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반지하 대책 '반짝 졸속 임시방편' 안된다

연합뉴스 2022. 8. 11.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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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구서 침수로 고립된 일가족 3명 참변 (서울=연합뉴스) 설하은 기자 = 지난 8일 오후 9시 7분께 서울 관악구 부근 한 빌라 반지하에 폭우로 침수된 일가족 3명이 갇혀 신고했지만 결국 사망했다. 주민들에 따르면 사고가 난 빌라 바로 앞 싱크홀이 발생해 물이 급격하게 흘러들었고, 일가족이 고립돼 구조되지 못했다. 사진은 침수된 빌라 배수작업. 2022.8.9 soruha@yna.co.kr

(서울=연합뉴스) 서울시가 주거용 지하·반지하 주택 퇴출을 추진한다. 기록적인 폭우로 반지하에 살던 발달장애인 일가족 3명과 또 다른 기초생활수급자 1명이 잇따라 숨진 뒤 내놓은 대책이다. 2020년 아카데미상을 받은 영화 기생충에 등장했던 반지하 주택이 외신의 'BANJIHA' 보도를 통해 서울의 열악한 주거환경을 세계에 알리는 소재가 됐다. 서울시가 10일 발표한 지하·반지하 거주 가구를 위한 안전대책에 따르면 서울시는 우선 지하층은 주거용으로 허가하지 않도록 자치구에 건축허가 원칙을 전달하고, 건축법 개정을 정부와 협의키로 했다. 현재 있는 지하·반지하 건축물의 경우 '반지하 주택 일몰제'를 적용한다. 세입자가 나간 뒤 근린생활시설, 창고, 주차장 등 비주거용으로 전환할 경우 리모델링을 지원하거나 정비사업에서 용적률 혜택을 주는 등의 방법으로 10~20년 유예기간을 주고 순차적으로 없앤다는 계획이다. 빈 곳으로 남은 지하·반지하는 서울주택도시공사 '빈집 매입사업'을 통해 사들여 주민 공동창고나 커뮤니티시설로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그동안 자연 멸실 정책을 펴온 경기도는 반지하 주거 형태를 전면적으로 실태 조사해 대책을 마련키로 했다. 여당인 국민의힘과 정부는 국회에서 긴급 당정 협의회를 열고 지하 주택과 같이 주거 취약지역 거주자들을 대상으로 1년에 1천300가구씩 임대주택으로 전환하는 프로그램을 확충해 활용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사망사고가 발생한 서울 상도동 반지하 가구를 찾아 지하·반지하에 사는 시민들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기 위한 대책 마련을 약속했다.

지하·반지하 주택 침수는 매년 폭우가 쏟아질 때마다 발생한다. 대책도 우후죽순 쏟아졌다.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상을 받은 뒤에도 그랬다. 촬영지인 반지하 투어 상품이 등장했고 지방자치단체의 환경개선 약속이 있었지만, 이번 폭우 앞에 영화보다 험악한 현실이 됐다. 순식간에 차오르는 물에 속수무책이었고 구조의 손길은 요원했다. 2010년 태풍 곤파스가 강타한 이후 서울시는 저지대에 반지하 주택 신축을 금지했다. 신축 허가는 까다로워졌지만, 지하·반지하 주택은 저렴한 주거비와 출퇴근 등 입지 조건이 좋아 여전히 수요가 있다. 2020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수도권 반지하 거주 인구는 전국적으로 33만 가구다. 서울에만 20만 가구, 경기도에는 8만8천 가구에 달한다. 수도권에 대거 몰려있는 셈이다. 장판 밑과 벽지 속에는 늘 곰팡이가 피어 눅눅하다. 환기도 안 되고 비만 오면 물이 들이차지만 지상에 비해 값이 저렴해 주로 저소득층의 주거공간이 됐다. 특히 노년 가구와 자녀를 양육하는 가구 비율이 높다. 가격 대비 넓은 주거 형태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국토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지하 임차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187만 7천원이고, 소득 대비 주거비 비율은 23.8%로 아파트 임차 가구의 29.2%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 경기도 등 지방자치단체와 정부가 지하·반지하 주택 대책을 적극 추진하고 나선 점은 사후약방문이라도 일단 고무적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하·반지하 주택은 안전이나 주거환경 등 모든 측면에서 주거 취약계층을 위협하는 후진적 주거유형으로 사라져야 한다"며 "이번만큼은 임시방편에 그치는 단기적 대안이 아니라 시민 안전을 지키고 주거 안정을 제공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추진하겠다"며 강력한 의지를 피력했다. 지켜볼 일이다. 지하·반지하를 퇴장시키고 주거 취약계층을 끌어올릴 정책적 수단을 찾아내느냐가 관건이다. 저소득 다자녀 가구에 대한 공공임대주택 입주 우선권 부여나 월세 지원, 저소득 양육 가구에 별도의 아동 주거비 지원 등이 거론된다. '반지하 거주환경 개선방안' 보고서를 낸 경기연구원 남지현 연구위원은 "반지하 주택의 신축 허가에 대한 규제 관련법 개정이 우선돼야 한다"면서 "반지하 거주민에게 공공임대주택으로 주거 이전을 지원하고 일부 반지하 주택을 공공시설로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할만하다"고 밝혔다. 사상자가 발생한 뒤 나온 지자체와 정부의 대책이 또다시 '반짝 졸속 임시방편'에 그쳐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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