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의 아침] 가족에 헌신한 'K-장녀들'..'뼈를 녹여 소금꽃을 피웠다' 출간

정길훈 2022. 8. 11.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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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여성가족재단, '뼈를 녹여 소금꽃을 피웠다' 발간"
- "방직공장 여성 노동자 6명의 생애 구술사를 책으로 엮어"
- "70~80년대 방직공장의 열악한 노동환경·가정사 실어"
- "남성 가장 이데올로기 뛰어넘는 주체적 여성의 삶 담겨"
- "광주여성가족재단, 전통시장 여성 생애사 구술도 채록"
- "과거 기록 차원 넘어 공동체 지켜낸 세대 기억하는 작업으로 의미 부여"
[KBS 광주]

■ 인터뷰 자료의 저작권은 KBS에 있습니다. 인용보도 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 프로그램명 : [출발! 무등의 아침]
■ 방송시간 : 08:30∼09:00 KBS광주 1R FM 90.5 MHz
■ 진행 : 정길훈 앵커(전 보도국장)
■ 출연 : 정미경 광주여성가족재단 팀장
■ 구성 : 정유라 작가
■ 기술 : 임재길 감독

◇ 정길훈 앵커 (이하 정길훈): 광주여성가족재단이 방직공장 여성 노동자들의 삶을 기록한 책을 발간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뼈를 녹여 소금꽃을 피웠다'라는 제목의 책인데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된 노동을 감내했던 방직공장 여성 노동자들의 생생한 이야기가 오롯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책을 발간한 광주여성가족재단 정미경 성평등문화팀장 연결합니다. 안녕하십니까?

◆ 광주여성가족재단 정미경 성평등문화팀장 (이하 정미경): 안녕하십니까?


◇ 정길훈: 책이 최근에 출간됐죠?

◆ 정미경: 네. 7월 말에 출간됐습니다.

◇ 정길훈: 여성가족재단이 어떻게 해서 이 책을 발간하게 됐는지 과정을 소개해주시겠습니까?

사진 출처: 광주여성가족재단


◆ 정미경: 광주여성가족재단이 2019년부터 광주여성사의 통사 작업을 진행해왔어요. 근현대임에도 자료가 너무나 부족했고 기록되지 않은 여성의 역사가 너무 많았습니다. 그래서 살아 계신 분들의 목소리를 통해 역사를 기록하는 생애 구술사 작업에 착수하게 됐습니다. 그 첫 결과물로 이번에 책이 나오게 된 거죠.

◇ 정길훈: 생애 구술사 첫 기획으로 방직공장 여성 노동자들을 선정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 정미경: 첫 기획이라 고민이 많았어요. 광주의 어떤 것들이 광주 여성사의 상징이 될 수 있을까 고민을 하다가 방직공장은 식민지 시절부터 가동된 광주전남의 대규모 공장이자 기업이었잖습니까? 그리고 여성들이 그동안 전통적으로 해왔던 역할과는 다른 근대적인 노동자로서 여성을 불러들였던 곳이어서요. 그리고 아시다시피 1970~1980년대 경공업 중심의 노동집약적 산업을 통해서 광주가 성장하고 한국이 근대화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광주의 발전이 방직공장과 함께했다고 말할 수 있고 이런 역사의 주역이 여성 노동자들이었기 때문에 첫 기획으로 적절하다 이렇게 판단했습니다.

◇ 정길훈: 책 제목이 '뼈를 녹여 소금꽃을 피웠다'입니다. 어떤 의미로 제목을 붙인 겁니까?

◆ 정미경: 많은 분이 제목이 너무 슬프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데요. 이 구절은 저희 책의 구술자이시기도 한 정미숙 작가님의 시 '소금꽃'의 일부 구절이에요. 그래서 잠깐 그 구절을 제가 읽어드리면 ‘8시간 어서어서 지나가길 기다리며 앞만 보고 고개만 숙이고 다람쥐 쳇바퀴 돌고 돌아 굵은 땀방울 흐르고 흘러 겨드랑이 마저 짓물리고 나서야 소금꽃으로 피어났네’ 이런 구절이거든요. 방직공장의 극한 노동을 표현한 분이고 저희 구술자 분들의 삶을 가장 잘 표현한 것 같아서 작가님 허락을 얻어 제목으로 달았습니다.

◇ 정길훈: 방금 말씀하신 정미숙 작가님이 당시 방직공장에서 일했던 분입니까?

◆ 정미경: 네. 방직공장에서 일을 하셨고 이번 저희 책에 구술자로 참여해주셨어요.

◇ 정길훈: 그러면 정미숙 작가님 말고도 이번에 방직공장에서 일한 경험을 들려준 구술자 분들이 어떤 분들이 또 있는지 간략하게 소개해주시겠습니까?

사진 출처: 광주여성가족재단


◆ 정미경: 구술자 분은 총 6명이시고요. 연령대가 40대부터 80대 후반까지 다양하신데요. 이분들은 연배가 오래되신 분들은 한국전쟁 직후에 입사한 분도 계시고 또 가장 최근 일신방직이 가동 중단할 때까지 일하셨던 분들도 계세요. 그래서 이분들 자체가 방직공장의 역사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고. 그리고 조금 사람마다 다르기는 합니다만 일반적으로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학교를 중퇴하고 그리고 가족들 건사하고 동생들 학비를 벌었던 소위 'K-장녀'가 많으시고요. 그리고 산업역군이나 영웅으로 불렸던 바로 그 당사자 분들이고, '공순이'라고 놀림 받았던 분들인데 그런 사회적인 시선에도 불구하고 공장에 입사해서 책가방 대신에 가장의 무게를 짊어진 분들이에요. 그래서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에 가족에 정말 헌신했고 그 선택을 주체적으로 능동적으로 하셨던 바로 우리 광주의 어머니 이모, 고모들, 자매들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 정길훈: 제가 아직 책을 읽어보지는 못했는데요. 이분들이 구술한 내용이 아무래도 각 개인의 가정환경 ,또 공장에서도 일했던 당시 열악한 노동 실태 이런 것들을 담았을 것 같은데요. 어떻습니까?

사진 출처: 광주광역시청


◆ 정미경: 말씀하신 대로 개인적인 사연은 다양하지만 방직공장 노동자로서의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노동 경험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자면 2교대, 3교대 말로만 들어봤지만 굉장히 극한의 노동 조건이었고 방직공장 자체가 40도가 넘는 고온의 작업장에다 또 솜을 실로 만들어내는 굉장히 복잡한 공정 그리고 한시라도 한 눈을 팔면 기계 전체가 중단돼요. 그래서 그 고온의 노동 조건에서 기계 사이를 뛰어다니며 살펴야 하고 늘 화재와 위험에 노출돼 있었거든요. 그래서 어떤 분은 그만두신 지 몇십 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솜뭉치가 온몸에 달라붙는 꿈을 꾼다. 그리고 나서 깨면 이제는 공장이 아니구나 하고 안도하신다고 해요. 저는 후배 세대로서 어떻게 그런 환경을 견디셨을까 싶을 정도로 굉장히 강도 높은 노동이었고 그렇지만 이런 노동 경험을 통해 더 강인한 여성으로 거듭나신 분들이었고. 나는 방직 공장에서도 일했는데 무슨 일이든 못할 것이 없다고 굉장히 그 노동을 긍정적으로 해석을 하시면서 내 노동으로 가족을 먹여살렸다는 뿌듯함도 있으신, 아주 저는 주체적인 여성들이라고 생각이 되어요.

◇ 정길훈: 조금 전에 정 팀장께서 'K-장녀'라고 말씀하셨는데 동생들의 학업 뒷바라지를 위해서 일선 노동 현장으로 갔던 누나들, 이런 분들이 대부분 구술 작업에 참여하셨다는 것이지요?

◆ 정미경: 그런 분이 많으십니다.

◇ 정길훈: 특별히 이번 책을 엮으면서 정 팀장께서 주목했던 대목이 있습니까?

◆ 정미경: 교정을 여러 번 보면서 참 많이 울컥한 부분이 있었는데요. 일단 전체적인 그 삶을 보니까 남성 가장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허구인지에 대해서, 사실 우리를 먹여 살렸던 것은 누구였던가. 그리고 왜 그들의 노동은 기억되지 않았는가. 우리가 태어나서 자라고 이렇게 사회 구성원으로 번듯하게 살 수 있는 것이 누구의 노동에 과연 빚지고 있었는가 이런 물음을 많이 던지게 됐어요.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 자기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만들어가기 위해 이를 악물고 삶의 열악함과 싸웠던 우리 광주 여성들의 의지와 헌신에 굉장히 숙연해질 때가 많았습니다.

◇ 정길훈: 이분들의 구술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인데, 책을 발간하기 전에요. 당시 방직공장 여성 노동자들의 삶이 어땠는지를 참조할만 한 그런 역사서라든지 기록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남아 있었습니까?

◆ 정미경: 구술 작업을 시작할 때는 많은 자료가 있지는 않았어요. 최근 (광주 임동) 방직공장 개발 터와 관련해서 지역민의 관심이 뜨겁잖아요. 식민시대 방직공장에 대한 역사를 담은 책이 역사박물관에서 발간이 돼 있지만 전체적으로 (광주 방직공장을) 조망한 내용이 없어서 사실 타 지역 사례를 많이 참고했어요. 대농방직 여성 노동자 구술 생애사집이라든가 이런 책을 참고하면서 저희가 이번에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 정길훈: 이번에 구술, 채록 그리고 집필 작업까지 광주 시민이 직접 참여했다고 들었습니다. 책을 발간한 과정도 궁금한데 설명해주시겠습니까?

사진 출처: 광주여성가족재단


◆ 정미경: 이 책은 광주 시민이 기록하는 광주 여성의 역사라는 기획 의도로 출발했어요. 구술 채록이라는 작업이 전문적인 작업이기는 하지만 시민도 충분히 훈련을 통해서 채록단으로 변신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고요. 그리고 사실은 광주 시민 모두가 역사의 주체이고 목격자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런 시민이 모여서 광주 여성의 역사를 기록한다면 훨씬 더 다양한 관점으로 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역사 서술이 가능하겠다고 생각을 했고 그래서 2021년에 구술 채록단으로 활동하고 싶은 시민을 모집했어요. 정말 놀랍게도 많은 능력 있는 시민이 참여를 해주셨고 이 시민 분들과 함께 구술 채록 학교를 통해서 구술사의 이론과 그리고 실전 훈련한 후에 구술 채록 작업을 직접 하게 됐습니다.

◇ 정길훈: 그러면 이번에 발간한 책들을 서점에서 볼 수 있습니까?

◆ 정미경: 이 책은 비매품이고요. 광주 시민이라면 저희 재단 방문하시면 무료로 배포해드리고 있고요. 관외 지역은 저희 재단으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 정길훈: 일반 공립도서관들 있잖아요. 도서관에는 비치가 돼 있겠지요?

◆ 정미경: 곧 비치할 예정입니다.

◇ 정길훈: 이번에 발간한 책이 방직 공장 여성 노동자들의 삶을 구술해서 받은 것이고요. 앞으로도 이런 생애 구술사 작업을 계속 이어가실 것 같은데요. 현재는 어떤 작업이 진행되고 있습니까?

◆ 정미경: 작년에 처음 시작했고 장기적인 프로젝트로 가져가야 되는 사업이라고 보고 있고요. 올해는 전통시장 여성 상인의 구술 채록 작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그래서 광주의 대표적인 전통시장이라고 할 수 있는 양동, 대인, 남광주, 서방, 말바우 이렇게 5개 시장에서 20년 이상 상인으로 활동한 분들 지금 섭외가 완료됐고요. 시장은 시민의 일상이 녹아있는 공간이잖아요. 그리고 또 쇠락이 가속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더 늦기 전에 이곳에서 경제 활동을 했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채록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 정길훈: 그러면 전통시장에서 일했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은 언제쯤 발간될 예정입니까?

◆ 정미경: 내년 봄에 출간될 예정으로 있습니다.

◇ 정길훈: 지금 광주 여성사를 조명하는 작업을 꾸준히 하고 계신데요. 작업을 하는 입장에서 이런 작업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말씀해주실까요?

◆ 정미경: 보통 역사는 승리자의 것이라고 말들을 많이 하잖아요. 중앙에 힘 있는 자들의 관점에서 사건이 기록되고 의미가 해석되어 왔고. 또 사회적으로 힘을 갖지 못한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의 삶은 늘 지워지고 잊히기가 쉽잖아요. 사실 우리가 삶을 빚진 분들은 그런 분들인데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광주 여성의 삶을 기억해야 되는 것은 단지 과거를 기록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우리가 어떤 공동체를 만들어나갈 것인가 이 문제라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지금 우리 광주 공동체를 지켜왔던 선배 세대들, 우리 곁의 이름 없는 이들에게 이름을 찾아주고 그들을 우리 공동체의 중요한 역사로 기록하는 것이 우리가 지금 만들어갈 현재, 미래를 상상해보는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정길훈: 의미 있는 작업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오늘 말씀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 정미경: 감사합니다.

◇ 정길훈: 지금까지 광주여성가족재단 정미경 성평등문화팀장이었습니다.

정길훈 기자 (skynsk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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