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저임노동·어린이..겹겹의 소외 드러낸 '반지하의 폭우'

안영춘 2022. 8. 11.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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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발][2022 중부 폭우][아침 햇발]
그들의 비극은 폭우에 무방비로 노출된 주거 조건과 떼어서 생각할 수 없고, 그들의 주거 조건은 발달장애, 저임 노동, 비성년이라는 겹겹의 소외된 위계 위에서 구성됐다. 그들을 물에 가둔 건 그 사회구조였다.
지난 8일 오후 9시7분께 서울 관악구 부근 한 빌라 반지하에 폭우로 침수된 일가족 3명이 갇혀 신고했지만 결국 숨졌다. 주민들에 따르면 사고가 난 빌라 바로 앞에 싱크홀이 발생해 물이 급격하게 흘러들었고, 일가족이 고립돼 구조되지 못했다. 사진은 침수된 빌라 배수작업. 연합뉴스

안영춘ㅣ논설위원

이번 수도권 물난리가 기후위기와 관련 있는지는 아직 축적된 데이터가 적어 판단할 수 없다고 어느 전문가가 언론에다 말했다. 기후위기는 축적된 데이터를 교란하는 양극적이고 돌발적이며, 따라서 통계적으로 예측할 수 없게 된 사태다. 쓸모없어진 데이터가 계속해서 쌓여야 언젠가 쓸모를 발휘할 수 있을 거라는 말은 기후위기 여부를 영원히 판단하지 않겠다는 재귀적인 자기암시로 들린다. 울리히 벡이 말한 ‘위험사회’도 통계적으로 위험이 예측 불가능해진 사회라는 점에서 기후위기의 20세기적 언명과 같다. 다만 “빈곤은 위계적이지만 스모그는 민주적”이라는 그의 명제는 적어도 기후위기 앞에서는 참이 아니다. 기후위기는 지독히 위계적이고 계급적이다.

발달장애인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와 감정노동하는 면세점 사업장 노조 간부와 열세살 비성인이 깊은 밤 서울 신림동 빌라 반지하 방 안에서 익사했다. 이웃 사람이 안간힘을 썼으나, 빼내지 못했다고 한다. 창틀 밖에 한 사람만 더 있었어도 결과는 달라졌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가정은 지병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던 노모가 화를 면한 것만큼이나 우연에 기대고 있다. 그들도 우연히 집을 떠나 있었다면, 지금쯤 젖은 세간을 창틀 앞에서 말리고 있을 것이다. 그들의 비극은 폭우에 무방비로 노출된 주거 조건과 떼어서 생각할 수 없고, 그들의 주거 조건은 발달장애, 저임 노동, 비성년이라는 겹겹의 소외된 위계 위에서 구성됐다. 그들을 물에 가둔 건 그 사회구조였다.

반지하 방에서 멀지 않은 강남 지역은 차들의 무덤이 됐다. 피해 차량은 3000여대고, 그중 800여대는 고가 외제차였다. 폭우는 차들에 대해 ‘민주적’이었다. 차주들은 재산상 피해만 입고, 무사히 차에서 빠져나왔다. 지하 주차장 등 몇곳에서 실종자가 발생하기는 했다. 실종자들도 제가끔 소우주이고 누군가의 가족일 것이다. 물에 잠긴 차 위로 올라가 태블릿피시를 보는 어느 차주의 사진은 에스엔에스를 뜨겁게 달궜다. 거센 탁류 위에서 보여준 침착함은 방재 전문가도 칭찬할 정도였고, 망연한 포즈는 미학적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들의 실종 또는 고립과 사회적 위계의 관계는 뚜렷해 보이지 않았다. 신림동 반지하와 강남의 폭우는 사회학적으로 상이한 기상현상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반지하 방 바깥에서 높이가 어른 팔뚝 길이만 한 쪽창 너머를 들여다봤다. 그 모습은 <1900년경 베를린의 유년 시절>에서 어린 발터 베냐민이 어느 건물 반지하실 안을 조그만 창문 너머로 들여다보곤 하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베냐민은 그 안에서 카나리아 새나 램프, 사람을 볼 수 있을 거라 기대했으나, 정작 마주한 건 ‘꼽추 난쟁이’였다. 그는 이 요정에 무관심했던 기억을 현재로 소환해 돌아보고는 했다. 타자에 대한 성찰이다. 하루 만에 내려진 대통령실 홍보 카드뉴스를 보면, 윤 대통령이 보고자 한 건 자신의 애민하는 모습이었던 듯하다. 하지만 그의 나르시시즘은 빈곤과 기후위기를 동시에 타자화하는 자신의 무의식을 드러냈을 뿐이다.

빈곤과 기후위기는 뿌리가 같다. 제3세계 어느 지역에서 기아와 물 부족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은 그곳을 오랫동안 식민화했던 제1세계가 화석연료와 축산 가공품을 맘껏 누리고 있는 것과 깊이 닿아 있다. 윤석열 정부가 노동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한 법 제도를 ‘덩어리과제’로 지목해 해고 사유를 확대하고 중대재해처벌법을 완화하겠다는 발상과 안전을 중시하는 관료적인 사고를 버리고 원전산업을 부흥시켜 기후위기에 대응하겠다는 발상을 동시에 하는 것도 그러한 회로 안에서 벌어지는 사태다. 가령 그 회로 안에서는 세계 최고 원전 밀집지역에 사는 하청노동자가 빈곤과 기후위기 위계의 상징적인 기층을 이룬다. 그들도 쪽창 너머 반지하 방의 세 가족이다.

기후위기는 누군가에겐 기회로 인식된다. 윤 정부의 원전 르네상스만이 아니다. 최근 외신은 그린란드 빙하가 녹자 희토류를 선점하려고 제프 베이조스, 마이클 블룸버그 같은 억만장자들이 ‘광물 전쟁’에 뛰어들었다고 전했다. 저들은 영화 <돈 룩 업>의 권력자와 자본가처럼 광물자원을 탐하다 실패하면 인류를 내팽개치고 자기들끼리 지구를 몰래 빠져나갈지도 모른다. 도착한 행성에서 무슨 꼴을 당하게 되든.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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