굼뜬 건강보험료 '무임승차' 줄이기

박중언 2022. 8. 11.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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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언의 노후경제학]이코노미 인사이트 _ Economy insight
박중언의 노후경제학
이기일 보건복지부 제2차관이 2022년 6월29일 세종시 정부청사에서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2단계 개편 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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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자금 계획을 세

울 때 빠뜨리기 쉬운 게 건강보험료다. 나이 들어 퇴직하면 월급이 나오지 않으니 거기에 붙던 소득세와 국민연금의 납부 의무가 사라진다. 하지만 건강보험은 필수고, 의료비가 많이 드는 노후에 더 소중해진다. 직장을 다니는 자녀의 피부양자가 아닌 한 지역가입자로 전환돼 건강보험료를 내야 한다. 서울에 내 집이 있는 중산층 퇴직자라면 건강보험료가 재직 때보다 더 나올 수 있고, 강남에서는 2배 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이 때문에 보수 언론과 부유층에서 ‘건보료 폭탄’이라고 아우성친다.

2022년 9월부터 적용되는 건강보험 부과체계 2단계 개편에 따라 지역가입자의 보험료가 조금 줄어들었다. 보험료 부과 기준은 소득·재산·자동차다. 자동차는 4천만원 이상 승용차에만 보험료를 물려 부과 대상이 확 줄었다. 최대 1350만원이던 재산 공제액이 일괄 5천만원으로 늘어 재산 보험료가 평균 24.5% 내려간다. 소득 보험료는 등급별 점수제에서 직장가입자와 같은 정률제(6.99%)로 바뀐다. 이번 개편은 2017년 3월 관련 법 개정에 따른 후속 조처다.

반쪽 개선

논란거리는 피부양자 자격 문제다. 주변에선 재산이 넉넉한 부자가 자녀나 사위·며느리의 피부양자라는 이유로 건강보험료를 한 푼도 내지 않는 사례를 심심찮게 본다. 이런 건보료 ‘무임승차’에 국민 불만이 높아 피부양자 자격을 강화하는 쪽으로 제도가 꾸준히 개선됐다.

피부양자는 소득 요건과 재산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이번에 피부양자 소득 요건을 3400만원 이하에서 2천만원 이하로 낮췄다. 근로·연금·이자·배당 등 연간 소득이 2천만원을 넘으면 피부양자 자격을 잃고 지역가입자에 편입된다. 그러나 재산 요건은 5억4천만원 그대로 유지했다. 연간 소득 1천만원이 넘으면 재산 과세표준액이 5억4천만원 이하여야 피부양자 자격을 갖는다. 이 재산과표 상한을 3억6천만원으로 낮추겠다고 5년 전부터 공지한 방침을 바꾼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재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주택의 공시지가가 크게 오른 점을 그 이유로 들었다. 재산과표는 주택 재산세의 과표와 같다. 공시지가에 공정시장 가액비율(60%)을 곱한 액수다. 그동안 많이 올랐다는 공시지가는 2022년 실거래가의 평균 70% 수준이다. 집값의 42%가 재산과표인 셈이다. 전세보증금은 30%를 재산과표로 인정한다.

이번 개편으로 피부양자 자격을 잃는 사람이 전체 피부양자(1809만 명)의 1.5%인 27만3천 명(18만 가구)으로 추산된다. 이는 재산 요건도 함께 강화했을 때의 추정치인 59만 명(47만 가구)의 절반을 밑도는 수치다. 연간 소득 1천만~2천만원, 재산과표 5억4천만~3억6천만원(실거래가 약 12억~9억원) 구간의 피부양자가 자격을 유지하게 된 것이다.

복지부의 이런 결정은 건강보험의 형평성을 중시하는 국민 다수의 바람과 거리가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건강보험료 부과제도 적정성 평가 방안 연구’(2020년) 보고서를 보면 “상시적 국민인식조사 결과 국민은 피부양자 무임승차 방지 성과를 가장 높게 평가하고, 앞으로 더 많이 개선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복지부는 피부양 자격 탈락자들의 불만과 보수 언론의 ‘건보료 폭탄 타령’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직장가입자 대비 피부양자의 비율은 한국이 0.95로 세계에서 가장 높다. 2021년 기준 전체 가입자의 37.1%가 직장가입자, 35.2%가 피부양자다. 2020년까지는 피부양자가 더 많았다. 이 비율(2020년 기준)이 독일은 0.28, 대만은 0.49다. 복지부는 소득 요건을 2천만원으로 낮췄지만, 독일(약 700만원)과 일본(약 1300만원)에 견주면 여전히 후한 편이다.

불똥 튄 국민연금

피부양자 소득 요건 강화로 논란의 불똥이 엉뚱하게 국민연금으로 튀었다. 국민연금을 월 167만원 이상 받으면 다른 소득이 없어도 연간 소득이 2천만원이 넘는다. 피부양자 자격을 잃는 것이다. 연금저축과 개인형 퇴직연금(IRP) 등 사적 연금과 달리 국민연금을 비롯한 공적 연금은 보험료 부과 대상이다.

2천만원이 넘는 부분만 아니라 전체 소득이 부과 대상이다. 또 연금·근로소득의 과표를 이전 30%에서 50%로 늘렸다. 이에 따라 소득 보험료만 최소 6만원 가까이 나온다. 여기에 재산 보험료가 추가된다. 보유 아파트의 공시지가가 지난해 5억8천만원에서 올해 7억5천만원으로 뛴 P부장이 지역가입자라면 재산과표가 60%인 4억5천만원이다. 재산공제(5천만원)를 뺀 4억원에 보험료가 부과된다. 60등급으로 나뉜 재산 보험료를 계산하면 15만5천원이 나온다. 이번 피부양 자격 탈락자들의 월평균 보험료는 14만9천원으로 추산됐다. 이들의 부담을 덜기 위해 보험료를 4년 동안 단계적으로(80~20%) 깎아준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국민연금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연금을 월 100만원 넘게 받는 수급자는 아직 전체의 8.1%에 불과하다. 하지만 1988년 국민연금 도입 때부터 가입한 직장인들의 퇴직이 본격화해 연간 2천만원 넘는 수급자가 빠르게 늘어난다. 국민연금은 물가에 연동돼 지금처럼 물가가 뛰면 액수가 늘어난다. 게다가 정부와 국민연금공단은 노후 보장 강화를 위해 ‘국민연금 더 받기’를 꾸준히 홍보해왔다. 연금 수령 시기를 늦추면 최고 36%(1년에 7.2%씩), 60살 이후에도 보험료를 내면 1년에 5%씩 수령액이 늘어난다.

노후를 다루는 유튜브 운영자들은 국민연금 조금 더 받으려다 건강보험료로 토해낼지 모르니 조심하고 조기 수령으로 액수를 줄이는 것을 고민해보도록 조언한다. 1년 앞당겨 받을 때마다 수령액은 6%씩, 최대 30% 줄어든다. 친척과 지인의 회사에 저임금 직원으로 등록하거나, 서류상 회사를 차려 직장가입자가 되는 등 ‘위장 취업’이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이런 논란은 부모 등 부담 능력이 있는 피부양자가 여전히 많은데다 자격 여부에 따라 보험료 차이가 너무 크게 나는 데서 비롯한다. 피부양이라는 취지에 맞게 소득·재산 요건을 훨씬 강화해 자녀 이외 대상자를 대폭 줄이는 대신 자격을 잃은 사람에게는 기준 초과분에만 보험료를 물려 부담을 낮춰주는 방향의 개선이 바람직해 보인다. 일본과 대만처럼 피부양자 수에 따라 보험료를 추가할 수도 있다.

park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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