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예술은 미술관 밖에..카셀이 남긴 유산들

김보라 2022. 8. 11.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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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습 받아 파괴괸 도시
세계가 주목하는 예술메카로
최초의 생태 행위 예술
요셉 보이스의 참나무
7000그루 카셀 곳곳에
1977년 설치 초대형 액자
"진정한 예술은 자연"
아프리카와 남미 등
소외됐던 남반구 예술
문 닫은 호텔·공원 점령
남아프리카공화국 듀오 작가 ‘메이드유룩’이 만든 설치 작품. 식민지 이전의 아프리카 땅과 원주민들에게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김보라 기자


전쟁은 모든 것을 삼켰다. 1940년대 독일 카셀은 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으로부터 수차례 공습을 받아 도시 곳곳이 파괴됐고 거리는 죽은 사람으로 넘쳐났다. 학교와 집은 물론이고 마을 전체를 둘러싼 숲까지 화염에 휩싸였다. 독일 예술가들은 그들의 ‘삶의 터전’인 박물관과 미술관이 포격에 쓰러지는 모습을 목격해야 했고, 나치 정권의 무자비한 예술 탄압까지 견뎌야 했다.

하지만 카셀은 전쟁의 폐허를 딛고 불과 10년 만에 세계가 주목하는 혁신적인 도시 가운데 하나로 되살아났다. 도시 부활의 중심에는 파격적인 전시회가 하나 있었고, 그 전시회의 중심에는 아르놀트 보데(1900~1977)가 있었다.

카셀 도큐멘타는 초기엔 4년마다, 지금은 5년마다 한 번씩 열린다. 기존 예술에 대한 인식과 가치를 부정하고 새로운 예술의 개념을 추구하는 ‘아방가르드 정신’은 67년째 이어지고 있다. 나치 정권이 자행한 반인륜적 행위에 대한 반성과 자각으로 시작한 만큼 카셀 도큐멘타는 이름조차 ‘모던 아트의 기록’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앤디 워홀도, 백남준도 카셀 도큐멘타에서 이름을 알리고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지금도 도시 곳곳엔 카셀 도큐멘타의 유산이 남아 있다.

 카셀이 남긴 현대미술의 결정적 순간

하우스루커가 설치한 초대형 액자


독일 현대미술 거장 요셉 보이스(1921~1986)는 보데와 함께 카셀 도큐멘타의 상징과 같은 인물이다. 독일 녹색당(GGP) 창당 멤버이자 환경주의자인 보이스는 폐허가 된 도시 카셀에 1982년 7000그루의 참나무를 심었다. 검은 현무암 기둥을 일정 간격으로 설치하고 그 옆에 참나무 묘목을 심는 행위 예술이자 생태 예술을 선보였다. 당시 카셀 거주자들은 돌덩이(현무암 기둥)가 폭탄과 전쟁을 연상하게 한다며 반발했다고도 한다. 보이스가 직접 심은 나무는 1982년 개막식 당일 행사장 건물 앞 광장의 나무다. 두 번째부터 6999번째 나무를 시민들이 직접 심었는데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기 직전인 1986년 1월 23일 보이스는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제8회 카셀 도큐멘타 개막일(1987년) 그의 부인과 아들이 마지막 7000번째 나무를 심었다.

카셀 중앙역 앞에 비스듬히 서 있는 기둥 위를 보면 하늘을 향해 걸어가는 남자가 있다. 1992년 열린 아홉 번째 카셀 도큐멘타에서 조나단 보로프스키가 설치한 ‘Man Walking in the Sky’. 서울 광화문의 ‘망치질하는 사람(Hammering Man)’으로도 잘 알려진 작가의 이 작품이 시민들에게 큰 인기를 누리자 공공 펀드와 후원자의 도움을 받아 카셀시가 구입해 도시상징이 됐다.

케냐 출신 ‘네스트’가 만든 헌 옷 설치작품


카셀 도큐멘타의 중심에선 거대한 철로 만든 액자를 만날 수 있다. 1977년 예술집단 하우스루커가 ‘예술은 당신 주위에 있다’는 제목으로 초대형 액자 형태 구조물을 설치해 카셀의 자연과 도시 풍광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했다.

 공원 위 쓰레기 더미, 텐트 속 난민들

대만 여성 작가 창언만의 ‘자이언트 달팽이 집’


이번 카셀 도큐멘타에 출품된 작품들도 보데의 정신을 잇는다. 카셀 오랑주리 정원엔 케냐 출신인 ‘네스트’ 콜렉티브가 소비사회의 어두운 면을 비추는 리사이클 프로젝트 ‘Return to Sender’를 공원 한복판에 던져놨다. 압착한 헌 옷을 활용한 설치 작업물로 쓰레기와 전자 폐기물로 인한 환경 파괴의 심각성을 알리는 작품. 대만 여성 작가 창언만은 ‘아호이’라는 보트 대여소와 함께 ‘자이언트 달팽이 집’을 물가에 띄웠다. 유리 공예로 물 위에 달팽이 집을 만들고 수상 정원을 바라보게 했다. 창언만은 “달팽이는 일본 식민 시절 어렵게 농촌에서 일해야 했던 대만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달팽이를 잡아 요리해 먹어야 했던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모티브”라고 했다.

한때 카셀에서 부의 상징이었던 호텔 헤센란드는 식민지 이전의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연상케 하는 극장이 됐다. 재정 문제로 문을 닫은 이 호텔 안은 남아공 듀오 작가인 ‘메이드유룩’이 재단장했다. 과거 남아공 땅들을 섬으로 연결하고 원주민들의 목소리와 노래, 빗소리 등이 6개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와 마치 남아공 숲속 어딘가에 고립된 듯한 느낌을 줬다. 작가들은 “불편하게 앉아 지도를 살피고 소리를 듣는 공간을 경험하고 나면 식민지 이후 뒤틀리고 어색해진 원주민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카셀=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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