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 녹이는 폭염, 서울에 특히 치명적인 이유

안상현 기자 2022. 8. 11.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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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Cover Story] 운송·물류·도시경제에 직격탄 '폭염의 경제학'
그래픽=김의균

올해 들어 더 강력해진 폭염(暴炎)에 전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해양성 온대 기후대로 선선한 여름 날씨를 자랑했던 영국 섭씨 40도가 넘는 폭염에 열차 선로가 휘고 공항 아스팔트 활주로가 녹아내렸다. 유럽 최대 전력 공급 업체인 독일 유니퍼(Uniper)는 연료비가 치솟은 상황에서 폭염으로 냉방 전력 수요가 급증하자 파산 위기에 내몰렸다. 결국 독일 정부는 가격 인상분을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연 2만kWh(킬로와트시) 전력을 소비하는 4인 가족은 최대 1000유로(약 132만원) 오른 전기요금 고지서를 받아들게 됐다. 앞서 호주와 인도에도 최고 기온 섭씨 50.7도, 49도에 달하는 역대급 폭염이 몰아쳐 각종 피해가 속출했다.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 여파로 폭염은 더는 이상(異常)기온이 아닌 ‘뉴 노멀(New Normal)’이 돼가고 있다. 만성화된 폭염은 당장 산불과 열사병, 가뭄 등으로 직접적인 인명 피해를 일으킬 뿐 아니라 세계 경제에도 넓고 깊은 영향을 미친다. 기후대 변화는 지역별 경작지 작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쳐 세계 농업 지도를 바꾸고 있고, 노동 생산성과 에너지 수급을 악화시키는 방식으로 산업 환경을 뒤흔든다. 식량·에너지 가격 상승에도 폭염이 한몫한다. 이제는 세계 경제의 상수(常數)가 된 폭염의 경제적 파급 효과와 득실(得失)을 WEEKLY BIZ가 분석했다.

◇녹아내린 사회 인프라

최근 발생하는 폭염은 사회 기반 시설을 망가뜨리며 경제를 순환시키는 운송과 물류에 직접적인 타격을 가하고 있다. 가령, 영국 런던시는 폭염이 한창이던 지난달 중순 모든 철도 서비스에 임시 속도 제한을 걸었고, 철도공단인 네트워크 레일(Network Rail)은 최근 철도 운행이 취소될 가능성이 있다며 시민에게 열차 이용을 자제하라는 안내문을 게재했다. 폭염으로 인해 강철 선로가 달궈져 휘거나 전력 케이블이 녹는 등 각종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네트워크 레일 측은 “폭염으로 철도 1km당 약 30cm씩 확장돼 3만km였던 철도가 9km 더 늘어났다”고 밝혔다.

섭씨 40도 넘는 폭염으로 영국 곳곳에서 철도 선로가 휘어졌다. 이로 인해 철도 운행 속도가 제한되고 열차 이용을 자제하라는 안내문이 내걸렸다. /네트워크 레일

온도에 민감한 아스팔트로 이뤄진 비행기 활주로 역시 무사하지 못했다. 런던에서 북쪽으로 30마일(약 48km) 떨어진 도시 루턴에선 공항 활주로가 녹으면서 부풀어 올라 약 2시간 동안 비행기가 이륙하지 못하는 사태가 빚어졌고, 남부 옥스퍼드셔 브리즈 노턴 공군기지마저 같은 문제로 운항을 중단했다.

폭염으로 말라붙은 강(江)도 물류에 타격을 주고 있다. 독일과 스위스, 네덜란드, 덴마크의 산업 지역을 연결하며 독일 해상 운송의 80%를 담당하는 라인강 수위가 지난 17일 기준 78cm 미만으로 떨어져 화물 운송량이 급감한 것이다. 라인강의 통상 수위는 200cm로, 78cm는 선박 침몰 위험의 기준선이다.

환경 과학 분야 유력 학술지인 ‘지구 환경 변화(Global Environmental Change)’에 2018년 실린 논문에 따르면, 폭염은 앞으로 점점 더 많은 도로와 철도를 파손해 2080년대까지 운송 부문 전체 피해의 약 92%를 차지할 전망이다. 미국 백악관 과학기술정책국의 코스타 사마라스 에너지 담당 수석 부국장은 워싱턴포스트에 “대부분의 물리적 기반 시설은 20세기 중반 기온에 기반해 건설됐다”며 “지금의 기후 환경은 그때와 다르고, 도로와 활주로가 녹는 건 이제 가상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했다.

폭염은 특히 인구와 기업이 밀집된 도시 경제에 치명적이다. 도시는 태양열을 흡수하는 콘크리트와 벽돌, 아스팔트 중심으로 이뤄진 데다 녹지가 적고 대량의 에어컨 실외기가 내뿜는 열기로 가득하다 보니 열섬 효과가 크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경우 도시 면적의 10% 이상이 태양열을 최대 95% 흡수하는 검은 아스팔트로 뒤덮여 있다.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은 지난 120년 동안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평균 기온은 3.4도 올랐다고 분석했다.

다른 나라 도시들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국제학술지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실린 캘리포니아대 기후위험센터 논문에 따르면, 지난 33년간(1983~2016년) 전 세계 1만3115개 도시의 폭염 피해를 조사한 결과, 도시 인구가 섭씨 30도 이상 열에 노출되는 정도는 20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폭염에 대한 노출 증가가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성장하는 도시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고 있다”고 했다.

폭염은 싱가포르 같은 도시국가나 서울·도쿄처럼 인구 밀도가 높은 대도시에 특히 큰 타격이다. 더위가 노동 생산성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미국 UCLA대학 연구에 따르면 평균기온이 1도 상승할 때마다 노동 생산성은 2% 떨어진다.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은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폭염이 불러오는 노동 생산성 손실액이 미국에서만 연간 1000억달러(약 129조8500억원)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기온이 오를수록 손실도 늘어나 2030년에는 GDP(국내총생산)의 약 0.5%인 2000억달러, 2050년에는 GDP의 1%인 5000억달러의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이 기관은 전망했다.

노동 생산성 손실은 주로 야외에서 일하는 사람이 많은 건설이나 운송·농업 분야에서 발생하지만, 사무직 근무자도 예외는 아니다. 런던정치경제대학 연구진은 “도시는 특히 폭염에 따른 노동 생산성 손실에 취약하다”며 “기온이 적당한 범위를 벗어나면 사무직 근로자도 실수가 잦아지고 행동이 느려져 연간 19억~23억 유로(약 3조500억원)의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물가 상승 부채질하는 폭염

폭염은 요즘 세계 경제의 최대 화두인 인플레이션의 원인 중 하나이기도 하다. 폭염에 따른 식량 가격 인상을 뜻하는 ‘히트플레이션(heatflation)’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길 정도다. 중국에 이어 세계 2위 밀 생산국인 인도는 120년 만의 봄철 불볕더위로 작황이 부진하자 밀 수출을 전격 금지해 국제 밀 가격을 급등시켰다. 인도 폭염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라니냐(La Nina·동태평양 수온이 낮아지고 서태평양 수온이 상승하는 현상)는 세계 3대 곡창지대에 속하는 북미와 남미 지역에도 큰 가뭄을 일으키고 있다. 미국 농무부(USDA)는 올해 옥수수 파종이 22%만 진행됐다고 보고했는데, 이는 지난 5년간 평균 수치(50%)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유럽 지역은 잦은 산불로 와인용 포도 재배지가 불타 수확량이 25% 떨어질 거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북반구 지역 폭염은 냉방 전력 수요를 높이며 에너지 가격도 끌어올리고 있다. 에어컨은 현재 건물 관련 전 세계 전력 사용량의 약 20%를 차지하는데, 이는 아프리카 전체 전력 사용량의 2.5배에 달한다. 에너지 대란 여파로 지난 6월 6일 기준 1Mmbtu당 9.3달러까지 치솟았던 천연가스 선물 가격은 한 달 뒤 5달러대로 내려앉으며 안정되는 듯했으나 여름철 폭염이 지속하자 8달러대로 다시 급등했다. 미국 동부 지역 석탄 가격의 벤치마크인 중앙 애팔래치아 석탄 가격 역시 지난달 20일 기준 1쇼트톤(약 907kg)당 177.3달러로 올 초 대비 90% 이상 올랐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얼마 전) 원자재 가격 하락 소식은 인플레이션이 정점에 이르렀다는 희망을 부추겼지만, 폭염이 전국을 덮치고 8월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인플레이션 동력이 되살아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경작지 늘어나는 고위도 국가

다만 폭염이 반드시 피해만 일으키는 건 아니다. 달라진 환경에 따라 반사 이익을 얻는 산업이나 지역도 있기 마련이다. 일본의 다이이치세이메이(第一生命) 경제연구소가 2018년 내놓은 분석 결과에 따르면, 평균기온이 섭씨 1도 오르면 에어컨·음료·빙과·자외선 차단제 등 관련 상품에 대한 가계 소비 지출이 0.5%씩 올라 GDP(국내총생산)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아이스크림과 페인트 업계는 요즘 폭염에 따른 특수를 누리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올해 상반기 아이스크림 수출액은 4962만달러로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00년 이래 최대치를 기록했다. 전년 상반기 대비 14% 늘어난 실적이다. 수입액(2818만달러) 역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열을 차단해주는 기능성 내열 페인트도 열섬 효과의 대안으로 떠오르며 수혜를 받고 있다. 영국에선 휘어지는 선로에 하얀색 페인트를 바르고 있고, 미국에선 건물 지붕 색을 밝은 계열 색상 페인트로 코팅하는 ‘쿨 루프(Cool Roof)’ 캠페인이 활발하다. 옥스퍼드대학 연구진은 지붕 색상을 밝은 색상으로 하면 폭염 기간 주간 온도를 최대 섭씨 3도 낮출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시장조사기관 데이터브릿지는 지난해 211억2000만달러(약 27조5300억원) 규모인 글로벌 쿨 루프 시장이 연평균 6.43%씩 성장해 2029년에는 37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로봇으로 대표되는 무인화 산업 역시 폭염에 대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시카고대학 에너지정책연구소(EPIC)의 아난트 수다르샨 이사는 “로봇은 너무 뜨겁다고 불평하지 않는다”며 “기온 상승은 노동에 투자하지 않게끔 하는 또 하나의 이유”라고 밝혔다.

폭염으로 기존 곡창지대 작황은 나빠졌지만, 반대로 추웠던 고위도·극지방 국가들은 기후가 따뜻해지면서 한때 불모지였거나 비생산적인 토지가 비옥한 땅으로 바뀌는 반사 이익을 얻고 있다. 불과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밀과 카놀라(유채), 완두콩 정도만 재배하던 캐나다는 이제 고수익 작물인 옥수수와 대두를 경작할 수 있게 됐고, 러시아는 밀 재배 면적이 계속 확대돼 현재는 세계 1위 밀 수출국으로 떠올랐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기후변화가) 극지방을 특히 빠르게 가열함으로써 고위도 땅을 빠르게 개방하고 있다”며 “작물은 이미 이에 대응해 극지방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리포트에 실린 연구 논문에 따르면, 2099년까지 스웨덴에서 경작 가능한 토지 비율은 8%에서 41%로, 핀란드에선 51%에서 83%로 늘어날 전망이다.

◇태풍처럼 폭염에도 이름 붙인다

페테리 탈라스 유엔 세계기상기구(WMO) 사무총장은 지난달 29일 “기후변화로 인해 폭염이 더 자주 발생하면서 미래에는 이런 종류의 폭염이 일상(normal)이 될 것”이라며 “우리는 앞으로 더 강력한 극한 기상 현상들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경제포럼(WEF) 역시 “전 세계 국가들이 2022년에 기록적인 고온을 목격했다”며 “기후 과학자들은 전례 없는 폭염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탄소 배출량을 줄이려는 국제 사회의 노력이 각종 이해관계로 인해 쉽게 달성하기 어려운 만큼 세계는 앞으로 더 뜨거운 여름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러다 보니 폭염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대처하려는 노력도 강화되고 있다. 스페인 남부 도시 세비야는 지난달 21일 세계 최초로 폭염(暴炎)에 이름을 붙이는 ‘프로메테오 세비야’ 프로젝트를 공개했다. 폭염을 태풍이나 허리케인과 같은 기후 재난으로 보고 예보를 위한 분류 체계를 갖추겠다는 내용이다. 안토니오 무뇨즈 세비야 시장은 “극심한 폭염이 발생하기 최대 5일 전 주민들에게 이를 경고하는 시스템을 만들 것”이라며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광범위한 조치의 일부”라고 설명했다. 폭염의 정도에 따라 1~3등급으로 나누기로 했는데, 세비야는 실제 지난달 말 최고기온이 27년 만에 가장 높은 섭씨 44도까지 치솟자 가장 높은 3등급 폭염으로 분류하고 현지 여성 이름으로 흔히 쓰이는 ‘소에(Zoe)’라는 이름을 붙였다. 세비야를 비롯해 미국 로스앤젤레스, 호주 멜버른, 그리스 아테네 등 전 세계 7개 도시가 폭염에 이름을 붙이거나 새롭게 분류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WMO도 폭염을 비롯한 조기 기후 경보 시스템을 향후 5년 내에 구축해 전 인류가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을 지난 3월 내놨다. 아프리카 지역 국가들 같은 최빈개도국(LDC)과 군소도서개도국(SIDS)에 사는 세계 인구 3분의 1이 제대로 된 조기 경보 시스템을 이용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개선하려는 것이다. WMO은 “다가오는 폭풍이나 폭염을 24시간 전 경고하면 그에 따른 피해를 30%까지 줄일 수 있다”며 “조기 경보 시스템에 8억달러만 투자해도 연간 30억~160억달러의 손실을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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