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정담] '기생충' 반지하의 비극
지난 8일 서울에 쏟아진 집중호우로 반지하에 살던 가족 3명이 목숨을 잃었다. 관악구 신림동의 한 다세대주택 건물에서 일어난 비극이다. 갑자기 물이 천장까지 차오르면서 반지하에 살던 초등학교 6학년 어린이와 그의 어머니, 함께 살던 이모는 문을 열고 빠져나올 수 없었다. 현실은 영화보다 더 참혹했다.
지난해 이효석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이서수의 단편 '미조의 시대' 역시 반지하를 배경으로 도시 하층민의 삶을 촘촘하게 추적한다. 보증금 5000만원에 서울에서 구할 수 있는 전세는 창문만 열어도 행인들 발에 치일 것 같은 6평짜리 반지하가 유일했다.
BBC 등 외신은 '반지하'라는 말을 그대로 영어로 'banjiha'라고 쓴다. 우리나라에만 유독 많은 주거 형태라는 얘기다. 반지하는 당초 군사적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1970년 정부는 단독주택이나 다세대 등의 주택을 신축할 때 지하실을 의무적으로 만들도록 건축법을 개정했다. 전시에 방공호 등 군사적 목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것이 1980년대 급격한 도시화로 서울 인구가 폭증하면서 지하에 세 들어 사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서울에서 20만가구가 반지하에 살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도로 아래에 위치한 반지하는 사람이 살기에 적당하지 않다. 언젠가 사라져야 할 주거 환경이다. 서울시는 10일 건축법을 개정해 반지하 거주를 전면 금지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다만 가장 저렴한 형태의 주거지인 반지하를 대체할 만한 대안이 있느냐는 지적도 무시할 수 없다. 반지하의 비극을 끝낼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
[이향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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