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화의 생활건축] 기후변화와 박제가 된 한옥

한은화 입력 2022. 8. 12. 00:18 수정 2022. 8. 12. 0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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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화 건설부동산팀 기자

한옥에 살고 있다 보니 이번 폭우 때 지인들의 연락을 많이 받았다. “집은 괜찮냐”로 시작하는 안부인사였다. 다행히 별 탈은 없다. 하지만 급격한 기후변화가 우려스럽다. 이런 폭우가 매년 쏟아진다면 한옥은 괜찮을까.

오늘날 지어지는 한옥은 사실 규제의 산물이다. 새로 짓더라도 조선 시대 양식과 재료만 써야 한다. ‘전통성 보존’에만 골몰한 정책 탓이다. 오세훈 서울 시장은 2008년 한옥을 육성하고 보존하겠다는 ‘한옥 선언’을 하면서 보존정책을 펼쳤다. “한옥이 밀집한 지역을 서울다운 정취가 있는 주거지로 육성해 서울의 문화 정체성을 살려 나가겠다”는 포부에 따라 서촌·북촌 등 구도심의 한옥 동네가 한옥만 지어야 하는 한옥 보존지구로 지정됐다. 북한산 아래 은평 한옥마을도 새롭게 만들어졌다.

나무 창호 안쪽으로 PVC 창호를 설치한 한옥. 한은화 기자

문제는 한옥 심의제도다. 서울시는 한옥을 보존하도록 규제하는 대신, 한옥을 고치거나 지을 때 공사비를 일부 지원해주고 있다. 이 지원금을 받으려면 위원회 심의를 받아야 하는데, 조선 시대 한옥 스타일이 아니면 통과하기 어렵다. 발달한 재료와 공법을 적용해 한옥을 지을 수 없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창호 규제다. 서울시는 한옥의 창호를 전통방식의 나무 창호를 쓰도록 규제한다. 하지만 나무는 변형이 심한 재료다. 더울 땐 팽창하고 추울 때 수축하다 갈라지고 틈이 생기는데, 비가 샐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한옥 거주자들은 나무 창호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내부에 아파트에서 쓰는 플라스틱(PVC) 창호를 덧댄다. 비가 직접 닿는 외부에 PVC 창호를 설치할 수 없다. 겉에서 봤을 때 조선 시대 한옥 스타일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알루미늄 틀을 가운데 놓고 바깥에 나무를 붙인 한식 시스템 창호가 개발되긴 했지만, 상당히 비싸다. 창호 값만 억대로 들게 된다.

한옥은 벽면에 나무 인방(기둥을 고정하는 가로 지지대)도 노출해야 한다. 나무 인방이 하얀 회벽을 가로지르면서 한옥의 비례미를 돋보이게 할지는 모르겠지만, 비에 취약하다. 노출된 인방이 뒤틀리면서 틈이 생기고 벽면으로 비가 새 들어가기 일쑤다. 2층 한옥이 대다수인 은평 한옥마을에서는 진짜 인방은 노출하지 않고 벽체를 통으로 설치한 뒤 겉에 모양내기식 인방을 붙이기도 한다. 은평 한옥마을에는 철골로 지은 한옥도 있는데, 서울시는 이 집을 한옥으로 등록해주지 않고 있다. 집의 변형을 막기 위해 철골을 넣은 나무를 썼을 뿐 한옥의 공법을 그대로 따랐는데도, 나무가 아닌 다른 재료를 썼다는 이유로 한옥 등록이 거부됐다.

조선 시대에만 머물러야 하는 한옥이 앞으로의 기후변화를 버틸 수 있을까. 사람이 살지 않는 문화재는 원형 그대로 보존해야 할 테지만, 살림집 한옥은 변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박제된 한옥의 미래는 희망적이지 않다.

한은화 건설부동산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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