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영우'가 던진 성적자기결정권 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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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리에 방영 중인 드라마인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에서 여성 장애인의 남성 비장애인과의 성관계가 합의에 의한 것인지, 성폭력인지를 다루는 에피소드가 나왔다. 이상한>
극 중에서 정신과 의사는 지적장애인 신혜영(오혜수)을 두고 '온전한 성적자기결정권이 있다고 보긴 어렵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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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채윤의 비온 뒤 무지개][‘우영우’ 신드롬]
[비온 뒤 무지개] 한채윤 |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활동가
인기리에 방영 중인 드라마인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여성 장애인의 남성 비장애인과의 성관계가 합의에 의한 것인지, 성폭력인지를 다루는 에피소드가 나왔다. 극 중에서 정신과 의사는 지적장애인 신혜영(오혜수)을 두고 ‘온전한 성적자기결정권이 있다고 보긴 어렵다’고 했다. 지적장애인이라고 해서 성적자기결정권이 없는 건 아니다. 성적자기결정권은 인권이자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기본권으로 누구든 태어날 때부터 갖는 권리다. 장애인이어서 ‘정상적인 관계와 부당한 관계를 구별할 수 있는 힘이 약하다’는 의사 발언으로 미뤄봤을 때, 아마도 ‘성적자기결정능력’을 충분히 가졌다고 보긴 어렵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성적자기결정능력의 있고 없음이 꼭 장애만의 문제일까. 비장애인인 최수연(하윤경) 변호사도 고소득 직종의 여성들만 골라서 돈을 뜯어내는 남자에게 속아 설레는 마음으로 연애를 시작했다. 먼저 사기당한 사람이 나타나 경고해주지 않았다면 최수연도 꼼짝없이 당했을 것이다.
상대가 진심으로 나를 사랑하는지, 아니면 속이고 착취하는지를 구별하는 능력은 ‘권리’와는 달리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살면서 직간접적인 경험과 학습을 통해서 배우고 향상시키는 것이 가능하다. 이를 충분히 배우고 익히는 기회를 갖고 환경을 누리는 것은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기에 사회가 이 권리를 다룰 때는 “너의 권리를 요령껏 잘 행사하라”가 아니라 “타인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존중하라”는 메시지를 담아야 한다. 성폭력 가해인지 여부도 얼마나 존중하는 태도를 보였는지를 기준으로 하면 된다.
문제는 아주 오랫동안 법정에서 재판부가 이런 기준을 쓰지 않았다는 점이다. 과거 법원은 지적장애 여성이 10대든, 60대든 상관없이 7~8살에 해당하는 지능과 상대가 성적 행위를 하고 있다고 인식할 정도라면 성적자기결정권을 행사했다고 간주하고, 적극적으로 저항했다는 증거가 없다면 합의에 의한 성관계로 봐야 한다며 무죄 판결을 내리곤 했다.
드라마에서 배심원들은 4 대 3으로 무죄 의견이 많았지만 판사는 유죄로 판결한 건 이젠 재판부의 접근법이 달라졌음을 드러낸다. 신혜영이 진심으로 사랑했다고 말하는 점에서 양정일(이원정)은 연인이겠지만, 재판부는 양정일의 행동은 유죄라고 판단했다. 연인 관계라 해도 금전적, 성적 착취를 일삼으면 사회적 ‘죄’가 성립한다. 양정일은 성관계를 거부하는 건 ‘찐사랑’이 아니라며 강권하고, 부자 애인이 돈을 쓰는 건 당연하다는 논리로 사실은 애인 부모의 돈을 펑펑 썼다. 그 모든 부담은 신혜영이 혼자 져야 하는데도 말이다. 양정일은 과연 자칭 ‘뜨거운 밤’을 보낸 뒤, 신혜영이 자기 손등을 피가 나도록 긁었다는 건 알았을까?
성적자기결정권을 흔히 ‘누구와 성행위를 할지 결정할 권리’로 협소하게 다루지만, 우리는 성적자기결정권을 포괄하는 개념이 ‘행복을 추구할 권리’란 점도 상기해야 한다. 두 사람이 자발적이고 자유롭게 합의한 성관계라면 국가가 마음대로 개입해서 처벌하지 않아야 하고, 협박이나 폭력이 없어도 상대를 존중하지 않고 상대의 취약한 상태를 이용했다면 성폭력으로 다뤄야 한다. 바로 이것이 국민 누구나 자신의 삶을 평등하게 향유할 권리를 지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차원에서 지난 4월에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재형 대법관)에서 성폭력 여부와 무관하게 동성 간 성행위는 무조건 처벌하도록 규정한 군형법 제92조 6항이 “사적 공간에서 자발적 합의에 따라 한 성행위를 처벌하는 것은 군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성적자기결정권을 제한하는 것으로 평등권, 행복추구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판결한 것은 기념비적인 일이다. 성적자기결정권과 결정능력에 대한 논의는 더 활발해야 한다. 그럴수록 성폭력에 대한 사회의 감각도 더 예리하게 벼려질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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