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육사가 쓴 한문 편지와 엽서, 문화재 된다"

배소영 2022. 8. 11. 17:01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민족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인 이육사(1904~1944)가 쓴 한문편지와 엽서가 문화재가 된다.

문화재청은 이육사가 친척과 친구에게 보낸 친필 한문편지와 봉투, 엽서 2매 등 총 4점을 '이육사 친필 편지 및 엽서'라는 명칭으로 국가등록문화재로 올릴 예정이라고 11일 예고했다.

안동시 관계자는 "조국 광복을 위해 일생을 바친 독립운동가 이육사의 친필 엽서와 한문 편지가 광복절 77주년에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 예고된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문화재청 국가등록문화재 예고

민족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인 이육사(1904~1944)가 쓴 한문편지와 엽서가 문화재가 된다.

문화재청은 이육사가 친척과 친구에게 보낸 친필 한문편지와 봉투, 엽서 2매 등 총 4점을 ‘이육사 친필 편지 및 엽서’라는 명칭으로 국가등록문화재로 올릴 예정이라고 11일 예고했다.

이육사가 직접 쓴 편지. 안동시 제공
안동 이육사문학관이 소장해 온 편지와 엽서는 이육사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이육사는 ‘광야’와 ‘청포도’ 등을 지은 저항시인이다. 경북 안동에서 출생해 1925년 독립운동단체 의열단에 가입했다. 1927년 조선은해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루돼 옥고를 치렀다. 당시 수인번호인 264를 따서 호를 ‘육사’로 지었다. 그는 해방을 1년 앞둔 1944년 1월 16일 베이징 감옥에서 순국했다.

이육사가 남긴 자료는 일상적인 안부를 비롯해 생활고에 대한 걱정, 건강을 기원하는 내용 등을 담았다. 한문으로 작성한 친필편지는 중외일보 대구지국 근무 시절 당시 그가 겪었던 생활 형편을 짐작할 수 있다.

두 장의 엽서 중 하나는 이육사가 안동군청에 근무한 친척 이원봉에게 보낸 것이다. 고향 안동을 다녀온 후 친척을 대면한 반가움과 그와 헤어진 뒤의 아쉬움을 담아 이육사의 인간적인 모습을 파악할 수 있다.

또 다른 엽서는 이육사가 자신과 막역했던 시인 신석초에게 보낸 것이다. 신석초를 ‘아체(我棣)’로 표현한 건 이육사가 그를 형제처럼 여겼음을 짐작하게 한다.

안동시 관계자는 “조국 광복을 위해 일생을 바친 독립운동가 이육사의 친필 엽서와 한문 편지가 광복절 77주년에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 예고된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안동=배소영 기자 soso@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