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 칼럼]기업인 사면, 그 후에 남는 것들

이미호 기자 2022. 8. 11.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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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복권’이 유력해 보인다. 복권은 사면법에 규정돼 있다. 유죄 선고로 상실 또는 정지된 자격을 회복시켜주는 조치다. 형 집행을 종료하거나 집행 면제를 받은 경우에 한해서만 행해지는데, 이 부회장의 형기는 지난달 29일 만료됐다.

이처럼 자유로운 몸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취업제한 위반’은 이 부회장에겐 목 안의 가시처럼 남아 있다. 삼성 측에 이 부회장의 취업제한 통보를 한 주체인데 정작 “무보수·비상근 상태로 일상적인 경영참여를 하는 것은 취업 제한 범위 내에 있다”고 한 법무부 수장(당시 박범계)의 꼬여버린 스텝과 “사실상 경영 복귀를 돕는 거냐”는 시민단체 비판이 뒤섞이며 또다시 논란의 중심에 선 것도 부담이었다. 통치자인 대통령의 ‘사면(복권) 카드’는 이 모든 걸 한방에 날릴 가장 확실한 수단이다.

기업인 사면은 역대 대통령 체제하에서 수차례 되풀이 됐지만 이번만큼 ‘3박자’가 맞는 때가 드물다. 무엇보다 복권을 찬성하는 여론이 막강하고(가석방 당시 찬성 70%, 알앤써치), 고물가·고금리에 따른 경제위기 등 대내외적 환경 또한 그의 ‘등판론’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여기에 경제위기 극복 메시지로 짐작건데 이 부회장의 사면 내지 복권에 대한 대통령의 의지 또한 강하다. (사면 관련 일절 노코멘트라고 했지만)

그리고 기업인 수형자가 어떻게든 밖에 나오기 위해 병보석 등을 요청하던 관례에 비춰보면 이 부회장은 충실하게 수감 생활을 했고, 형기의 대부분을 실제 채웠다는 점에서 과거 기업인들의 행태와는 사뭇 다르다.

특히 이 부회장이 복권되지 않을 경우, 대규모 해외투자나 대형 인수합병(M&A)을 결정하기 위한 장기 해외출장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물론 삼성전자가 전문 경영인 체제를 잘 갖추고 있지만, M&A 등은 이를 책임질 수 있는 오너의 의사 결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 부회장은 형 만료 상태라 현 시점에서 출국에는 문제가 없지만, 출국해 경영활동을 할 경우 취업제한 논란 위반이 또 다시 불거질 수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이미 형기를 채운 상황에서 취업 제한을 풀어주는 것은 ‘통치권자의 고유 권한’이라는 영역내에서 과도하지 않은 결정 같다.

다만 이 부회장의 복권이 기업인들에게 자칫 사면과 관련해 ‘잘못된 인식’을 주지 않을지 우려된다.

이 부회장은 ‘국정농단 사건’의 주범인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로 법정구속과 동시에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이 부회장의 뇌물 공여 대상은 당시 현직 대통령이었다. ‘기업인 범죄’라는 측면에서 보면 1970~1980년대나 보던, 보기 드문 상황이 펼쳐진 셈이다. 국정농단 주범들의 요청이 있었고 이에 상응하는 대가였다는 점에서 부정청탁이라는 행위 자체는 이 부회장 및 삼성의 영향력을 감안하면 통상적인 경제범죄와는 결이 다른, 이례적 사건이다.

하지만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경영 승계 작업을 위한 부정청탁”이라고 판시했다는 점에서, 이로 인해 불특정 다수의 주주들에게 최소한 간접적으로라도 손해를 끼쳤음을 주지해야 한다.

자본시장의 변화와 주식시장의 성장으로 더 많은 소주 주주들이 생기면서 ‘권한 강화’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통치권자는 사면이라는 까다로운 문제를 두고 민주주의와 정의로움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경제범죄에 대한 국민적 저항이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구체적으로 △자금을 분식해서 비자금을 조성하거나 △회사를 믿고 투자한 실질적 주주들에게 예측할 수 없는 막대한 손해를 끼치는 행위 △윤리 경영 및 컴플라이언스(준법)를 벗어나 탈법·위법을 행한 행위에 대해 통치권자가 ‘사면 카드’를 쓰는 것은 앞으로 보다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 부회장의 복권은 과거로부터의 결별을 뜻한다. 박 전 대통령 탄핵과 촛불 시위, 이 부회장을 포함한 다수의 기업인들이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된 것을 보면서 “더 이상 정경유착은 없다”는 메시지를 우리 모두가 학습했다. 이에 더해 기업 가치를 훼손하고 주주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행위를 엄중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점도 배웠다. (현재 재판중인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분식 의혹 사건은 별개 사건으로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복권이냐 아니냐’ 갈림길에 선 이 부회장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미호 법조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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