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만물을 디지털로 복제.. 코로나 백신도 그 덕에 빨리 개발"

곽창렬 기자 2022. 8. 1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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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샬레 다쏘시스템 회장 인터뷰

프랑스의 소프트웨어 업체 다쏘시스템은 1981년 설립됐으며 빅데이터·3D 기술을 바탕으로 한 ‘디지털(버츄얼) 트윈’에 특화된 회사다. 디지털 트윈은 도시·제품·공장·건물, 인체 등을 디지털로 복제한 것으로, 현실에서는 어려운 시뮬레이션을 가상 공간 안에서 진행할 수 있게 해주는 도구다.

일반인들과는 별 관련 없는 기술처럼 보이지만, 최근 이 기술이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데 숨은 공로를 세웠다. 화이자와 모더나, 존슨앤존슨 등 글로벌 제약사들이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디지털 트윈 기술이 요긴하게 쓰인 것이다. 그 덕분에 최소 5년은 걸릴 것이라던 코로나 백신이 1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안에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지난 6월 서울을 방문한 버나드 샬레(65) 다쏘시스템 회장을 WEEKLY BIZ가 인터뷰했다.

버나드 샬레 다쏘시스템 회장은 "10년간 생명과학 분야에서 쌓아온 시뮬레이션 기술이 코로나 백신 개발을 앞당기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샬레 회장이 서울 삼성동 아셈타워에 있는 다쏘시스템 코리아 사무실에서 유체역학 시뮬레이션 화면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다쏘시스템

◇백신 개발 앞당긴 숨은 공신

-디지털 트윈 기술이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어떻게 적용됐나.

“우선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디지털 기술로 빨리 복제해냈다.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리는 종양 세포를 디지털 상에서 복제해내는 기술을 10년 이상 연구해 왔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종양보다 훨씬 쉽다. 백신 개발에 필요한 임상시험에도 우리가 구축해 놓은 기술이 요긴하게 쓰였다. 보통 임상시험은 실험군과 대조군으로 나눠 진행한다. 그런데 우리는 디지털 트윈 기술로 가상의 대조군을 하나 더 만들었다. ‘합성 컨트롤 대조군(synthetic control arm)’이라고 부르는데, 과거 임상시험에서 쌓은 빅데이터에서 AI나 머신러닝 기술을 활용해 가상의 결과를 얻을 수 있는 대조군을 뜻한다. 환자 모집이 어렵거나, 약물을 투약하는 과정에서 윤리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희귀 질환에 대한 임상시험에 활용할 수 있다. 화이자와 모더나, 얀센 등 백신 회사들이 코로나19 백신을 제작하면서 이 기술을 썼다.”

-코로나19 발발 초기 중국 우한 병원 건립에도 참여했다고 들었다.

“우리는 백신 기술 외에도 시뮬레이션을 통해 공기 흐름을 분석하고 바이러스 전파 경로를 예측하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 코로나19 발발 초기 중국 우한에는 환자를 긴급 수용하기 위해 모듈식(조립형) 병원이 건립됐다. 병원 내 환기 장치를 설치해야 하는데, 자칫 잘못하다가는 바이러스가 확산할 우려가 컸다. 그때 가상 환경에서 공기 흐름을 예측하는 우리 기술이 적용됐고, 1박 2일 만에 병원 환기 장치의 디자인과 설계를 마칠 수 있었다. 우한에 불과 2주 만에 병상 1000개를 세울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됐다.”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나.

“그렇지는 않다. 다만 오래전부터 질병 예방을 위해 생명과학 분야에도 공을 들였고, 그렇게 쌓은 기술이 코로나19 발발로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우리는 2009년 ‘바이오 인텔리전스(Bio Intelligence)’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3D 복제 기술로 인간의 장기와 세포를 디지털 상에서 똑같이 설계하고, 장기 일부를 자르거나 약물을 투입했을 때 어떤 반응이나 결과가 나오는지 파악하는 게 목표였다. 특히 암 종양이 어떻게 생성되고, 어떻게 자라는지 연구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10년이 넘는 연구 과정 동안 수많은 데이터를 축적했다. 2019년에는 임상 시험에 전문성이 있는 미국 기업 ‘메디데이터’라는 업체도 인수했다. 세포와 장기를 3D로 복제하는 기술에 더해 각종 임상시험 기술까지 결합하면 시너지 효과가 있을 거라고 봤던 것이다. 이렇게 생명과학 분야에 한창 노력을 기울이는 와중에 코로나19가 터졌다.”

◇무너진 공급망도 디지털 트윈으로 찾아내

다쏘시스템은 지난해 기준으로 7조40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180여 국에 30만 고객 업체가 있는데, 국내 고객사로는 삼성전자, 포스코, LG전자, 현대자동차 등 2만2000여 기업들이 있다. 기계 공학 박사 출신으로 1983년에 다쏘시스템에 입사한 버나드 샬레 회장은 1996년 최고경영자가 된 이후 26년 동안 회사를 이끌어 왔다.

-디지털 트윈은 아직도 일반인들에게 생소하다. 어떤 기술인가.

“우리 회사가 처음 주목받은 것은 1986년 항공기 시제품을 3D 디지털 작업으로 처음 제작해 보잉사에 납품하면서다. 이때부터 삼성전자와 현대차 등 세계적인 제조업체들이 3D 디지털 설계를 바탕으로 한 시뮬레이션을 생산에 도입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세상 만물을 디지털로 복제할 수 있다고 보면 된다. 도시나 국가 전체를 3D 모델로 구현해내는 ‘트윈시티’ 프로젝트 등도 진행했고, 뇌, 심장, 피부 등을 3D 가상으로 복제하는 등 생명과학 분야로도 영역을 넓혔다.”

다쏘시스템이 3D모델링 기술로 구현한 시뮬레이션 심장. /다쏘시스템

-디지털 트윈 기술은 산업 현장에서 어떻게 활용되나.

“예를 들어 공급망 문제 해결에도 이 기술이 요긴하게 사용될 수 있다. 한 기업이 특정 업체로부터 원자재 등을 공급받다가 문제가 생기면 납품 업체를 바꿔야 한다. 기업은 새로운 체계에 적응해야 하고, 앞으로 어떤 일이 발생하게 될지 몰라 당황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디지털 트윈 기술로 시뮬레이션을 거치면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다. 다른 업체로부터 공급받을 경우 어떤 영향이 있고,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업체로부터 원자재를 공급받아야 회사에 가장 이익이 될지도 파악할 수 있다. 배송업체 DHL과 월마트 같은 업체가 우리가 개발한 공급망 관련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있다.”

스웨덴 가구업체 이케아가 내놓은 가상 부엌에도 다쏘시스템의 디지털 트윈 기술이 쓰인다. 전 세계적으로 약 2500만 명의 사용자가 가상 세계에서 부엌을 리모델링했고, 지난 6개월 동안 약 150만명이 시뮬레이션을 바탕으로 실제 부엌을 꾸몄다.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서 한 관람객이 다쏘시스템이 3D 기술로 제작한 인체를 AR(증강현실) 안경을 쓰고 관람하고 있다. /다쏘시스템

샬레 회장은 “산업안전 분야에도 디지털 트윈 기술이 적용된다”고 설명했다. 공장이 운영되지 않는 야간 시간에 로봇이나 레이저를 사용해 공장 내부를 3D 기술로 스캐닝해 작업자 건강에 문제가 될 만한 곳이 어디인지 파악하는 방식이다. 현재 화장품 회사 록시땅 등이 이 방식으로 공장 내부 안전 시스템을 구축했다. 그는 “다만 기업에 충분한 인센티브가 없다 보니 도입 속도가 늦은 편”이라고 말했다.

-디지털 트윈 분야에서 한국의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상당수 한국 제조업체들은 여전히 시뮬레이션보다는 물리적인 방식에 의존하고 있다. 좀 더 과감하게 혁신할 필요가 있다. 한국 정부도 이 분야에 좀 더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 우리는 2009년 ‘바이오 인텔리전스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나 2019년 미국 임상시험 회사를 인수할 때 프랑스 정부로부터 물심양면으로 많은 지원을 받았다. 그것이 백신 조기 개발의 원동력이 됐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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