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재원의 정치평설] 난국 탈출, 대통령의 공감과 감응부터

국제신문 2022. 8. 12.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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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치 선언 전에 감정(堪政)인증부터’. 지난해 4월 23일 자 18면에 실린 ‘차재원 칼럼’의 제목이다. 군사용어의 ‘감항(堪航)인증’이라는 말을 빌려, 당시 정계 입문을 고민 중이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게 이렇게 충고했다. “정치를 감당할 수 있는지를 스스로 냉철하게 따져보는 ‘감정인증’부터 해보라.”

과거 군사용 항공기를 도입할 때 적에 대한 공격무기 등 무장력만 우선으로 따지다 정작 비행기로서의 운항 능력을 놓쳐 사고가 잇따르자 도입된 제도가 감항인증(Airworthiness Certification) 제도. 정치, 그것도 국가를 운영하는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직에 철저한 자기검증도 없이 덤벼들었다간 본인도, 나라도 곤경에 빠뜨릴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었다.

공교롭게도 지난 대선에서 ‘0선’의 정치초보, 전직 검찰총장이 내세운 ‘공정과 상식’이라는 무기는 엄청난 화력을 과시했다. 후보 본인과 처가의 의혹을 겨냥한 집권세력의 총공세, 거대 여당의 ‘퍼주기’식 공약을 이 무기 하나로 방어해냈다. 불과 0.73% 차이 신승. 어쨌든 대선 승리 고지까진 아슬아슬하게 비행에 성공한 셈이었다.

그런데 정작 더 쉬울 거라 판단했을 국정운영이라는 본격 비행에서 ‘윤석열호’는 지금 심각한 난기류에 휘말렸다. 빨리 기체를 수습하라는 경고등이 여기저기서 울리고 있다. 집권 석 달도 전에 20%대로 곤두박질친 지지율이 바로 그것. 거의 모두가 지적하는 가장 큰 원인은 대통령이다. 최근 지지율 악재가 된 문제만 봐도 분명해진다. 국민적 저항에 부딪힌 ‘입학연령 만 5세 하향’. 교육부 업무보고 뒤 “신속히 강구하라”는 대통령의 지시가 최대 화근이 됐다. 정책수요자인 학부모 의견 청취도, 교육현장을 책임진 교육감과 그 흔한 간담회 한번 없었다. 뒤늦게 장관이 철회 가능성을 언급했지만, 백년대계 교육에 대한 신뢰는 무너진 뒤였다.

비상대책위 가동에 이준석 당 대표의 반발로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는 여당의 내홍 사태. 사실 결정적 뇌관으로 작용한 게 대통령의 ‘내부총질’ 메시지였다. “당무에 관여 안 한다.” 여러 차례의 공언과는 다른, 대통령의 속내에 이준석은 ‘양두구육(羊頭狗肉)’이라고 비아냥댔다. 졸지에 대통령 체면은 말이 아니게 됐다. 여기다 관저 공사의 수의계약 업체 의혹과 건진법사 로비설 모두 대통령 부부와의 관계에서 비롯됐다.

이쯤 되면, 당초 감당할 능력도 없이 무작정 정치로 뛰어든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본인도, 나라도 곤경에 빠뜨렸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감정인증’에 미달했으니, 바꾸자고 할 수 있을까.

실제 야권 일각에선 촛불 얘기가 나온다. 하지만 난기류에 휘말렸다고 당장 비행기를 회항시키거나 비상착륙시키지 않는다. 기장 책임하에 자구책을 마련할 시간을 주게 마련이다. 대개 비행기는 자체 노력으로 난기류를 극복하고 정상궤도를 찾게 마련이다. 국민 다수의 생각도 비슷할 게다. 어떻게든 대통령이 현 상황을 감당하고 이겨내길 바랄 것이다. 그래야 국가도, 민생도 조속히 안정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휴가에서 복귀한 대통령도 심기일전을 다짐했다. 제시한 해법의 키워드는 초심과 국민 관점. 바람직해 보인다. 관건은 실천력이다.

먼저 초심은 공정과 상식일 게다. 집권 직후 불거진 검찰 측근의 요직 싹쓸이, 성희롱·간첩조작 연루 비서관, 대통령실의 잇단 사적채용 논란. 불공정과 비상식이라는 질타가 쏟아졌다. 이제껏 그냥 깔아뭉갰다. 대선 당시 절대무기였던 공정과 상식은 시나브로 대통령 자신을 겨누는 부메랑이 됐다. 정말 초심을 되찾으려면, 균형인사를 넘어 인재풀을 넓혀 탕평해야 한다. 그래야 통합과 협치의 물꼬가 트일 것이다. 측근 의혹일수록 더 냉정하고 엄하게 다스려야 한다. 사무실마다 춘풍추상(春風秋霜, 남에게는 봄바람처럼 따뜻하게 대하되 자신에겐 가을 서리처럼 차갑고 엄격해야 한다) 글귀를 내걸었던 문재인 청와대. 그럼에도 ‘내로남불’ 시비에 정권을 넘겨야 했다.

특별감찰관도 조속히 임명해야 한다. 대통령 스스로 감찰의 시야로 들어가면 권부에 날아들던 파리떼가 얼씬하긴 힘들다. 당장 이런 조치들이 국민 관점에 맞는 것일 게다. 그렇다고 여기서 손 털면 안 된다. 몇몇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대통령 부정평가 1위는 ‘독단과 일방통행’이었다. 이른바 도어스테핑(출근길 즉석문답), 몇 장면만 떠올려도 충분히 수긍되는 대목이다. “뭐, 민주당 정부 때는 안 했나” 식의 피장파장론에 “(검찰 측근 요직 기용이) 필요하면 또 해야죠” 식의 오만. 여기다 불편한 질문엔 “다른 질문 없나” “우리 대변인실에서 다 설명했다”며 뭉개기까지.


결국 대통령의 태도 변화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대통령이 하고픈 말보다, 국민이 듣고 싶은 말을 들려주려는 노력과 자세. 어쩌면 총체적 난국을 푸는 가장 중요한 단초일 수 있다. 정치를, 대통령직을 감당할 능력이 조금 모자라도 이것만 제대로 챙겨도 된다. 국민의 아픔에 공감하고 국민의 목소리에 제대로 감응(感應)하는 능력 말이다.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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