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꽝’ 없는 감사한 금요일

김홍기 스페이스오디티(K팝 앱 ‘블립’ 운영사) 대표 2022. 8. 12.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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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을 몇 시간 앞둔 금요일 오후. 우리 회사 업무 메신저에는 어김없이 장문 메시지가 수십 건씩 경쟁적으로 올라온다. 이런 금요일이 된 지 어느새 1년이 넘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꽤 끔찍한 상황처럼 들린다.

그러나 우리 회사의 금요일은 특별하다. 이날 하루만큼은 업무 메신저가 하트, 감동, 춤, 최고, 파이팅, 빛, 웃음 등 각종 즐거운 이모지(Emoji)로 가득해진다. 한 주 동안 감사했던 동료 이름과 일을 릴레이 댓글로 남기는 ‘감사 파티’ 시간이기 때문. 우리는 이것을 ‘금요일 생큐 한 줄 스레드(댓글 창)’라 부른다.

이런 금요일 덕분에 ‘감사’가 이토록 다채로운 단어인 줄 처음 알았다. ‘어려운 문제를 같이 고민해줘서’ ‘급한 요청 응해줘서’ 등 업무 관련 감사만 있는 게 아니었다. “우산 씌워줘서” “맛집 알려줘서” “전화 통화할 때 음악 소리 줄여줘서” “무지개 떴다고 알려줘서” “떡볶이 볶음밥 긁어 먹을 때 뜨거운 냄비 같이 잡아줘서”…. 어쩌면 어떤 일은 당연히 해야 할 업무, 또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 무심코 한 말과 행동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에게는 이렇게 인상적인 일이 됐나 보다.

사실 처음부터 참여가 활발하진 않았다. 그래서 모든 참여자에게 아메리카노 쿠폰 주는 걸 유인책으로 썼다. 추첨으로 뽑힌 1명에겐 치킨, 팥빙수 등 상품도 준다 했더니 스릴까지 넘치는 ‘감사 파티’가 됐다. 그런데 몇 개월 지나 상품은 안중에도 없어졌고, 다들 ‘감사’ 자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연휴가 많은 주 금요일은 생략하고 넘어가자 했더니 ‘금요일 감사 댓글’은 꼭 해야 한다는 아우성이 나왔다. 상품 없이 자발적인 감사 댓글이 저녁까지 이어진 날도 있었고, 한 줄에 불과했던 댓글 길이도 어느 새 열 줄, 이십 줄로 길어졌다. 별로 칭찬받을 일 없는 스타트업 대표인 나에게조차 이날만큼은 ‘이런 제도 만들어줘서 고맙다’ ‘정말 가성비가 좋은 기획’ 등 칭찬이 돌아온다. 회사의 모두가 ‘꽝’ 없는 감사한 금요일을 맞고 있다.

아무리 좋은 회사라도 스트레스의 온상 소리 듣기를 완전히 피할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고된 한 주 끝을 서로에 대한 감사로 맞을 수 있다면 회사도 한 번쯤은 선물 받는 공간처럼 여겨질 수 있지 않을까. 최소한 그 감사 덕분에 마신 아메리카노 맛은 평소보다 분명 맛있었으니.

김홍기 스페이스오디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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