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디자인·IT개발도 임시직으로.. 전문가 프리랜서 시장 커졌다

성유진 기자 2022. 8. 11.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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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고숙련 직종까지 '긱 이코노미'

국내 중견기업 A사는 유럽 물류 시장 진출에 관심이 생겼지만 사내에 관련 분야 경험자가 없어 자료 조사에 애를 먹었다. 고민 끝에 A사는 비즈니스 플랫폼 리멤버를 통해 글로벌 유통 기업에서 물류 로봇 인프라 구축 업무를 담당한 경력이 있는 B씨를 소개받았다. 1시간 남짓 전화로 인터뷰하며 A사는 B씨에게 ‘회사가 계획 중인 비즈니스 모델이 수요가 있을 것 같은지’ 등을 자세하게 물었다. A사는 이 인터뷰를 통해 사업 계획을 구체화하는 데 도움을 얻었고, B씨는 자신의 업무 경험을 공유하는 대가로 소정의 자문료를 받았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긱 이코노미(gig economy)’가 보편적으로 자리 잡으며 고숙련 화이트 칼라 직종에서도 단시간 근무하고 돈을 버는 일자리가 늘고 있다. 인력은 필요하지만 정규직을 채용하거나 정식 컨설팅을 맡기기엔 부담스러운 기업들과, 한 직장에 얽매이고 싶지 않거나 남는 시간에 부업을 해 수입을 늘리려는 근로자의 이해관계가 맞물린 결과다.

일러스트=김영석

◇전문가 ‘긱 워커’ 전성시대

프리랜서를 위한 플랫폼 ‘크몽’은 요즘 최대 호황을 누리고 있다. IT 개발, 마케팅, 디자인 등 각 분야 전문가가 자신이 제공 가능한 서비스를 등록하면 기업이 가격과 포트폴리오를 보고 프로젝트를 맡길 사람을 선택하는데, 코로나 초기 10만개를 조금 웃돌던 등록 서비스 수가 현재 40만개를 넘어섰다. 전문가 수도 30만명에 달한다. 이 회사 관계자는 “직장인이 투잡 형태로 참여하는 경우가 30% 정도 되고, 처음에는 개인 프리랜서로 시작했다가 맡는 일이 많아지면서 법인 형태로 운영하는 분들도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 긱 이코노미 시장이 급성장한 배경에는 일에 대한 가치관 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 평생 한 직장에서만 일하면서 돈을 번다는 개념이 옅어지며 시간을 비교적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프리랜서로 일하려는 사람이 많아진 것이다. 지난 6월 채용 플랫폼 사람인이 성인 남녀 2848명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긱 워커로 일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작년부터 프리랜서 개발자로 일하는 강모(36)씨는 “정규직으로 직장에 다닐 때보다 20~30% 더 벌고 있고 회사 인간관계 스트레스도 줄어 만족한다”고 말했다. 다만 근로자 입장에선 유연성을 택하는 대신 회사가 제공하는 보험·교육 혜택 같은 안정성을 잃는 단점도 분명히 존재한다.

자신의 전문성을 활용해 추가적으로 수입을 올리려는 ‘N잡’ 열풍도 전문가 프리랜서 증가에 한몫했다. 통계청 마이크로데이터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 국내 부업 인구수는 약 63만명에 달한다. 비교적 안정적인 본업이 있다고 볼 수 있는 상용 근로자 중에서도 부업에 참여하는 인구가 최근 2년간 16만명에서 19만명으로 늘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재택근무로 출퇴근 시간이 줄거나 소득이 감소한 직장인들이 부업을 통한 추가 소득 창출에 관심을 갖게 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다만 N잡의 경우 현 직장의 겸업 금지 조항 유무 등을 사전에 살펴봐야 한다. 노무법인 길의 안진명 노무사는 “부업을 하는 것 자체가 해고 등 징계 사유는 아니지만 회사에서 근무 태만이나 업무 정보 유출 등 부업이 본업에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하면 문제가 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거엔 알음알음 이뤄지던 프리랜서 구인·구직을 요즘은 플랫폼을 통해 손쉽게 할 수 있게 된 것도 전문가 긱 워커 시장을 키운 요인이다. 채용 플랫폼 원티드랩은 2020년 4월 프리랜서 매칭 서비스 ‘원티드긱스’를 별도로 출시했고, 리멤버도 최근 신사업으로 전문가 인터뷰와 설문조사를 기반으로 한 리서치 서비스를 시작했다. 사람인은 올 초 프리랜서 전문 플랫폼 ‘사람인 긱’을 정식으로 출시했고, 탤런트뱅크는 재작년 말 기업과 전문가를 연결해주는 서비스를 내놨다. 제조 산업 전문가를 매칭해주는 기술자숲, 디자인 분야에 특화된 라우드소싱, IT 아웃소싱을 전문으로 하는 위시켓 등 플랫폼 종류도 세분화되고 있다.

◇“효율성 높다” 기업 선호 높아져

이런 트렌드는 기업의 수요와도 맞아떨어졌다. 원하는 인재를 채용하기도 쉽지 않고, 일단 정규직으로 채용하면 인건비 부담도 적지 않다 보니 기업들도 전문가 프리랜서에게 프로젝트 단위로 일을 맡기는 것을 선호하는 추세다. 정규직을 채용하기 전 새로운 프로젝트를 실험해 보거나 시장에 빠르게 물건을 내놔야 할 때도 유용하다. 탤런트뱅크의 경우 올해 상반기 기업의 전문가 연결 의뢰 건수가 작년 같은 기간 대비 40% 늘었고, 현재까지 누적 의뢰 건수가 5000건에 달한다. 이곳에선 전·현직 재직자나 전문가가 하루 정도의 짧은 조언을 제공하거나, 짧으면 1개월, 길면 1년 정도까지 기업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신규 패션 브랜드의 온라인 마케팅 전략 수립, 장갑 제조 회사의 신제품 기술 검토처럼 예전에는 정직원을 고용해 했을 법한 일들도 상당수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특히 인재난을 겪는 중소기업에서 원하는 때만 프로젝트 단위의 맞춤형 전문가를 고용하려는 수요가 많다”고 말했다.

비용은 전문 지식의 수준, 일의 종류와 기간 등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예컨대 크몽, 원티드긱스, 위시켓 등 프리랜서 플랫폼에서 모바일앱 제작 비용은 수십만원대부터 수천만원대까지 제시돼 있다. 탤런트뱅크에 따르면 한 중소 건강식품업체는 물류 관리 효율화와 관련된 현장 방문 자문에 60만원을 지불했고, 한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 업체는 자체 브랜드 상품을 개발해 판매하는 과정에서 이커머스 20년 경력 전문가에게 컨설팅을 받으며 3개월간 1050만원을 지급했다.

해외에서도 전문가 프리랜서 시장은 갈수록 커지는 중이다. 글로벌 프리랜서 플랫폼 업워크(Upwork)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미국의 프리랜서 비율은 재작년과 거의 비슷했지만, 세부적으로 보면 저숙련 프리랜서는 감소한 반면 고숙련 프리랜서는 오히려 증가했다. 미국 프리랜서 가운데 프로그래밍, 디자인, 비즈니스컨설팅 같은 고숙련 프리랜서 비율은 2019년 45%에서 2021년 53%까지 늘었다. 업워크의 헤이든 브라운 최고경영자는 “코로나 이후 원격 근무가 확대되고, 가족 돌봄 등을 이유로 유연한 근무 방식을 원하는 사람이 많아지며 고숙련 프리랜서가 늘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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