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장 구멍 숭숭, 안방엔 물받이 대야 가득"..개미마을도 '폭우'와 사투중

박재하 기자 김동규 기자 2022. 8. 11.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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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오전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라고 불리는 서대문구 홍제동 '개미마을'에서 만난 김현자씨(62)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김씨 집 천장에는 30㎝는 족히 넘어 보이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있었고 주변에는 누런 물 자국이 선명히 보였다.

남편과 10년째 개미마을에서 산다는 경옥주씨(81)가 사는 집 안방 천장은 누수로 곳곳이 내려앉았다.

개미마을 중심부에 사는 A씨도 최근 지붕 기와가 깨진 곳에 구멍이 생겨 집주인에게 연락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아 결국 고치지 못한 채 폭우를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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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수는 안 됐지만 천장 무너질까 밤잠 설쳐"
"집주인 나몰라라"..세입자에게 더 가혹한 폭우
1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개미마을 입구에서 주민이 경사로를 조심스럽게 오르고 있다. 22.08.11/뉴스1 ⓒ 뉴스1 김동규 기자

(서울=뉴스1) 박재하 김동규 기자 = "비가 더 온다는데 걱정돼서 잠도 설쳤어요"

11일 오전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라고 불리는 서대문구 홍제동 '개미마을'에서 만난 김현자씨(62)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김씨 집 천장에는 30㎝는 족히 넘어 보이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있었고 주변에는 누런 물 자국이 선명히 보였다. 김씨는 빗물을 담을 대야를 바닥에 내려놓으며 "여기에 30년 살았는데 이렇게 된 적은 처음이다"며 "안방 천장에서 물 새고 주방에도 물 떨어질까봐 살림을 다 내놨는데 죽겠다"며 울상을 지었다.

지난 8~9일 이틀간 서울에 쏟아진 집중호우는 강북의 취약계층에도 가혹했다. 인왕산 자락에 있는 개미마을 주민들은 지리적 이점으로 침수는 면했지만 집 천장에 구멍이 뚫려 비가 새는 등 열악한 주거환경으로 인한 피해와 불안을 호소했다.

1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개미마을 주민 김현자씨(62)의 집 천장 구멍에서 빗물이 새고 있다. 22.08.11/뉴스1 ⓒ 뉴스1 김동규 기자

이날 개미마을에는 그동안 내린 비가 폭포수처럼 배수로를 타고 흘러내려가고 있었다. 마을을 오르던 한 마을버스는 빗길에 뒷바퀴가 헛돌아갔고 주민들도 미끄러져 넘어지지 않도록 경사로에서 한 걸음씩 조심조심 발을 내디뎠다.

지붕을 새로 단장한 집들도 있었지만 많은 집들은 지붕이 움푹 파여 있거나 구멍을 방수천이나 판자 등으로 임시로 덧댄 위태로운 모습이었다. 곳곳에 강풍에 부러진 나뭇가지가 떨어져 있었고 수거를 기다리고 있는 쓰레기가 비에 젖어 악취를 풍기고 잇었다.

남편과 10년째 개미마을에서 산다는 경옥주씨(81)가 사는 집 안방 천장은 누수로 곳곳이 내려앉았다. 연탄화로와 세탁기가 있는 안방 옆 다용도실 천장은 붉은 녹으로 덮여있었고 커다란 구멍 속으로 빗물이 들어오고 있었다. 바닥은 빗물로 흥건했고 실내에 걸어놓은 옷도 빗물에 젖어 물이 뚝뚝 흘렀다.

경씨는 "침수될 걱정은 없지만 바람에 천장이 들썩이고 비가 집으로 계속 들어와 불안해 잠을 못 잤다"며 "오늘도 계속 비가 많이 내린다는데 아예 천장이 무너질까 걱정된다"고 호소했다.

1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개미마을 주민 경옥주씨(81)의 집 천장이 붉은 녹으로 뒤덮여있다. 22.08.11/뉴스1 ⓒ 뉴스1 박재하 기자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르던 마을 주민 이모씨(82)는 "워낙 높은 곳이라 비온다고 침수되지는 않는다"면서도 "집이 너무 오래돼 천장에서 물이 새고 있지만 동네에 노인네들뿐이라 고쳐줄 사람도 없고 고치기 쉽지 않아서 그냥 두고 산다"고 푸념했다.

60년대부터 개미마을에서 살았다는 하성록씨(70대)는 "도시가스도 없어서 연탄불을 쬐다가 열 때문에 지붕에 구멍이 생기기도 한다"며 "몸 불편한 사람들도 많고 다들 나이가 많아 비가 새도 고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세입자들의 피해가 더욱 크다는 반응도 있었다. 경씨는 "집주인한테 천장을 고쳐달라고 연락했지만 전화도 안 받고 감감무소식이다"며 "고치는 데 비용도 너무 많이 들고 몸도 불편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저었다.

개미마을 중심부에 사는 A씨도 최근 지붕 기와가 깨진 곳에 구멍이 생겨 집주인에게 연락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아 결국 고치지 못한 채 폭우를 겪었다. 그는 방마다 비가 새면서도 낮에는 하루 종일 청소일을 하러 나가고 지붕 복구를 도와줄 손도 모자라 아무런 대처를 못했다고 전했다.

50년 넘게 개미마을에 살았다는 주민 금모씨(75)는 "토박이들은 본인 집이니까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세입자들은 집주인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며 "돈이 많이 든다고 안 고쳐준다고 하거나 재개발 때문에 집을 산 다음에 세를 내고 방치해 세입자들이 곤란해한다"고 설명했다.

하씨는 "여기 사는 노인네들이 무슨 돈이 있다고 집을 알아서 고칠 수 있겠냐"며 "앞으로 비가 더 온다는데 최소한의 주거 환경만이라도 신경을 써줬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1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개미마을 한 집의 지붕이 방수천과 판자로 뒤덮여있다. 22.08.11/뉴스1 ⓒ 뉴스1 박재하 기자

jaeha67@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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