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부끄러움조차 잃어버린 L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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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게 기사가 됩니까? 나 참.”
지난달 한국토지주택공사(LH) 간부들의 기강 해이 문제를 취재하려고 논란 당사자들과 LH 본부 공보 담당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봤을 때 일관되게 반복적으로 나온 반응이다. 잠시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뭘 이런 걸 문제로 삼느냐’는 식이었다.
1·2·3급 간부가 공식 출장지에서 주요 일정에 빠지고 골프를 치러 갔다. 사장·부사장·상임감사위원부터 6개 본부의 본부장까지 수뇌부 전원이 일제히 주말을 이틀 앞둔 목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각종 일정을 만들어 이틀 내내 경남 진주의 본부 사무실을 비우고 서울·경기로 올라왔다. 사장이 일이 있어 본부를 비우면 부사장이나 주요 본부장 하나둘 정도는 사무실을 지켜야 하는 건 조직 운영의 기본이다. 그러나 LH는 이런 문제를 문제로서 인식하지 못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지방 이전 공공기관 직원들의 주말 전 ‘서울행 기획 출장’이 어디 하루·이틀 된 문제냐”는 반응도 있었다. 고질적인 문제인 만큼 상급자들이 더 중심을 잡고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생각은 못 하는 듯했다. 목·금요일 지도부 전원 부재(不在)는 분명 큰 문제였다.
이번 LH 기강 해이 논란은 국민적 공분을 일으킨 LH 임직원의 땅 투기, 아파트 특별 공급 특혜 논란이 벌어진 지 불과 1년 만에 터졌다. LH 내부 직원들이 위험을 감수하고 이런 기강 해이 행태를 기자에게 제보한 것은 ‘해도 해도 너무한다’ ‘더는 이래서는 안 될 것 같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LH 젊은 직원들의 말을 들어봤다. LH는 새 정부가 출범했는데도 ‘더 잘해보자’ ‘파이팅하자’는 분위기가 아니라 탄력 잃은 고무줄처럼 내부 분위기가 축 처져 있었다고 한다. 특히 간부급의 업무 태만이 심했다고 한다. LH는 최대 민생 현안인 집값 폭등, 주거 부족 등 부동산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은 공공기관이다. 주택 공급은 여야 불문, 정권 유지·교체 여부를 떠나 차질 없이 추진돼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외쳐온 핵심 사업이다. 그런데도 LH는 새 정부가 출범한 지 석 달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것도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연일 경제 위기를 외치는데도 수뇌부부터 안일한 모습을 보였다. 결국 김현준 LH 사장은 기강 해이 논란 보름 만에 사표를 썼다.
문제는 이런 논란이 다른 공공기관에서도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 정치권에선 “전 정권 사람들이 ‘알 박기’하며 국정 운영을 방해한다” “코드 안 맞는다고 쫓아내는 것이냐”라며 신구(新舊) 세력이 서로 삿대질만 하고 있다. LH 기강 해이 논란을 보도한 후 받은 메일 한 통이 기억에 남는다. “공공기관은 어느 정파의 소유물이 아니지 않은가요? 혈세 받으면 딴생각 말고 제대로 일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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