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폭우 '받아쓰기' 보도, "대통령님 파이팅"과 다를 바 없다
[민언련 신문방송 모니터 보고서]
[미디어오늘 민주언론시민연합]
8월8일부터 수도권에 집중호우가 이어지며 곳곳에서 인명 피해와 침수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특히 서울 동작구의 경우 시간당 최대 141mm가량 폭우가 쏟아졌는데, 서울 기상 관측이 시작된 지 115년 만에 가장 많은 양의 비가 내린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기록적 폭우로 재난상황이 발생하자 재난 컨트롤타워인 대통령실에 관심이 집중됐습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8월 9일부터 10일까지 나온 집중호우 관련 보도 중 윤석열 대통령이 등장한 보도를 전수분석했는데요. 대통령실 발표를 검증 없이 받아쓰거나 대통령의 '당연한' 업무지시를 띄워주는 보도행태가 나타났습니다.
대통령실 발표 검증 없이 '똑같이' 전하는 언론
윤석열 대통령은 서울 서초동 자택 주변이 침수되자 8월 9일 오전 대통령실로 출근하지 못하고 집에서 실시간 보고를 받으며 비 피해를 점검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전날 저녁부터 이날 새벽까지 자택에서 정부 관계자와 통화하며 실시간으로 피해 상황을 보고받고 업무를 지시했다고 밝혔는데요. 재난 컨트롤타워 수장인 대통령이 집에서 전화로 업무 지시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정치권과 시민 비판이 나왔습니다.
대통령실은 “대통령이 있는 곳이 곧 상황실”이라며 반박했지만, “자택에 위기관리 대응 시스템이 마련돼 있냐”는 기자 질문에는 “사저에 어떤 시스템이 있는지 공개하기 어렵다”고 답했으며, “실시간으로 보고받고 지시 내릴 수 있는 시스템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는 얘기냐”는 질문엔 답하지 않았습니다. 윤 대통령이 자택에서 실시간으로 피해 상황을 점검하고 업무를 지시했다고 강조했지만, 자택에 위기관리 대응 시스템이 제대로 마련돼 있는지조차 확답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런 가운데 대다수 언론은 대통령실 발표를 검증 없이 그대로 전하기에 바빴습니다. 동아일보, 조선일보, TV조선, MBN 등 35개 언론사는 “9일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전날 저녁부터 이날 새벽까지 한덕수 국무총리,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오세훈 서울시장과 번갈아 통화하며 실시간으로 비 피해 상황을 보고받고 피해가 커지지 않도록 만전을 기할 것을 당부”했다는 내용을 똑같이 혹은 문구만 약간 바꿔 그대로 전했습니다. 특히 뉴스통신사 보도는 일반 언론사가 인용하거나 전재하는 점에서 더욱 정확성이 요구되지만, 3대 뉴스통신사 연합뉴스, 뉴시스, 뉴스1도 검증 없이 보도한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경향신문, 중앙일보, 오마이뉴스 등 22개 언론사는 대통령실 발표와 정치권과 시민 비판을 함께 전했지만, 대통령실 발표를 검증 없이 전하며 정치권과 시민 비판을 함께 나열한 수준에 그쳤습니다.
월간조선 “발 동동 구르던 윤석열 밤 새워”
대통령실 발표를 검증 없이 전한 보도 중에는 윤 대통령 자택 업무 지시를 띄워주는 보도도 적지 않았습니다. 조선일보 <윤 대통령 서초동 자택 주변 침수… 새벽까지 전화로 상황 챙겨>(8월9일 이가영 기자)는 제목부터 “새벽까지 전화로 상황 챙겨”라며 윤 대통령의 업무 지시를 부각했는데요. 윤 대통령이 “전날 저녁부터 이날 새벽까지…통화하며 실시간으로 비 피해 상황을 보고받고 피해가 커지지 않도록 만전을 기할 것을 당부”했다고 상세히 전했습니다. 말미에 다시 한번 “윤 대통령은 자택에서 새벽까지 전화기를 붙잡고 대책을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고 했는데요. 제목부터 본문까지 세 번이나 윤 대통령의 전화 업무 지시를 강조한 겁니다.
월간조선 <구멍난 하늘, 밤 지샌 윤석열… 도로 마비에 자택서 상황지휘>(8월9일 최우석 기자)도 제목에서 “밤 지샌 윤석열”, 본문에서 “구멍난 하늘에 여름 휴가서 복귀한 윤석열 대통령도 밤을 꼬박 지샜다”며 윤 대통령의 업무 지시를 부각했습니다. “(자택 주변 도로 침수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등 현장에 방문하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던 윤 대통령은 헬기 이동도 검토했으나 심야 주민 불편 등을 고려, 포기하고 결국 자택에서 밤을 새워가며 상황을 지휘했다”며 현장에 방문하지 못한 윤 대통령의 초조한 심경까지 묘사했습니다. 급기야 “(윤 대통령이 출근시간 조정, 위험지역 사전 주민대피 등) 지시를 신속하게 내린 데”는 “(윤 대통령 자택 주변) 침수 피해”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자택 주변이 침수되면서 윤 대통령이 시민 피해를 줄이기 위한 지시를 신속하게 내릴 수 있었다는 것인데요.
수도권 소재 행정·공공기관과 산하기관 및 단체 출근시간을 오전 11시 이후로 조정했지만, 출근길에 오른 뒤 연락받아 출근시간 조정 자체가 의미 없게 된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민간보다 우선으로 피해 수습과 복구에 나서야 할 공무원의 출근시간 조정은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도 잇따랐습니다. 경향신문 <'물폭탄'에 출근길 아수라장… “대통령도 재택하는데 우린 왜 안 되냐”>(8월9일 이유진·유경선·박하얀 기자)에 따르면,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무정부 상태'라는 단어가 1만 회 이상 언급되며 실시간 트렌드에 올랐습니다. 자택 주변 침수로 대통령이 현장에서 대응하지 못하고 전화 업무 지시만 내렸다는 데 따른 것인데요. 대통령 지시가 신속하고 적절하지 않았다는 지적과 더불어 대통령의 전화 업무 지시가 부적절했다는 평가가 이어진 것이죠. 조선일보와 월간조선 등의 보도가 시민을 대변하고 있는지, 대통령실과 대통령을 대변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윤석열 '퇴근길 침수 발견' 발언, 보도 안 하거나 비판 안 하거나
윤 대통령은 8월 9일 오전 국무회의를 마친 뒤, 그날 밤 침수 피해로 3명이 희생된 서울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 주택을 찾았는데요. “서초동에 제가 사는 아파트가 좀 언덕에 있는 아파트인데도, 거기가 1층에 물이 들어와서 침수될 정도였다”, “제가 퇴근하면서 보니까, 아래쪽에 있는 아파트들은 벌써 침수가 시작되더라”고 말했습니다. 대통령이 이미 퇴근길에 폭우상황의 심각성을 파악했다는 것인데요. 대통령의 재난 대응 태세가 안일하다는 비판이 이어졌습니다.
'퇴근길에 침수상황을 봤다'는 윤 대통령 발언을 전한 언론사는 39개사입니다. JTBC, MBN, TBS 등 26개 언론사는 대통령 발언에 별도 비판 없이 정치권과 시민의 비판을 함께 나열하듯 전하는 데 그쳤습니다. 대통령 발언과 비판 목소리를 함께 전한 언론사는 경향신문, 민중의소리, 오마이뉴스 등 9개사뿐입니다. KBS, MBC, 조선비즈, 파이낸스투데이는 대통령 발언만 전했는데요. KBS는 <윤 대통령, 호우 피해현장 방문…“취약계층 주거안전 대책 수립”>(8월9일 조태흠 기자)에서 윤 대통령이 '퇴근길에 아래쪽 아파트는 침수가 시작됐더라'고 한 발언을 전하며 “어젯밤 호우 상황을 되짚기도 했다”고만 전했습니다. MBC는 <윤 대통령 '자택 지시' 논란>(8월9일 박윤수 기자)에서 윤 대통령이 퇴근 후 자택에 머문 것과 관련한 논란을 보도하면서도 '퇴근길 침수상황을 봤다'는 대통령 발언은 짚지 않았습니다. 대통령이 퇴근길에 침수 피해를 발견했다는 발언을 전하면서도 비판 목소리를 전하지 않고 대통령이 어젯밤 호우 상황을 짚었다거나 대통령의 퇴근길도 쉽지 않았다고만 언급한 것입니다.
이미 구현된 '수위 모니터 시스템 개발 지시'도 그냥 전하기만
윤 대통령은 행정안전부와 환경부 등 각 부처에 집중호우 대책을 지시했는데요. 환경부에는 “국가 하천, 지방 하천, 지류 전반의 수위 모니터 시스템을 개발”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곧바로 해당 시스템은 이미 6년 전 구현됐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환경부는 2016년부터 한강홍수통제소 홈페이지에서 하천 수위 모니터링 시스템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해놓았습니다.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 섬진강 등 전국 하천 수위를 분 단위로 공개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대통령이 말한 수위 모니터는 지류, 지천까지 포함하는 정밀한 예측 시스템”이라고 해명했지만, 분명 대통령은 “국가 하천, 지방 하천, 지류 전반의 수위 모니터 시스템을 개발”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이미 수위 모니터링 시스템이 개발돼 있던 걸 대통령이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충분히 제기될 만합니다.
대통령 지시사항을 검증 없이 전한 언론사는 상당했습니다. KBS, SBS, YTN 등 50개 언론사입니다. 3대 뉴스통신사 연합뉴스, 뉴시스, 뉴스1은 이번에도 검증 없이 대통령 지시를 그대로 전했습니다. 대통령 지시사항이 이미 6년 전 개발됐다며 문제점을 지적한 언론은 12개사입니다. 그중에서도 대통령 발언을 검증 없이 전하는 보도 하나 없이 문제점을 지적한 곳은 한겨레, 국민일보, 부산일보, 매일신문, 미디어스, 문화저널21, 조세일보, 세계일보 등 8개사뿐입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받아쓰지 말자'는 다짐 벌써 잊었나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 당시 언론의 '전원 구조' 오보는 아직도 생생합니다. 특히 KBS, MBC 등 공영방송의 오보는 뼈아프게 남아 있습니다. 오보의 여파는 참담했지만, 원인은 간단했습니다. 사실 확인 없는 받아쓰기는 오보를 내는 데 그치지 않고 더 많은 생명을 구할 기회조차 앗아갔습니다. 2014년 4월20일 한국기자협회는 「세월호 참사 보도 가이드라인」을 발표했습니다. 언론은 “신속함에 앞서 무엇보다 정확”해야 하며, “보도된 내용이 오보로 드러나면 신속히 정정보도를 하고 사과”해야 한다고 다짐했습니다. 언론은 2014년 다짐을 잊기라도 한 듯, 이번에도 윤석열 대통령 발언과 대통령실 발표를 사실 확인 없이 받아썼습니다.
8월8일,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한 윤 대통령의 출근길 약식회견에서 아리랑TV 기자가 “대통령님 파이팅”을 외쳤습니다.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8월8일)에서 주영진 앵커는 “기자는 그러면 안 된다”, “언론은 권력과는 '불가근불가원'이라고 하는데 감정이입해서 파이팅 하는 건 앞으로는 하지 말아야 한다”고 비판했습니다. 미디어오늘은 <사설-기자는 대통령의 응원단장이 아니다>(8월9일)에서 해당 기자의 언동이 부적절했다고 비판했는데요. “대통령님 파이팅” 같은 발언만 부적절한 것은 아닙니다. 대통령실 발표나 대통령 발언을 아무 검증 없이 받아쓰는 것도 노골적인 응원멘트처럼 '대통령의 응원단장'이 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 모니터 대상 : 2022년 8월9~10일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검색된 윤석열 대통령 집중호우 관련 기사 전체
※ 미디어오늘은 민주언론시민연합의 '민언련 모니터 보고서'를 제휴해 게재하고 있습니다. 해당 글은 미디어오늘 보도 내용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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