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은 재정난인데.. 전국 교육청, 은행 쌓아둔 돈 6조6000억

김은경 기자 2022. 8. 12. 03:2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학생수 줄었는데 교부금은 늘어.. 연말 되면 보유액 10조 넘을 듯
대학은 재정난.. 교육청은 은행에 교부금 맡겨 '이자수익'

전국 시·도교육청에서 예산이 남아돌아 각종 명목으로 쌍아둔 돈이 작년 6조6000억원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정부는 매년 세금(지방재정교육교부금)을 걷어 유·초·중·고 교육에 쓰라고 각 교육청에 예산을 나눠 주는데 세수(稅收)가 늘면서 이 금액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교육청들은 이를 미처 다 못 쓰게 되자 은행에 대거 넣어두고 있는 것이다. 이에 정부가 이 중 일부를 재정난을 겪는 대학들에 투자하려 하고 있으나 교육청들이 거세게 반대해 고민이다.

11일 국회예산정책처 ‘2021회계연도 결산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전국 시·도교육청 17곳 기금에는 4조8635억원이 들어있다. 학교 개·보수용으로 모아두는 ‘교육시설 환경 개선 기금’ 1조8514억원, 교육 예산이 모자랄 때를 대비하는 ‘통합 교육 재정 안정화 기금’ 3조121억원 등이다. 예산을 다 쓰지 못해 남은 ‘순 세계잉여금’을 합치면 그 규모는 6조6346억원에 달한다. 올해는 정부 세수가 늘면서 추경으로 교육 예산을 더 받아 교육청들이 기금 등을 더 쌓아두기로 하면서 올 연말이면 기금 등이 10조원 이상까지 늘 것으로 추정된다.

박기백 전 한국재정학회장(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은 “복지나 소상공인 지원 등 예산이 더 시급한 곳이 많은데 쓰지 않고 쌓아두는 건 문제”라며 “내국세에 연동하는 교육교부금 수입 구조를 손봐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유·초·중·고 교육에 쓰라고 주는 지방재정교육교부금은 매년 내국세의 20.79%가 자동으로 할당된다. 세수가 늘어나면 느는 구조다. 각 교육청 예산의 70%가 여기서 나온다. 그런데 유·초·중·고 학생 수는 2013년 657만명에서 올해 532만명으로 줄었지만, 세수가 늘어 이 기간 중 교육교부금은 41조원에서 81조원까지 증가했다. 학생 1명당 교부금은 625만원에서 1528만원으로 2.5배 커졌다. 예산이 한 해에 다 쓸 수 없을 만큼 불어나자, 교육청들은 2019년부터 남은 돈을 은행에 넣어두고 있다. 부산(부산은행)을 제외한 16곳 시·도교육청은 NH농협은행을 금고로 사용한다. NH농협은행에서 받은 예금 이율은 1.97%(8월 기준)다.

◇학생은 감소...교육 재정은 증가

서울시교육청은 지난달 추경을 통해 갑자기 예산 3조7000억원이 더 내려오자 이 중 2조7000억원을 기금에 쌓아두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를 승인해야 하는 시의회가 “예산 대부분을 적립한다니 평생 처음 보는 편성”이라면서 반대하고 나섰다. 시의회는 교육청 부채 규모를 낮추기 위한 노력을 담아오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회예정처도 “일부 교육청은 지방채(채무)가 남아 있는데 기금을 적립하고 있다”면서 “여유 자금이 생기면 지방채를 우선 상환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교육청은 과거 각종 무상복지 정책과 누리과정 재원 등을 마련하느라 지방채를 발행했고 최근까지 갚아 왔다. 다 갚은 교육청도 있지만 경기·대구·충남·전남교육청 등은 3700억원이 남아 있다. 서울교육청의 경우, 지방채는 지난해 다 갚았지만 민간투자사업(BTL)용 차입금이 남았다. 학교나 기숙사를 짓는 데 든 돈이다. 조기 상환에는 6000억원가량이 든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사업자와 협약을 맺은 사안이라 협의가 필요하고 조기 상환하는 게 이득일지 따져봐야 한다”며 “다른 교육청에서 조기 상환을 추진한 사례가 없다”고 말했다.

◇교육재정, 대학 분배 놓고 갈등

이처럼 시도교육청 예산이 너무 많아지면서 교육교부금과 내국세가 연동되도록 한 방식을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온다. 정부는 일단 교육교부금 일부를 대학과 평생교육에 쓰는 쪽으로 개편을 추진 중이다. 교육청에 돌아가던 교육세 일부(올해 기준 3조6000억원)를 떼어내 ‘고등·평생교육 특별회계’를 만들고 대학에 준다는 구상이다. 교육교부금이 46조원에서 81조원으로 증가하는 동안, 대학 예산은 10조원에서 12조원으로 2조원밖에 늘지 않았다. 대학들은 14년째 계속된 등록금 동결 정책으로 재정 위기를 겪고 있다며 지원을 늘려달라고 요구해왔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과 초·중등 교육계는 “동생 돈을 뺏어 형에게 주려고 한다”며 반대하고 있다. 조희연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장(서울시교육감)은 “교육교부금 축소는 유·초·중등 교육 여건을 후퇴시키고 질적 저하를 불러올 것이 뻔하다”고 했다. 교육교부금이 많은 게 아니라 재정 당국 세수 추계 오류 때문에 제대로 쓰이지 못하는 게 문제라고도 주장한다. 조 교육감은 “교육청은 갑작스럽게 내려온 예산 소진 부담을 떠안는다”며 “세수 추계를 잘못한 재정 당국 책임이 크다”고 했다. 실제로 세수 오차로 인해 4~5월에 추가로 교육청에 교부되는 예산 규모가 해마다 커지고 있다. 2016년에는 중간에 더 내려온 교육교부금이 본 예산의 4.7% 정도였지만 올해는 25.0%에 달할 전망이다.

하지만 교육청이 ‘돈 낭비’ 논란을 자초했다는 지적도 있다. 전국 교육청들은 교육재난지원금 명목으로 작년(4887억원)과 재작년(1073억원) 학생과 학부모에게 총 6000억원을 지급했다. 국회예정처는 “시·도교육청은 최근 교부금 증가 규모가 크게 늘어나는 시기에 적절한 교육 투자처를 발굴하지 못하고 현금성 지원을 확대하거나 기금에 적립해두는 등 재정을 효율적으로 운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 6·1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새 교육감들 공약에도 스마트기기 무상 지급·교육 수당 지원 등 선심성 정책이 포함된 바 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