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없다" 코로나로 소아청소년 사망 늘지만 진료 중단하는 소아응급실

최정석 기자 2022. 8. 11.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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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응급환자 진료 축소·중단 병원 늘어
원인은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충원율 급감
2018년 101%에서 2022년 28.1%로 떨어져
복지부, '필수의료 간담회' 열며 해결책 모색
의사들은 "몇 년째 말해도 변화 없다" 비판
코로나19에 감염된 아이가 의료진 치료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서초구에 거주 중인 30대 여성 A씨는 지난 7월 말 새벽 아이를 데리고 인근의 한 대학병원 소아응급실을 찾았다. 아이 몸에서 갑자기 두드러기와 열이 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A씨의 아이는 진료를 받지 못했다. 소아응급실에 소아과 의사가 없고 응급의학과 의사만 있어 약 처방만 가능하다고 병원 측은 설명했다. 밤을 새워 아이를 돌보던 A씨는 다음 날 오전 9시가 되자마자 주변 소아청소년과 의원을 방문해 진료를 받았다. 아이는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A씨는 “대학병원 소아응급실에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24시간 상주하지 않는다니 황당하다”고 말했다. A씨가 방문한 병원은 서울에 14곳, 전국에 45곳뿐인 상급종합병원 중 하나다.

11일 의료계에 따르면 소아응급실을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거나 아예 소아 응급환자 진료를 중단하는 병원이 늘고 있다. 중앙대병원의 경우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밤 12시까지만 소아응급실에 상주한다. 새벽 시간대에 방문해도 아이가 생후 12개월 이상이거나, 병원 측에서 증상이 경미하다 판단하면 진료를 받을 수 없다.

일산백병원은 소아 응급환자를 아예 받지 못하고 있다. 이대목동병원은 오는 9월부터 소아응급실 운영을 소아청소년과가 아닌 응급의학과에서 전담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최근 5년간 필수의료과목 정규정원 확보율 표.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제공

이는 소아청소년과 지원자 수가 급감하면서 병원들이 소아응급실에 배치할 인력을 구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발표한 ‘최근 5년간 필수의료과목 정규정원 확보율’에 따르면 지난 2018년 101%였던 소아청소년과 충원율은 올해 들어 28.1%(208명 중 57명)로 떨어졌다. 6개 필수의료과목(소아청소년과, 흉부외과, 비뇨의학과, 외과, 산부인과, 내과) 중 최하위다.

의료계는 지난해 기준 0.81명까지 떨어진 합계출산율이 가장 큰 원인이라 보고 있다. 소아청소년과가 수익을 내고 유지되려면 소아청소년 환자가 있어야 하는데, 출산율 급감으로 환자 수가 줄자 먹고 살기 힘든 ‘기피과’가 된 것이다.

기존에 정상 운영되던 소아응급실에는 의대 6년 과정을 마치고 갓 졸업한 수련의(인턴)와 인턴 과정을 마친 1~2년 차 전공의(레지던트)가 한 조를 이뤄 상주하는 게 통상적이었다. 수련의가 환자 상태를 확인한 뒤, 호출을 받은 전공의가 진료하는 식이었다. 전공의 선에서 해결 불가능한 응급환자는 경력이 더 많은 전문의, 교수 등을 긴급호출해 치료했다.

그런데 지난 2019년부터 소아청소년과 지원자 수가 줄면서 저연차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를 구하지 못한 병원이 늘기 시작했다. 급한 대로 전문의, 교수들이 하루 24시간 가까이 근무하며 낮에는 진료와 수술, 밤에는 소아응급실 당직을 섰다. 이러한 상황이 길어지면서 의료진들이 체력적 한계에 부딪히자, 낮 진료와 수술에도 지장이 생길 것을 우려한 병원 측이 소아응급실 운영을 축소하거나 아예 환자를 받지 않게 된 것이다.

전문의 등을 고용해 소아응급실을 운영하는 병원도 있지만,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포기하는 일도 많다. 여한솔 대한전공의협의회 회장은 “코로나 이후 병원 내 감염을 우려한 부모들이 방문을 줄이면서 소아응급실 적자폭이 커지고 있다”며 “일할 사람도 적고, 있어도 적자만 나니 병원 입장에선 (소아응급실) 운영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난 3월 14일 오후 서울 중랑구 서울의료원에서 응급의료센터에서 의료진들이 소아 환자를 이송하고 있다. /뉴스1

문제는 최근 코로나19 재유행으로 소아청소년 감염자가 늘면서 소아응급의료 수요 또한 늘고 있다는 점이다.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에 따르면 전날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15만1177명인데, 이중 16%(2만4250명)가 18세 이하 소아청소년이다. 일주일 전인 지난 3일(1만9521명)보다 4729명 늘었다.

지난 10일 오후 3시 기준 서울아산병원, 서울성모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대병원, 연세세브란스병원 등 빅5 병원의 소아응급실 병상은 모두 꽉 찼다. 코로나 재유행 이후로는 사실상 병상이 비는 일이 없다고 한다.

코로나19 감염으로 사망하는 소아청소년 수도 최근 늘고 있다. 올해 4월 한 달간 18세 이하 소아청소년 13명이 사망한 뒤 5월과 6월에는 각각 4명, 2명씩 사망자가 나왔다. 그런데 재유행이 본격화된 7월에는 같은 나이대에서 8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정부도 대응에 나섰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9일 오후 ‘필수의료 분야별 간담회’를 열고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측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소아청소년과 의료 현장의 어려움과 개선방안을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소아청소년과 측 반응은 냉랭하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은 “전공의 충원율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는 문제를 지난 몇 년간 제기했지만 정책적인 해결책이 나온 건 전혀 없다”며 “이대로면 소아응급실 문을 닫는 병원이 계속 늘면서 수많은 아이들이 죽어 나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지난해 필수의료협의체를 만들어 6개 과목 의사들에게 들은 애로사항이 조만간 정리가 될 전망이다”이라며 “이를 토대로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정책적 해답을 내놓겠다”고 말했다. 다만 정확히 언제까지 대책을 내놓겠다는 언급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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