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그만 엽서·담뱃갑에 꾹꾹 눌러 새긴.. 가족 향한 그리움
국립현대미술관 작품 90점 전시
아내와 연인시절 주고받은 엽서
소통 수단 넘어 하나의 작품으로
가족과 재회 열망 담은 은지화 등
작은 그림들 '시대의 자화상' 남아
'닭과 병아리' 등 첫 공개작 눈길
“나는 우리 가족과 선량한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진실로 새로운 표현을, 위대한 표현을 계속할 것이라오.”
특히 이건희컬렉션을 통해 1940년대 제작된 엽서화 40점이 대거 기증돼 이번 전시에 36점이 나왔다. 아내와 두 아들 이름을 적어 편지와 함께 접어 동봉해 보냈던 편지화도 이번 전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의사소통을 넘어 작품으로 남게 된 조그만 그림들이 이번 전시 주인공인 셈이다.
이중섭은 일제강점기 1916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났다. 8세 때 평양 외가로 이주해 보통학교에 입학해 동기 김병기의 아버지 김찬영 작업실을 출입하며 각종 화구와 ‘더 스튜디오(The Studio)’ 같은 유명 미술서적을 접하고 큰 자극을 받았다. 16세 오산고등보통학교에 다닐 때 임용련에게 미술교육을 받았고 17세부터 20세 때까지 학생 전람회에 작품을 출품해 잇따라 입선했다. 20대 일본 유학 시절 운명의 상대를 만난다. 23세에 일본 도쿄문화학원에 입학해 자유로운 교풍 속에서 화가로 성장하던 중 후배인 야마모토 마사코를 만난 것이다. 1945년 원산에서 결혼하고 야마모토 마사코에게 ‘남쪽에서 온 덕이 많은 여자’라는 뜻으로 남덕이란 이름을 지어 불렀다. 1948년, 1949년 두 아들 태현, 태성을 얻었다.
엽서화는 그가 1940년 연인이던 야마모토 마사코에게 보낸 것에서 시작됐다. 가로 14㎝ 세로 9㎝ 관제엽서에 가벼운 채색을 곁들이며 사랑을 담았다. 엽서화는 현재까지 총 88점이 남아있다고 파악된다. 1940년 첫 엽서화 1점, 1941년 75점, 1942년 9점, 1943년 3점이다. 엽서화는 이중섭이 세상을 떠나고 23년 뒤인 1979년에 미도파백화점화랑에서 열린 ‘이중섭 작품전’에서 처음 소개됐다.
이중섭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은지화는 이건희컬렉션을 통해 총 27점이 기증됐다. 이번 전시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조그만 은지화들을 대거 모아 놓아 은은하고 귀하게 반짝이는 전시장 풍경은 이채롭고 감격적이다.
출생부터 죽음까지 이중섭 일생은 일제강점과 해방, 전쟁 시기와 정확히 겹친다. 민족사 가장 아픈 시기를 살아낸 그의 일생에서 은지화는 짧은 행복과 절망의 중간, 희망을 꼭 움켜쥐고 있었던 시기에 집중적으로 그려졌다.
그는 가족을 데리고 1950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경상남도 부산으로 월남하고 다시 부산항에서 제주로, 또 제주항에서 서귀포로 걸어 피란했다. 아내, 두 아들과 살을 비비고 생활한 기간은 서귀포 알자리 동산마을 이장님 댁 곁방 한칸을 얻어 지낸 1951년 1월부터 12월까지 단 1년. 이중섭은 이때를 평생 그리워했다.
이번 전시에는 문헌으로만 전해지다가 실물로는 최초 공개되는 작품 두 점이 있다. 1950년대 전반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닭과 병아리’, ‘물놀이 하는 아이들’이다. 언제부터 이건희 회장이 소장한 것인지, 누구의 손을 거쳐갔는지, 그간 왜 전시에 한번도 나온 적이 없는지는 학예사도 “현재로선 알 수 없다”고 했다. 1942년 종이에 연필로 그려진 작품 ‘소와 여인’은 초기 희귀작이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뒤 이중섭과 가족은 1950년 부산으로 피란하면서 그림들을 챙겨 들고 오지 못했다. 이 때문에 1940년대 작품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그런 가운데 ‘소와 여인’은 이중섭의 “초기 작품세계를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작품”이라는 설명이다.
편지지에 장식한 그림, 엽서 뒤를 채운 그림, 다방과 술집, 길거리, 쓰레기통에서 모은 담뱃갑 속 은지 위에 그린 그림. 그가 남긴 작품들엔 대작이 보이지 않는다. 온전한 바탕에 그린 것도 적다. 깨끗한 도화지나 커다란 캔버스를 설령 구할 수 있었다 해도, 그 온전한 흰 바탕이 그 시대 정직한 화가들에게는 죄책감으로 다가왔을지 모른다. 생존에 모든 힘을 쏟는 와중에 남겨진 공간을 감사히 여기며 그림으로 채웠고, 버려진 은박지 구겨짐도 주어진 여건 삼아 그림을 그렸다. 손바닥만 한 그림들로만 채워진 전시장 풍경은 당대 민족 자화상으로 다가온다. 전시장 벽면에는 그를 위로하는 후세의 의식처럼 거대한 디지털 화면에 엽서와 은지화를 확대해 보여주는 영상이 띄워졌다. 내년 4월23일까지.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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