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유일 군 단위 월간지 '월간 옥이네' 다른 농촌서도 나와야죠"

강성만 2022. 8. 11.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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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짬] 옥천 사회적 기업 고래실 이범석 대표
이범석 대표가 인터뷰 뒤 둠벙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강성만 선임기자

“5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빠르게 지났어요. 많은 일들이 일어났죠. 대기업이나 대전의 지역 미디어에서 일할 때는 제가 하는 활동 결과가 잘 보이지 않았는데 여기선 변화가 보였어요. 그게 가장 재밌어요. ‘옥천문화공간 둠벙에서 모이자, 둠벙에서 강연 듣자’ 그런 말을 들을 때이죠.”

이범석(50)씨는 2017년 3월에 인구가 채 5만이 안 되는 ‘시골마을’ 충북 옥천에 문화적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뜻으로 사회적 기업 ㈜고래실을 만들었다. 충남대 언론정보학과를 나온 그는 앞서 대기업을 다니던 2007년에 대전의 지역 월간지 <월간 토마토>를 공동창업하기도 했다.

그는 고래실을 만들고 그해 7월부터 전국 유일의 군 단위 월간지 <월간 옥이네>(편집장 박누리)를 내고 있다. 처음 시작할 때 다 3년을 버티기 힘들다고 발행을 말린 이 잡지는 지난달 창간 5년 호를 냈고 이달엔 옥천 공설시장을 커버스토리로 62호를 발간했다. 한국잡지협회가 뽑는 우수콘텐츠 잡지로도 2020년부터 내리 3년 뽑혔다.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지역 매체 <옥천신문>이 권력 감시에 초점을 맞춘다면 우리는 지역의 평범한 사람들 이야기를 주로 다룹니다. 여기에 더해 기본소득이나 지역 미디어, 길고양이 등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관심을 가질 만한 주제들도 특집으로 다뤄왔어요. 정기 구독자 500명 중 외지인이 6대4로 더 많은 것도 이 때문이죠.”

지난 9일 고래실이 옥천역 근처에서 운영하는 ‘지역문화창작공간’ 둠벙에서 이 대표를 만났다.

<월간 옥이네> 최근호.

3년 이상 버려진 허름한 막창집 건물을 새로 꾸민 ‘둠벙’은 고래실의 꿈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공간이다. 고래실 창립 초기에는 30평 남짓한 이곳에서 북 콘서트나 공연·전시·강연 등의 행사를 해오다 2019년에 한 금융사 지원을 받아 청소년 대상 만화 카페로 리모델링했다. “하루 30명 정도 청소년들이 찾아요. 옥천의 유일한 청소년 문화 공간이죠. 주말에는 바리스타를 꿈꾸는 청소년들을 위한 자립 카페로 활용해요. 주말 수익금은 모두 청소년들에게 돌아가죠.”

고래실의 중점 사업 영역은 마을 여행과 기록, 문화, 디자인, 재생이다. 그간 옥천 여행 활성화를 위해 마을여행 코스 7개를 만들어 주민들과 답사를 해왔고 요즘은 청년들의 옥천 이주를 돕는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을 꾸리고 있다. <옥천 구읍 이야기>나 <정겨운 옥천 사투리> 등 지역 주제 책도 7권 냈다. 올 초에는 행정안전부 지역자산화 사업으로 받은 저리 대출금으로 건물을 사들여 옥천 유일의 게스트하우스도 열었다.

그가 발행인인 <월간 옥이네> 최근호를 보니 12년 전 문을 연 옥천 공설시장 상인 20여 명의 살아가는 이야기는 물론 시장이 직면한 문제와 그 해법까지 살핀 특집 기사가 눈에 띈다. 옥천 사람들의 생생한 삶의 현장이 잡지 곳곳에 빼곡하다.

지역 교육·문화 인프라 키우려
5년 전 창업해 월간지도 발행
3년 연속 ‘우수콘텐츠 잡지’에
청소년 유일 문화공간 ‘둠벙’도

“활동 결과 눈에 보이니 즐거워
소극장 만들고 청년 잡지도 꿈꿔”

대표를 빼고 모두 39살 이하 청년인 고래실 직원 13명 중 7명이 <월간 옥이네> 기자와 편집디자이너다. “보도자료를 베끼지 않고 광고 기사도 쓰지 않는” 군 단위 월간지가 그간 지역에 미친 영향이 궁금했다. “우리 기자들이 1970년대 대청댐 건설로 수몰 피해를 본 옥천 주민들을 심층 인터뷰한 내용이 곧 책으로 나옵니다. 앞서 잡지에서 몇 차례 연속해 수몰 주민들 이야기를 기사로 다뤘는데요. 군에서 이를 보고 기록사업을 제안했죠. <월간 옥이네>가 없었다면 이런 소중한 이야기가 묻힐 뻔했죠. 재작년엔 옥천 지역 중학생 15명을 대상으로 농촌 기본소득 실험을 하고 기사로 내보냈어요. 이 보도 뒤 군 의회에서 13~18살 청소년에게 1년에 7~10만원 바우처 지원을 하는 조례를 통과시켰죠.” 그는 “옥천 주민들이 잡지가 5년이나 버틴 걸 대견해 하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인터뷰로 잡지에 소개되는 주민들도 ‘나도 주인공’이라며 무척 뿌듯하게 생각한다”고도 했다.

고래실은 출범 때 5년 동안 직원 다섯의 인건비를 대주는 ‘사회적 기업가 육성 사업’ 지원을 받았다. 내년부터는 이 지원금을 받지 못한다. “2019년부터 작지만 매년 흑자를 내고 있어요. 옥천과 인근 지역에서 수주하는 출간물 외주 디자인 매출이 가장 크죠.” 그는 지원금이 끊기는 내년 이후에도 지금과 같은 규모로 고래실을 운영할 수 있을 것으로 자신했다. “지난 5년 재정 자립을 가장 크게 고민했거든요. 지금은 가능하다는 확신이 생겼죠.”

경북 영천에서 나 어려서부터 대전에서 자랐다는 그가 옥천으로 눈을 돌린 데는 황민호 <옥천신문> 대표의 권유가 컸단다. “대학 후배인 황 대표가 ‘옥천이 가까운 대도시인 대전에 교육·문화적으로 흡수당하고 있다’면서 제가 대전에서 미디어를 운영해본 경험을 살려 옥천에서 문화콘텐츠 사업을 하면 어떻겠냐고 적극적으로 권했죠. 고래실이 초기에 자리 잡는 데도 <옥천신문>이 그동안 구축한 지역사회 연결망과 콘텐츠 도움이 컸죠.” 청암 송건호 기념사업회 이사이기도 한 그는 황 대표와 함께, 지난해 12월 첫 방송 송출을 한 옥천FM공동체라디오방송 <오비엔>(OBN) 설립도 주도했다.

지난 5년 가장 어려웠던 점을 묻자 그는 “직원들의 잦은 이직”을 꼽았다. “직원 13명 중 10명이 외지 출신입니다. 처음엔 옥천 사는 것을 좋아하는 데 그 기간이 길지 않더군요. 평균 2년이면 떠나는 것 같아요.”

앞으로 계획을 두고는 “옥천 지역 청년을 위한 잡지도 따로 내고 옥천읍에 소극장도 열고 싶다”고 했다. “옥천을 문화나 교육적으로 재밌는 곳으로 만들면 여기서 성장한 청소년들이 나중에 다시 옥천으로 돌아올 바탕이 될 겁니다. 사실 제가 옥천으로 온 데도, 5년 전 옥천 찻집에서 들은 ‘인형극 보러 아이들과 함께 대전에 갈 것’이라는 한 엄마의 말이 영향을 많이 끼쳤죠.”

<월간 옥이네>는 지난달 창간 5년을 맞았다. 고래실 제공

내후년까지 <월간 옥이네> 구독자를 천명으로 늘리는 것도 사업 목표 중 하나라는 이 대표는 다른 농촌 지역에서도 <월간 옥이네> 같은 잡지가 더 많이 나왔으면 한다고도 했다. “한해 한해 갈수록 (고래실이) 망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강해요. 지난 5년 우리가 옥천에서 해온 일들이 지역의 교육·문화 인프라를 키우는 일이잖아요. 우리 말고는 이 일을 하는 단체가 지역에 없어요. 우리가 망하면 지역 소멸이 더 빨라지겠죠. 옥천 말고도 근처 보은이나 영동에도 우리 같은 일을 하는 곳이 나오면 좋겠어요.”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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