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난장] 우리는 왜 집착하는가

국제신문 2022. 8. 12.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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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되돌릴 수 없기에 후회 않으려고 발버둥
현재 낭비하지 않도록 지나친 집착은 말아야

육아휴직과 함께 시작한 영국살이도 어느덧 일 년이 다 되어간다. 몇 달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일 년이라니. 시간 가는 게 참 무섭다. 비록 휴직으로 포장된 육아였지만 막상 끝이 보이기 시작하니 아쉬움도 남는다.

아닌 게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이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쓰고 있다. 틈날 때마다 딸아이를 데리고 박물관과 미술관에 가고 주말에는 자연을 찾아 나선다. 그러다 보면 발이 제일 고생이다. 한국에 있을 때는 하루에 1만 보를 걷는 것도 어려웠지만, 여기 온 후로는 2만 보를 넘는 게 특별한 일도 아니다.

한국에 다시 돌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되새길수록 마음은 점점 조급해진다. 집에서 좀 더 쉬고 싶다가도 어떻게든 뭔가 일을 만들어서 기어이 밖으로 나선다. 지금 여기서 경험할 수 있는 것을 최대한 많이 담아가지 않으면, 훗날 지금을 돌아볼 때 후회하게 될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느끼는 ‘후회’의 본질이 무엇일까. 나는 무엇을 피하려고 하는 것일까. 먼저 한 가지 분명하게 답할 수 있는 것은 후회의 시점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후회한다면, 그것은 지나간 시간에 속한 것이다. ‘아! 그때 그래야 했는데’라는 생각처럼 후회는 과거 회상을 통해 이루어진다. 후회가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며 하는 것이라면, 이제 다음 질문이 이어진다. ‘왜 우리는 그토록 후회를 피하려고 하는 것일까’. 짐작건대 그 이유는 아마도 시간을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는 한 방향으로만 가는 시간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 만약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우리 삶에서 후회가 그렇게 묵직하게 다가오지는 않을 것이다. 뭐든 자기 뜻대로 하길 좋아하는 인간의 습성상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건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다. 정리하면, 후회는 불가역적이고 최종적인 과거를 향해서 느끼는 고통스러운 감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후회 없을 선택을 위해 나름의 최선을 다한다. 예컨대 우리는 주변에서 남들이 선망하는 직업을 마다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종종 접하는데, 결국 그들도 어떻게든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선택한 것일 테다. 그들은 훗날 현재를 돌아보면서 ‘그때 더 현명한 선택을 할걸’이라고 후회하는 게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후회 중에서도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큰 후회는 죽음을 바로 앞둔 순간에 찾아올 것이다. 죽음이야말로 우리가 거쳐온 인생의 모든 결과를 불가역적이고 최종적으로 확정 짓기 때문이다. 그것이 동서고금을 가릴 것 없이 사람들이 그토록 삶의 마지막 순간 ‘편안히 눈을 감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 생각해 볼 것이, 후회는 우리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사고 활동 혹은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이다. 사람이 생각을 하고 감정을 느끼는 데에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시간은 언젠가 반드시 끝난다. 다시 말해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가장 뼈아픈 후회는 죽음 직전에서야 경험할 테지만, 그것으로 고통받는 시간에는 끝이 있다.

그러다가 마침내 죽음의 순간을 지나면 사고 활동도 감정도 모두 멈춘다. 후회라는 생각을 하게 될 우리의 자아도, 후회의 근거가 될 지난 시간의 기억도 모두 사라진다. 사후 세계에 관한 다양한 견해가 있지만, 지금까지는 이게 정설이다. 즉, 죽음 후에는 후회조차 없다는 말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우리는 종종 나중에 후회할 것이 두려워 지금 뭔가를 해야 한다는 조급함을 느낀다. 하지만 그 후회는 다행스럽게도 끝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말로 걱정해야 할 것은 먼 훗날 언젠가 할지 안 할지 모를 후회가 아니다. 그보다는 그 후회를 피하기 위한 집착에 사로잡혀 살아 숨 쉬는 현재를 낭비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무언가를 놓치지 않기 위해 집착하는 것은 삶 전체를 놓고 볼 때 부질없는 일이다. 더군다나 그 이유가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라면 말이다. 그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경험이건 소유건 다르지 않다.


그러고 보면 집착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후회를 피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어찌어찌 집착하지 않고 살다가 삶의 마지막 순간에 스스로 ‘아! 미련 없이 잘 살았네’ 하면서 뿌듯함을 느낀다고 해도, 곧 이어질 죽음 뒤에는 그 만족감조차 허공 속으로 모두 흩어져 사라져버리겠지만.

휴, 이제야 비로소 복직을 생각해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 든다.

신승건 해운대보건소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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