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넘어 더 많은 이야기하는 '우영우'.. 아동인권·고용차별·성적 자기결정권 등 화두 던지다

이혜인 기자 2022. 8. 11. 14:19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사회 이슈 전하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9화에서는 자신이 ‘어린이 해방군 총사령관’이라고 주장하는 남자 방구뽕(구교환)의 이야기를 통해 아동인권 문제를 다룬다. ENA 제공

화제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하 <우영우>)가 끝을 향해 달리고 있다. 총 16부작 중 13부까지 방영을 마쳤다. 후반부 들어서도 높은 인기와 화제성은 여전하다. 지난 10일 방송된 13회 시청률은 13.5%(닐슨 유료가구 기준)를 기록했다. TV 화제성 분석기관인 굿데이터코퍼레이션이 발표한 8월 첫째주 TV 화제성 드라마 부문 순위에 따르면 <우영우>는 6주 연속 1위에 올라 있다.

초반부보다 한층 넓어진 소재로 새로운 재미를 주는 것도 드라마가 끝까지 시청자를 잡아끈 이유 중 하나다. 초반에는 주인공 우영우(박은빈)를 통해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설명하고 장애인이 직장 생활에서 겪을 법한 고충들을 현실감 있게 풀어냈다. 중반부를 넘어서면서는 실제 사건을 기반으로 한 법정 에피소드를 통해 아동인권과 고용차별 등 문제들을 다루며 대중적인 드라마에서 보기 힘들었던 사회적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지난달 27일 방영된 9화 ‘피리부는 사나이’는 동화 같은 이야기를 통해 아동인권에 대한 화두를 던졌다. 배우 구교환이 연기한 ‘방구뽕’이라는 남자가 이 회차의 주인공이다. 방구뽕은 학원차 운전기사에게 수면제를 먹여 재우곤 학원차에 타고 있던 초등학생들을 납치한다. 납치의 목적은 ‘어린이 해방’이다. 자신을 ‘어린이 해방군 총사령관’이라 주장하는 방구뽕은 납치한 어린이들을 인근 동산으로 데려가 같이 비사치기를 하고 군고구마를 먹으면서 4시간 동안 신나게 논다. 우영우는 방구뽕의 어머니이자 납치된 초등학생들이 다니는 학원의 원장으로부터 방구뽕 변호를 의뢰받는다.

개요만 간략하게 듣는다면 망상장애에 빠진 남성의 납치 행각으로 보이는 사건이다. 하지만 작가는 아동인권에 대해 말하기 위해 많은 상징들을 이 에피소드에 숨겨두었다. 극중 초등학생들은 화장실도 맘대로 가지 못하게 하는 학원에서 매일 밤 10시까지 공부하며 시달린다. <우영우>는 방구뽕이라는 인물을 통해 이 현실은 부조리하다고 지적한다.

9화 방영 후 시청자들은 작가가 방구뽕이라는 인물에 소파 방정환 선생을 상징하는 장치들을 넣어두었다고 분석했다. 방구뽕은 방정환 선생과 같은 방씨이며, 극중에서 등장하는 주민번호를 보면 어린이날인 5월5일이 생일이다. 방구뽕이 자신을 어린이 해방군 총사령관이라 주장하고 어린이들을 가입시키려 하는 모습은 방정환이 조선소년운동협회를 조직해 활동한 것과 닮아 있다. 우영우는 법정에서 방구뽕을 망상장애라고 주장하는 대신 “피고인은 현존하는 사회 체제에 반대하는 사상을 가지고 개혁을 꾀하는 행위를 함으로써 성립하는 죄를 지은 사람, 사상범”이라고 변호한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10화에서는 장애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주제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고, 장애인 대상 성범죄를 어떻게 다뤄야하는지 그 기준도 제시하려한다. ENA 제공

이어지는 10화에서는 실제 사건에 기반해 ‘장애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주제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이 회차에서 우영우는 장애인 자조모임 카페에 고의로 가입해 지적장애가 있는 여성에게 접근한 한 남성의 변호를 맡는다. 남성은 비슷한 방식으로 장애가 있는 여성에게 접근해 연애를 한 전적이 있는 데다가, 여성의 카드로 데이트비용 전부를 결제했다. 두 사람이 성관계를 가진 후에 여성이 성폭력을 당했다는 사실을 어머니의 도움으로 경찰에 알려 재판이 진행된다.

정황상으로 보면 사랑에 기반한 연애가 아닌 성범죄로 판단할 만하지만, 당사자인 장애 여성이 성폭력을 당했다는 주장과 남성을 사랑해 성관계를 한 것이라는 주장을 동시에 하면서 사건이 혼란에 빠진다. 이 에피소드는 <우영우> 자문 변호사 중 한 명인 신민영 변호사의 책 <왜 나는 그들을 변호하는가>에 나온 실제 사건을 토대로 쓰인 것으로 보인다.

작가는 등장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장애인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성폭력의 경계에 대해 질문하고, 그 답도 함께 찾아간다. 장애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에만 집중해 변론을 펼치는 우영우에게 법정에 나온 전문가 참고인은 말한다. “사랑인 줄 알았던 관계가 사기와 기만, 폭력이었던 경험은 누구나 할 수 있어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일을 겪더라도 스스로 지킬 수 있습니다. (…) 하지만 (이번 사건의 여성은) 당시 상황을 신빙성 있게 진술할 수 있는 능력이 있더라도 피고인의 악의적인 접근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는 힘은 약하다는 거예요.” 장애인에게도 사랑할 권리는 분명히 있으나, 범죄로 해석될 수 있는 상황 앞에서는 분명한 기준과 보호가 필요하다는 점을 짚는다.

최근 방영된 12화는 작가가 던지고 싶은 사회적 메시지를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회차였다. 미르생명이라는 회사가 구조조정 과정에서 여성 직원에게 희망퇴직을 강요한 에피소드다. 회사는 구조조정을 실시하며 부부 직원을 상대적 생활 안정자로 분류하고, 부부 중 한 명에게 명예퇴직을 권유한다. 인사팀장은 사내부부 중 여성 직원들을 호출해 “사내부부 중 1인이 명예퇴직 신청을 하지 않으면 남편 직원이 휴직 대상이 된다”고 말한다. 사실상 남편의 휴직을 막기 위해 아내 직원들이 대거 사표를 내는 결과로 이어진다. 우영우가 속해있는 한바다 로펌은 이 사건에서 미르생명 측의 변호를 맡아 승소한다.

이 사건은 1999년 있었던 ‘농협 사내부부 해고 사건’과 세세한 부분까지 거의 일치한다. 당시 해고 여성을 변호했던 김진 변호사가 ‘한겨레21’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법정 밖에서 여성 노동자들이 연대하던 풍경까지 드라마에서 고스란히 재현됐다. 실제 사건과 드라마 속 사건에서 노동자들은 모두 패소한다. 법원은 고용차별이 있던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사회·경제적 관점에서 용인된다”는 충격적인 결론을 내놓는다. 그럼에도 해고 여성들은 “재판을 해봐서 속이 시원하다”고 외치며 여성 노동자끼리 연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우영우는 이 과정을 몸소 겪으며 좋은 변호가 무엇인지, 변호사로서 잊지 말아야할 직업의식은 무엇인지를 성찰하며 성장한다.

<우영우>를 쓴 문지원 작가는 실제 사건에 기반해 에피소드를 구성하기 위해 여러 명의 자문 변호사를 뒀다. 방대한 양의 실제 사건 기록과 뉴스도 뒤졌다. 단지 극의 재미만을 위해서 기울인 노력은 아니다. 지난달 26일 기자간담회에서 문 작가는 “만약에 우리 사회를 조금이라도 더 살 만한 곳, 나은 곳으로 만드는 것이 있다면 우리 드라마 자체보다는 이 드라마를 계기로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이야기들”이라고 말했다. 문 작가는 “‘이상한’은 낯설고 이질적으로 피하고 싶은 부정적 의미도 있지만 동시에 이상하기에 할 수 있는 창의적 생각이나 우리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문 작가의 말처럼, 이 ‘이상한’ 드라마는 재미와 함께 생각할 거리를 끊임없이 던지며 드라마를 보는 이들이 더 많은 이야기를 하게 만들고 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12화에서는 1999년 있었던 ‘농협 사내부부 해고 사건’을 토대로고용차별 문제를 다룬다. ENA 제공

이혜인 기자 hyein@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