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쓸어버릴 쓰나미급 '차이나 쇼크'..탁상공론 치운 중국통의 통찰은

정지용 2022. 8. 12.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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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청훤 '차이나 쇼크, 한국의 선택'
한국 '국익' 관점에서 처세술 모색
대만 침공 등 다가올 위협 대비해야
'용중' 중국 이용하며 아세안, 일본 가까이 둬야
차이나 쇼크, 한국의 선택ㆍ한청훤 지음ㆍ사이드웨이 발행ㆍ303쪽ㆍ1만7,000원

미국 백악관 아무개 외교 참모가 썼다는 대중국 전략 책이나, 아이비리그대학 모 교수가 지은 중국 분석서를 보면 아쉽기 그지 없다. 우선 미국이 정의라고 자락을 깐다. 중국의 폭력성을 고발해 나간다. 결론은 ‘미국 주도 반중 어벤저스에 참여하라’는 채용 공고. 가슴이 벅차 올라 ‘혈맹인 미국을 돕자’며 태극기를 휘두를 이들도 있겠지만, 우리 국익을 고민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차이나 쇼크, 한국의 선택’은 한국인 저자가 한국 입장에서 한중 관계를 다룬 책이라 반갑다. “국제사회라는 게 사실 포장지를 벗겨 보면 구역 다툼을 하는 동네 조폭 세상과 다름 없다. 법보다 주먹이 먼저인 원초적 무법지대다”라는 인식부터 호방하다. 전기차, 디스플레이, 반도체 필드에서 중국 시장 개척을 위해 15년간 몸으로 뛰며 벼려낸 실용주의 태도가 날카롭다. 반중 정서에 휩쓸리지 않고 한국의 '처세술'을 고민했다는 점도 의미가 있다.

우선 ‘차이나 쇼크’란 제목 풀이부터. 저자에 따르면 세계 패권국이 되려고 폭주하는 중국 옆에 사는 것 자체가 쇼크다. ‘미국과 이웃한 건 코끼리와 한방을 쓰는 것과 같다’(피에르 트뤼도 전 캐나다 총리) ‘불쌍한 멕시코, 신은 먼데 미국과 가깝구나’(포르피리오 디아스 멕시코 전 대통령)라는 한탄에 웃을 일이 아니다. 그나마 미국은 룰을 지키는 척하는 민주주의 국가지만, 중국은 대놓고 비매너 경기를 일삼으니 골치가 아프다.

크고 작은 쇼크도 여러 차례 겪었다. 2017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에 따른 경제 보복, 지난해 요소수 수급 대란, 올해 상하이(上海) 완전 봉쇄로 인한 전자업계 타격 등등. 이 중 최첨단 산업에서 중국이 한국을 제친 현실은 분통 터지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쇼크다. 인공지능(AI), 전기차,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등의 최첨단 분야에서 중국 기술력은 한국과 비등하거나 이미 역전했다.

낸시 펠로시(왼쪽) 미국 하원의장이 지난 3일(현지시간) 대만 타이베이 총통부에서 차이잉원 총통과 만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펠로시 하원의장은 미 하원의장으로서 25년만에 대만 땅을 밟았다. 대만 총통부 제공 연합뉴스

쓰나미급 쇼크는 아직 오지도 않았다. 저자는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곳’(이코노미스트)으로 불리는 대만 문제를 ‘심각하게’ 경고한다. 우리가 북한에 시달린 나머지 전쟁 위협을 과소평가하지만, 중국의 대만 정복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처럼 확률 높은 현실적 위협이다. 디데이도 공공연하게 언급된다. 미국 싱크탱크에선 2027년 대만 침공 시나리오가 나왔고, 대만 국방부는 2025년을 제시했다.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이 최근 중국의 강력한 반발에도 대만을 방문한 일이 상황의 심각성을 시사한다.

중국이 이같이 호전적인 이유는 뭘까. 시진핑 국가 주석의 ‘조급함’이 키워드다. 장기 집권 야욕에 불타는 시 주석은 ‘2번 연임’ 불문율을 깨고 올해 10월 공산당 당대회에서 ‘3연임’에 도전할 전망이다. 다만 중국 내에선 의외로 인기가 없다. 난폭한 외교로 중국 고립을 자처했고, 마오쩌둥(중국 통일)과 덩샤오핑(개혁 개방)에 비해 업적도 앙상하다는 평가가 비등하다. 궁지에 몰린 시 주석이 선택할 카드가 중국 인민들이 ‘신앙’처럼 여기는 대만 통일. 저자는 중국 지인의 입을 빌려 “시 주석에 불만이 있는 인민들도 대만 통일의 과업을 위해 일단 인내한다”고 분위기를 전한다.

이 지점에서 저자는 묻는다. “중국이 대만을 침략하면 미국과 전면전이 벌어질 것이다. 미국이 주한미군 동원에 나설 것은 분명하다. 미국을 후방에서 지원하는 한국 기지를 향해 중국 전투기와 미사일이 날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전쟁의 파고에서 자유롭지 않은 한국 경제가 곤두박질치는 건 말할 것도 없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지난달 27일 20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 준비를 위해 베이징에서 열린 성부급(省部級·성장 및 장관급) 지도간부 세미나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시 주석은 향후 5년을 두고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과 관련된 중요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저자가 미국 줄을 확실히 잡자고 하거나, 중국 밑으로 들어가자는 성급한 주장을 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한국은 약소국이라 대국에 의지해야 한다’는 자기 비하에서 벗어나자고 머리를 후려친다. 한국이 반도체 수출을 중단하면 중국 IT산업은 멈춰선다. 미국과의 경쟁에도 차질을 빚는다. 더구나 주변국인 인도, 일본, 호주는 이미 미국 손을 잡았다. “중국은 한국이 미중 사이에 중립만 지켜도 성공이라고 여긴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이 장대한 분석에서 책이 제시하는 처세술의 근간은 ‘용중’(用中). 중국의 경제적 가치를 최대한 활용하고, 우리의 중립 위치를 누릴 만큼 누리자는 제안이다. 그 기간에 베트남, 인도 등 남방 국가들과 관계를 공고히 하고, 반도체 분야에서 계속 중국을 따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일본과 손을 잡아야 하는 데 “동아시아에서 민주주의와 인권, 자유의 가치를 공유하는 대상이 일본밖에 없다”는 현실적인 이유에서다.

중국은 이미 ‘도광양회’(韜光養晦ㆍ능력을 감추고 때를 기다린다)를 버리고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활’(중국몽)을 향해 치닫고 있다. 격변하는 미중 질서 속에서 한국이 분명한 원칙을 세우되 유연하게 대응해야 하는 점은 분명하다. 사드 추가 배치와 중국 배제를 위한 반도체 동맹(칩4, 한ㆍ미ㆍ일ㆍ대만)을 두고 갈대처럼 흔들리는 외교정책 결정권자들이 펼쳐봐야 할 책이다.

정지용 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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