안도현의 시
한 줄 짧은 글귀에 먹먹해진 가슴
그때부터 시작된 시와 함께하는 삶
시는 전문가만의 영역 아닌 모두의 것
글·여백 호흡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
문자 그대로 천천히 맛보고 음미해야
시를 쓰는 그 행위 자체가 이미 시인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시 될 수 있어
묵은 감정 배설하듯 오롯이 내게 집중

나의 어린 시절은 책이 전부였다. 잦은 이사로 초등학교를 세 군데나 다녀야 했고, 나는 늘 친구들에게 나를 소개해야만 했다. 하지만 책은 나를 소개하지 않아도 언제든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기꺼이 자신의 속을 내어주는 친구처럼. 중학생이 된 나에게 처음으로 다가온 시는 우리가 잘 아는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로 시작하는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였다. ‘세상에 이렇게 짧은 글도 시가 될 수 있구나’하며 무릎을 쳤다. 연탄재를 발로 차본 적은 없지만, 뭔가에 채인 듯 가슴이 먹먹했다. 그때 ‘뜨거운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자연스레 고등학교에서 대학생이 될 때까지 시는 늘 곁에 있었다. 문학과 관련된 공부를 찾아서 했고, 시를 전공하며 논문까지 쓰고 나니, 이제 나는 유명한 시인이 되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가 만만한 상대가 아닌 것을 깨닫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도망가기 보다 곁에 두는 것을 택했다.
 

 

#시 읽기

“시 쓰는 사람은 필히 더럽고 불편한 삶의 자리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티끌 먼지도 없는 높은 산언덕에서 연꽃을 찾을 수는 없다. 시라는 연꽃은 온갖 퇴적물이 부패하고 발효하는 진흙 수렁에서만 피어난다. 본래 깨끗하고 예쁜 것을 지금 깨끗하고 예쁘다 해서야 무슨 대수일까. 지금 추하고 흉한 것이 본래 귀하고 아름다운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면, 시는 무엇인가”

- 이성복 ‘고백의 형식들(사람은 시 없이 살 수 있는가)’,2014,열화당

시는 어렵다, 복잡하고 쉽게 읽히지 않는다. 안 그래도 시를 읽는 게 어려운데 시에 대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이런 반응을 보이는 당신, 겁먹을 것 없다. 시는 교과서에서 배운 것처럼 누군가 문제를 내고 정답을 맞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참고로 앞에 인용한 이성복 시인의 시 세계는 많은 이들이 동경할 만큼 스펙트럼이 넓고, 자주 손에 쥐고 씨름하기에 좋은 글이 많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는 지금도 시집은 늘 손 뻗으면 닿는 곳에 있다. 약간의 의무감과 많은 의지가 담겨있지만….

시를 읽는다는 것은 ‘연’과 ‘행’으로 구분되는 짧은 글 속 여백과 호흡의 주기를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일이다. 꽉 찬 문장에 호흡이 빨라지기도 하고 성긴 문장에 느린 호흡으로 조금 쉬어갈 수 있다. 시인은 이렇게 독자와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지만 끝엔 늘 자리를 양보한다. 독자가 생각하고 받아들일 여지를 주는 것이다.

하지만 시인들은 독자가 상상하고 이해할 수 있는 범주에서만 글을 쓰지 않는다. 그렇기에 독자들은 시가 어렵다고 외면하기도 한다. 그러나 변함없는 사실은 시를 읽으면 입안에 말과 소리, 리듬이 남는다는 것이다. 시 읽기는 바로 여기부터 출발하면 된다. 시집이 사람이라면 그 사람과 대화한다는 마음으로 시집을 펼쳐보자. 나와 가까운 사람의 음성을 듣는 일, 그 목소리의 높낮이와 호흡을 세면서 듣는 일, 그 안에 숨겨진 말뜻을 가만히 헤아리는 일을 반복하다 보면 시읽기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다만 시집을 펼쳐드는 나를 발견하기 어려울 뿐이다.

#시 짓기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다’고? 너무 흔한 인문학 강의 주제여서 오히려 불가능해보인다. 하지만 이렇게 자주 강의 주제로 등장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실제로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시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시 쓰는 일이 ‘전문가’의 영역으로 분류될 때가 있었다. 시는 늘 등단이라는 제도와 문예지의 원고 청탁, 각종 문학상 등으로 문학이 유통되는 과정 안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래서 시를 쓴다는 건 어떤 ‘성역’에 진입하는 일과 같이 여겨졌다. 하지만 조금만 비틀어 생각하면 시를 쓴다는 것은 시를 읽는 행위와 별반 다를 게 없다. 당신이 시를 읽는다는 것은 이미 시를 쓰는 시인의 마음이 되어 보았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앉았다가 걷기 위해 일어서는 것처럼 시를 읽은 이는 무언가 쓰고자 하는 욕구가 ‘벌떡’ 일어나기 마련이다.

나의 ‘뮤즈’ 이제니 시인은 크리에이터 룬아와의 인터뷰에서 시 쓰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독자를 의식하거나 특별한 의도 혹은 전략을 가지고 써 내려가진 않습니다. 시라는 것이 그렇게 전략을 가지고 써지는 것도, 전략적으로 쓸 수 있는 것도 아닐 테고요. 어떤 언어적 상황에 처한 사람이 그렇게 쓸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렇게 써 내려간 것이라고밖에는 할 말이 없습니다.”

나는 이 인터뷰에서 ‘쓸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말에 주목했다. 왜 시인은 ‘쓸 수밖에’ 없었을까. 시를 읽은 이들의 쓰고자 하는 욕구 역시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아닐까. 나는 이것을 ‘배설’이라는 표현으로 쉽게 풀어쓰고 싶다. 온종일 쌓인 묵은 감정을 가장 남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방법으로 배설하는 것. 시 쓰기는 자기 위로이자 자기만족이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배설은 금물이다. 나의 일부가 고스란히 담긴 이 단어들을 하나하나 잘 확인해야 한다. 그래야 탈이 나지 않는다. 무엇보다 나는 소중하니까, 먹은 만큼 잘 내보내야 하니까.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과 만질 수 있는 것, 마음 속에 싹트는 알 수 없는 뭉근한 감정까지.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일기 쓰듯이 쭉 써내려 간 글. 이것이 바로 시가 벌거벗은 모습이다. 이제 책상에 앉아 활자들을 재단하고 다시 지어 쌓아올리기만 하면 된다.

잊고 있던 PC폴더 한쪽에 저장된 자작시 한편을 꺼내 일부를 공개한다.

“당신은 연필을 깎아요 쓰기 위해서, 종이는 당신의 피부예요 껍질이 벗겨진 상처마다 오늘을 새겨 넣어요 거친 살의 음각을 느껴봐요 언제나 쓰이는 것들은 힘이 없어요 단지 기다릴 뿐이죠” -박희준 작 ‘종이의 무덤’ 중

열심히 오늘을 살아낸 당신, 사는 게 막막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시집을 읽었다면, 이제 연필을 들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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