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주민의 소박한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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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군대가 왜 전쟁터가 아니라 도시 안에서 무기를 발사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러시아의 집중 공격을 당한 우크라이나 동부 도시 리시찬스크의 한 고층 아파트에 사는 미콜라라는 주민이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 조사자들에게 한 말이다.
이런 소박한 의문에 응답하는 앰네스티의 우크라이나 전쟁 현장 조사보고서가 지난 4일 공개됐다.
그동안 우크라이나를 응원한 각국의 많은 이들, 그리고 앰네스티의 조사에 응한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바라는 것이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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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즈모폴리턴]
[코즈모폴리턴] 신기섭 | 국제뉴스팀 선임기자
“우리나라 군대가 왜 전쟁터가 아니라 도시 안에서 무기를 발사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러시아의 집중 공격을 당한 우크라이나 동부 도시 리시찬스크의 한 고층 아파트에 사는 미콜라라는 주민이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 조사자들에게 한 말이다. 이런 소박한 의문에 응답하는 앰네스티의 우크라이나 전쟁 현장 조사보고서가 지난 4일 공개됐다. 보고서 핵심 내용은 우크라이나군이 민간인 거주지역 주택, 학교, 병원 등에 진지를 구축하고 러시아군의 공격에 맞서는 전술을 씀으로써 우크라이나 국민을 위험에 빠뜨렸다는 것이다.
앰네스티처럼 국제적으로 영향력 있는 단체가 인권보고서를 내놓으면 관련 당사국은 보통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런데 이 보고서에 대한 우크라이나 정부의 반응과 이어진 논란의 양상은 뜻밖이다.
앰네스티는 지난달 29일 조사 결과를 우크라이나 국방부에 전달했지만, 보고서 발표 때까지 아무런 답변도 듣지 못했다고 밝혔다. 반응이 없었던 이유는 알 길 없지만, 앰네스티의 주장이 모호하거나 근거가 불분명해서는 아닐 것이다. 앰네스티의 조사 활동은 폭넓었다. 지난 4월부터 7월까지 주요 전투지역인 동부 돈바스, 북동부 하르키우, 남부 미콜라이우 19곳에서 주민 면담, 현장 조사, 무기 분석 등을 실시했다. 그 결과, 인구밀집 지역에 진지를 구축한 것을 반복해서 확인했다.
구체적인 사례도 여러건 공개했다. 5월18일 바흐무트에서는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쓰던 건물에서 20m 떨어진 고층 아파트가 러시아군의 미사일 공격을 당했다. 이 지역 주민 3명은 미사일 공격 전 군인들이 근처 건물을 사용했고 미사일 공격 당시 근처에 군 트럭이 주차돼 있었다고 증언했다. 앰네스티는 폭격 현장에서 미국산 구급장비를 비롯한 군용품을 직접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7월 초 폭격을 당한 미콜라이우의 곡물창고도 군인들이 사용했으며 이 창고 근처에는 주민들이 일하는 농장이 있었다. 4월28일 공격을 당한 하르키우 외곽의 의학연구소 단지에도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주둔했다. 병원을 군용으로 이용하는 건 국제인권법 위반이라고 앰네스티는 지적했다.
보고서가 공개된 이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 보고서가 “책임을 침략자가 아니라 피해자에게 떠넘기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나 말랴르 국방부 차관은 “무장 강간범들의 행동을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의 행동을 따지는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
러시아의 무자비한 공격에 맞서 힘겹게 싸우는 우크라이나 상황을 생각하면 이런 격렬한 반발이 이해되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앰네스티는 러시아의 전쟁범죄도 여러번 강하게 비판했다. 3월16일 러시아군이 마리우폴 극장을 폭격한 것을 ‘명백한 전쟁범죄’로 규정한 보고서를 6월 말 내놓았다. 논란이 커지자 앰네스티는 “보고서가 유발한 고통과 분노”에 대해 사과했다.
민간인 밀집 지역에 들어갔던 군인들은 러시아군이 민간인 피해에 아랑곳하지 않고 폭격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라도 앰네스티의 지적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동안 우크라이나를 응원한 각국의 많은 이들, 그리고 앰네스티의 조사에 응한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바라는 것이었을 테니 말이다.
6월10일 러시아군의 로켓 공격으로 50살 아들을 잃은 노모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옆집에 군인들이 있었고 아들이 종종 그들에게 음식을 가져다줬다. 위험하니 가까이 가지 말라고 내가 몇번이나 간청했다. 공격당하던 날 아들이 마당에 있다가 바로 숨졌다.”
mari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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