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한국은 논의한 적도 없다는데..中 사드 '제한' 언급, 무슨 의미?

조성원 2022. 8. 11.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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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칭다오에서 열린 한중 외교장관 회담이 마무리됐습니다. 이번 회담은 윤석열 정부 들어 한국 외교장관이 중국을 방문해 열린 첫 외교장관 회담으로 주목받았습니다. 한중 수교 30주년을 평가하는 자리로서 의미도 있었습니다. 시기적으로는 펠로시 미 하원의장이 타이완에 이어 한국을 방문한 직후에 열려 긴장감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한중 양측이 비교적 원만한 분위기에서 서로의 입장을 개진하며 회담을 마무리했다는 것이 중평입니다.

■ 한중외교장관회담 원만한 마무리…갑작스런 중국의 '사드 1한' 거론

다만 회담 다음 날인 10일 중국 외교부 브리핑 내용이 여진을 낳았습니다. 한국 특파원의 안보 관련 질문에 왕원빈 외교부 대변인이 '사드 3불(不) 1한(限)'을 거론했기 때문입니다. 왕 대변인은 "한국 정부는 정식으로 대외적으로 3불 1한을 정책적으로 선시(宣示)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때 '선시'는 흔히 쓰이지 않으나 국어사전에는 있습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선시는 '널리 사람들에게 알린다'는 뜻입니다.

중국 외교부 왕원빈 대변인은 8월 10일 브리핑에서 “한국 정부는 정식으로 대외적으로 3불 1한을 정책적으로 선시(宣示)했다”라고 주장했다. (사진: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


중국 측이 말한 '사드 3불 1한' 가운데 '3불'은 한중 양국이 사드 갈등을 빚던 2017년 10월 강경화 당시 외교장관이 국회에 출석해, 사드를 한반도에 추가 배치하지 않고 한미일 군사동맹을 추진하지 않으며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MD)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한국의 외교안보 정책 입장을 밝힌 것을 의미합니다. 이후 한중 양국의 사드 갈등은 비록 해결은 아니나 봉합 국면을 보였습니다.

이에 대해 윤석열 정부는 물론 문재인 정부 고위당국자들은 소위 '사드 3불'은 합의나 약속이 아니라고 반복해 밝혀왔습니다. 단순히 정부의 정책을 설명, 천명했다는 것입니다. 양국간 약속이 아닌 정책 설명인 만큼 안보 상황에 따라 바꿀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있습니다.

■ 한국 "사드 3불은 약속도 합의도 아니다"…중국 "한국이 사드 3불 1한을 선시했다"

박진 외교장관 역시 칭다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 같은 입장을 다시 한번 밝혔습니다. 박 장관은 사드 문제와 관련해 중국 측에 "북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한 대응은 자위적 방어 수단이며 우리의 안보 주권 사안임을 분명하게 밝혔다"면서 "소위 3불도 합의나 약속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말했습니다. 더불어 한중 양측이 사드가 양국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데 인식을 같이했다고도 전했습니다.

8월 9일 중국 칭다오에서 열린 한중 외교장관 회담 모습


그런데 중국 측이 갑자기 '1한' 즉 기존에 배치한 사드 운용을 제한하는 문제를 거론한 것입니다. 중국 관영 매체 등이 소위 '1한'을 거론한 적은 있지만, 중국 정부가 공개적으로 이를 거론한 것은 이례적입니다. 더욱이 윤석열 정부가 환경영향평가 등을 통해 기존 배치한 사드의 운용 정상화를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같은 공개 발언은 적잖은 파장을 낳았습니다. 기존 사드 운용의 제한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은 데다, 가뜩이나 북한의 7차 핵실험 가능성 등으로 안보 상황이 심상치 않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현 정부와 전 정부 당국자 모두 이른바 '1한'은 새로운 내용이 아니며 중국과 논의한 적도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문재인 정부 당국자는 "박근혜 정부가 사드를 들여오던 당시 이미 종말 단계 레이더만 사용하겠다고 했고, 이는 변화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문재인 정부 기간 사드 가동 제한(1한)을 중국과 논의한 적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한마디로 사드의 제한적 사용은 현재 이용 상태를 설명하는 표현일 뿐이고 중국과 이 문제를 논의한 적도 없다는 것입니다.

■ "북한 탄도탄을 겨냥한 사드 레이더는 어차피 제한적으로 사용"

안보전문가인 신종우 한국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은 사드 레이더(X-밴드 레이더)는 전방 모드와 종말 모드 두 가지 모드로 나뉘는데 탄도탄 요격 체계를 운용하기 위해서는 거리를 제약하는 종말 모드로 운용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어차피 북한 유도탄을 근접한 거리에서 요격하는 만큼 레이더 운영 반경이 작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1,000 km 이상 떨어진 중국이 자국 탐지를 걱정할 일이 아니라는 취지입니다.

현 정부 외교부 당국자 역시 한국 정부는 '1한'을 천명한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중국이 사드 정책에 대해 한국 정부가 '선시'했다는 표현을 썼는데, 이것은 그동안 한국 정부가 밝혀온대로 합의나 약속이 아니라 '공개적으로 입장을 표명했다'는 뜻에 가깝다고 설명했습니다. 중국이 한국 측 입장을 받아들인 것으로 해석하려는 분위기마저 읽힙니다.

박진 외교장관(왼쪽)은 왕이 중국 외교부장(오른쪽)과의 회담에서 사드 3불은 합의도 약속도 아니라고 거듭 밝혔다.


하지만 중국이 한중 양국간 약속이 있었는지에 대한 '진실 게임'을 하는 대신, 어쨌든 한국이 대외적으로 공표한만큼 입장을 유지하라는 압박을 한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더불어 어차피 기술적으로 사드 레이더를 제한된 범위에서 사용하는데도 마치 중국의 요구로 '1한'이 받아들여지는 것처럼 선전해 중국 국내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외교 소식통은 사드를 한중 관계의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하자는 한중 외교장관회담 내용과는 별개로 중국이 자기 주장을 다시 밀어붙여 기정사실화 하려는 외교 전술일 수도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실제 왕 대변인의 발언은 적어도 한국 언론의 주목을 받는 데는 성공한 것으로 보입니다.

■ 선시(宣示)가 선서(宣誓)로 알려진 이유

“중국 외교부가 한국의 ‘3불 1한’ 선서에 관심을 갖고 한중이 단계적으로 타당하게 사드 문제를 처리했다고 했다”는 내용을 전한 중국 매체 ‘펑파이’의 10일 기사 제목. (출처: 펑파이 홈페이지)


중국의 '선시' 표현과 관련해 왕원빈 대변인의 '3불 1한' 브리핑 직후 한국 언론들은 '선서(宣誓)'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중국 외교부 브리핑은 한국 시각 오후 4시에 시작하는데 브리핑 직후 펑파이, 중국 신문망 등 중국 매체들도 모두 중국 측이 '한국의 3불 1한 선서'를 거론했다고 썼습니다. '선서'와 '선시'가 비슷한 의미인데다 중국어 발음이 심지어 성조까지 똑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중국 외교부가 한국 시각 밤 9시 30분쯤 공개한 대변인 발언록에 선시(宣示)라고 쓰여진 사실이 확인되며 혼선이 정리됐습니다. 중국 외교부의 영문 발언록은 해당 대목을 공식적으로 알림(officially announced)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조성원 기자 (sungwonc@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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