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택의 그림 에세이 붓으로 그리는 이상향] 52. 삶과 고뇌, 그리고 구도(求道)

이광택 2022. 8. 1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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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한 조각배 탄 권진규, 고집있는 예술관 순수한 자연미
질박한 재료·엄격한 양식 한국미 구사
조각 주류계로부터 냉대와 외면받은
"나는 작품을 위해 죽겠다"던 권진규
'비련과 비운의 조각가' 면류관 씌워져
▲ 이광택 작, 권진규 공부(잉태한 비너스), 2021

1990년 5월, 크리스티 경매에서 경매 시작 3분여 만에 당시로서는 경매사상 최고가인 8250만 달러에 팔린 그림이 있다. 바로 빈센트 반 고흐가 딱 100년 전에 그렸던 ‘가셰박사의 초상(1890년)’이다. 낙찰의 주인공은 일본 제지회사의 명예회장 사이토 료에이. 그는 이 작품을 너무나 좋아해서 자신이 죽으면 가지고 있던 르누아르 등의 대가 작품들과 함께 화장해 달라는 유언을 남긴다. 다행히 이후 전 세계 미술애호가들의 불길 같은 거센 반대로 사이토 료에이는 유언을 취소했다. 료에이는 1996년 사망했다.

많이들 아시겠지만, 가셰박사는 반 고흐가 프랑스 오베르에서 생을 마감하기 직전까지 치료를 담당했던 의사였다. 그런데 그는 고흐의 정신질환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아 체계적으로 치료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앙토냉 아르토라는 시인을 비롯한 많은 이들은 가셰박사야말로 고흐를 죽음에 이르게 한 장본인이라고 호되게 질책했다. 또한 고흐의 자살을 두고 한 천재의 재능을 알아보지 못한 프랑스 사회가 행한 ‘사회적 타살’이라고 규정했다.

1973년 5월 4일, 대한민국에서도 한 조각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고독과 고뇌, 우울로 점철된 한 생이었다. 당대 한국 조각계의 주류로부터 냉대와 외면만을 받은, ‘찢어진 봉창’ 같은 신세였는데 훗날 영광이 찾아오자 ‘비련과 비운의 조각가’라는 면류관이 씌워졌다. 무사시노 미술학교 재학 중에 이미 일본 최고의 재야단체 공모전인 이과전(二科展)에서 최고상을 수상했고 훗날 한국 조각가로는 처음으로 동경국립근대미술관에 그의 조각이 영구 소장되는 영예를 안았다. 그리고 모교의 교수직 제안도 받았으나 “예술보다 조국이 더 중요하다”면서 약속된 미래를 뿌리치고 귀국을 선택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국내에서는 설 자리가 없었다. 진정 재앙은 겹쳐서 찾아오는 것일까. 한국의 조각계가 추상 형식이 주류를 이루며 시대를 이끌어가고 있었거니와 고질적인 학벌의 폐단과 전통의 외면도 그를 더욱 궁색하게 만든 원인이었다. 엄격한 양식, 고졸한 표현(테라코타, 건칠), 질박한 재료(흙, 돌, 나무)로 한국미의 원천을 종교적인 장엄미로까지 구현하던 거장은 그렇게 ‘똥친 작대기 마냥’ 사회의 구석으로 내몰렸다. 목숨을 내던지기 7개월여 전에 그는 아틀리에에서 “부모가 아이를 위해서 죽을 수 있듯이 나는 작품을 위해서 죽겠다”라는 발언을 했다고 전한다. 그의 작업이 온당하게 평가를 받을 수 없는 시대 상황에서, 자신의 작업을 지키려면 요절작가가 되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는 뜻일까? ‘인생은 공(空), 파멸, 오후 6시 거사’라는 메모를 남긴 채 그는 외롭게 이승을 떠났다.

그의 이름은 권진규다. 함흥에서 태어났지만 1938년부터 춘천고등보통학교(현재의 춘천고등학교)에서 수학했다. 올해가 탄생 100주년이어서 지난봄에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대규모 전시가 열렸다. 목숨을 건 정면승부로 고집스럽게 자기 세계를 밀고 나갔던 조각가. 그리하여 훗날 한국 조각의 근대를 완성하고 현대의 문을 연 작가로 우뚝 서고 권진규라는 빛의 아우라는 크고 아름다운 ‘깃발’로 새겨졌다. 하지만 끝내 ‘묘비처럼’ 외로웠던 선배 조각가를 생각하면 싸리비로 누가 쓸어대는 것처럼 내 마음이 쓰렁쓰렁해진다. 한국 특유의 고양된 정신성을 찾기 위해 수액처럼 솟던 그의 꿈은 누가 받아주었던가. 까마귀 살점처럼 붉은 달이 뜬 밤바다 위를 정처 없이 떠도는 조각배와 그 배 안에 탄 한 사람이 떠올라 마음이 숙연해진다. 분명히 그는 반 고흐처럼 자기 예술을 위해 순교한 순교자였다. 그리고 삶의 고뇌를 넓고 깊게 응시하는 구도자였다.

세상에 이렇게 귀엽고 재미나고 사랑스러운 비너스가 어디에 또 있을까!

“하늘과 짝할 수 있는 아름다움은 바로 ‘소박미’”(중국 사상가 곽상)라 하더니! “미술의 최고 경지는 ‘자연격(自然格)’”(‘역대 명화기’ 저자 장언원)이라 하더니!

이 작품을 보면 예부터 순수한 자연미를 추구해 온 우리 한국미술의 본질이 손에 잡히는 듯해 나는 마냥 좋다. 한번도 자신의 문화적 뿌리를 잊지 않은 작가만이 만들 수 있는 멋진 작품이다! 서양화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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