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kg 나귀부터 '국립극장의 라이거' 호랑이탈까지..'무대의 역사'

2022. 8. 11.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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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품 어벤저스'가 만든 무대의 역사
85kg에 달하는 '춘향' 속 나귀부터
RC카에 올라타고 움직이는 토끼
'국립극장의 라이거' 호랑이탈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의 3층부터 7층까지 이어진 소품실. 임세준 기자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무려 3000종류, 6000점.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의 3층부터 7층까지 이어지는 공간에선 선뜻 상상하기 힘든 별천지가 이어진다. 국립극장을 빛낸 무수히 많은 무대를 꾸민 소품들이 이곳에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길고 뾰족한 소품은 3~4층에 모여있다. 1m 이상 되는 칼과 지팡이, 총 종류는 3층, 창 종류는 4층에 둔다. 4층은 무대장치실과 공간을 공유하고 있다. 각종 탈과 인형, 온갖 술병 등을 갖춘 국립무용단의 소품은 5층에 자리하고 있고, 국립창극단의 작품별 소품을 비롯해 그릇, 음식과 같은 일상의 소품은 6층으로 향했다. 해오름극장의 가장 꼭대기인 7층엔 국립창극단 ‘춘향(2022)’ 속 나귀와 ‘아비, 방연’(2020)의 사슴이 어둠 속에 고고한 자태로 머물고 있다.

국립극장 소품실은 네 명의 ‘소품 어벤저스’가 만들었다. 정복모 실장(왼쪽)을 필두로 윤지현·박현이·채수형 씨가 ‘일당백’ 역할을 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이 곳의 역사는 네 명의 ‘소품 어벤저스’(국립극장 소품실 정복모 실장·채수형·박현이·윤지현)가 만들었다. “스물 셋에 국립극장에 들어와 소품 만드는 것에 전념”(정복모 실장)했으니 이 일은 ‘삶’(정복모 실장)이었고, ‘꿈’(박현이)이었으며, ‘더 잘 하고 싶은 일’(윤지현)이었다.

그 안에서 얻어지는 보람도 많다. 네 명의 손에서 태어난 소품들이 저마다의 역할을 했을 때다. 윤지현 씨는 “배우들이 연기 후 좋았다는 피드백을 줄 때, 늘 백스테이지에 있던 소품들로 인해 작품이 잘 흘러가는 것을 옆에서 느낄 수 있을 때 뿌듯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박현이 씨는 “우리가 만들어 배우의 손에 들어갔는데, 만들고 있을 때보다 찰떡이 될 때가 많다”고 했다. 창극 ‘리어’에서 코러스들이 갈매기 솟대를 들고 나와 움직이는 장면이 그랬다. 그는 “내가 생각지도 못한 움직임을 만들어낼 때 정말 기분이 좋다”며 웃었다. 그 무엇 하나 허투루 만든 것이 없다. 다음은 그 중에서도 애착이 가는 주요 작품들이다.

국립창극단 ‘춘향’(2022)에 나오는 ‘나귀’. 임세준 기자

■ ‘춘향’(2022), 2m 50㎝·85㎏ 나귀

단오날 춘향과의 첫 만남. 몽룡은 이 나귀를 타고 등장한다. 국립창극단의 간판 스타 김준수가 맡은 역할이다.

‘나귀’는 올해 처음으로 제작된 소품이다. 길이 2m, 높이 2m 50㎝에 85㎏이나 나가는 대형 소품. 제작 기간만 해도 25~26일이 걸렸다. 스티로폼을 붙여 힘겨운 조각을 통해 완성됐다. 특히 배 부분과 다리 사이엔 철 프레임이 들어가 있다. “사람이 타야 하고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 폼을 싸서 매끄럽게 하고 칠을 한 뒤, 갈기를 표현할 천을 손으로 일일이 붙였다.” (정복모 실장) 사실 애초의 디자인과는 조금 달라졌다. 나귀가 앉아 있을 때 너무 높아 사람이 타고 내리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게다가 뒷다리가 움직여야 하는데 예산의 문제로 적정선에서 타협한 작품이다.

국립창극단 ‘수궁가’(2011), RC카에 올라탄 토끼 임세준 기자

■ ‘수궁가’(2011), RC카에 올라탄 토끼

세계적인 오페라 연출가이자 서사극의 아버지인 브레히트의 제자, 아힘 프라이어(Achim Freyer)가 연출을 맡은 작품이다. “무대에서 토끼가 움직이면 좋겠다”는 연출가의 요청에 정복모 감독과 박현이 씨가 머리를 맞대 고민해 탄생한 아이디어다.

“배우가 하지 않고는 작은 토끼를 움직일 방법이 없어, 밤새 고민해 작업하다 움직이는 차에 태워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어요.” (정복모 실장)

박현이 씨는 “RC카는 무전이 겹칠 경우 토끼가 다 같이 움직이지 않아 주파수도 토끼마다 다른 것으로 했다”고 말했다. 토끼의 무늬는 연출을 맡은 아힘 프라이어가 직접 그렸다.

국립무용단 ‘다섯 오’(2021)의 처용(위)과 기존 처용탈. 임세준 기자

■ ‘다섯 오’(2021), 순백의 처용

“전통은 시대를 타지 않는다”. 국립무용단의 ‘다섯 오’ 공연에 쓰인 순백의 처용탈은 색깔은 달라졌지만, 과거의 처용탈과 디자인은 크게 다르지 않다. 기존 처용탈을 베이스로 삼아 흰색으로 작화를 했고, 종이 꽃 등의 장식을 달았다. 특히 탈의 모형은 석고 틀에서 한지를 대여섯 번 싸서 떠내는 작업을 반복해 만들었다. 한지 뿐만 아니라 두꺼운 도화지와 천도 사용한다. “무용수들은 무대에서 땀을 많이 흘리기에 탈이 찢어지거나 들뜰 수 있어 두꺼운 재료를 썼다”고 정복모 실장은 설명했다. 무게를 고려해 가벼운 재료를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앞모습보다 재밌는 것은 뒷모습이다. 무용수마다 탈을 고정하는 방식이 다 달랐다. 특히 “나이대마다 선호하는 고정각이 달랐다”고 한다. 그 결과 헬멧처럼 쓰는 탈, 묶을 수 있도록 만든 탈 등 다양한 방식으로 태어났다.

국립극장 소품실 작품. 임세준 기자

■ 국립창극단 ‘아비 방연’(2020), 생생한 사슴 머리

창극 ‘아비 방연’에 출연할 ‘사슴 머리’를 만들기 위해 소품실에선 잊지 못할 자재를 하나 구입했다. 제작 과정에서 적합한 레퍼런스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감 넘치는 사슴 뿔을 구현해 보려는 의지로 실제 뿔을 구입했다. 정 감독은 “그 뿔을 보면서 스티로폼 안에 철사를 넣어 모형 뿔을 만들었고, 청동 느낌을 냈다”고 말했다. 사슴 머리는 보관도 쉽지 않다. 뿔 자체가 굉장히 약한 데다, 한 번 부러지면 복원도 애매하다. 재차 칠을 할 경우 티가 많이 나니 애초에 개별 포장을 통해 철저하게 보관한다.

국립극장 소품실 작품. 임세준 기자

■ ‘귀토’(2021), ‘국립극장의 라이거’ 호랑이탈

창극 ‘귀토’엔 무수히 많은 수중 생물이 등장하는 만큼 색감도 화려하고, 디자인 요소도 많다. 그 중 호랑이탈은 서로 다른 두 동물을 결합한 잡종이 됐다. 이 작품에 쓰인 소재 때문이다. 호랑이탈 역시 예산의 문제로 제작 과정이 수월하지 않았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살듯’ 묘수는 있었다. 기존의 사자탈을 변형해 호랑이 얼굴을 제작했다. 바구니를 탈로 만들어 한지를 붙여 근사한 호랑이가 탄생했다. 그 결과 관객들은 누가 봐도 호랑이를 보지만, 뒷모습은 사자다. 얼굴은 백호요, 털은 사자이니 여기에도 ‘라이거’가 있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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