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임속 도시풍경 위로 겹겹이 덧칠된 '감정 조각들'

2022. 8. 11.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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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갤러리 부산, 14일까지 이희준 개인전
‘88년생’ 이희준 작가는 ‘색면 추상’ 시리즈인 ‘어 쉐이프 오브 테이스트(A Shape of Taste)’와 ‘이미지 아키텍트(Image Architect)’ 작업으로 MZ 세대와 미술시장이 주목하는 작가로 성장했다. [국제갤러리 제공]

걷고 보는 도시의 풍경이 사각의 화면 안에 담긴다. 알록달록한 색상의 거리는 작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제가 유학을 하던 글라스고라는 도시는 저채도의 회색빛 도시였어요. 그런 곳에 있다가 한국으로 오니 거리에서 다채로운 색깔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1960~70년대 지어진 빨간 벽돌의 한옥과 양옥 사이 사이로 새로운 감각의 트렌드들이 쌓여 도시의 풍경을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희준)

네모난 잿빛 도시로 불렸던 서울의 아름다움을 발견한 건 잠시 이 곳을 떠나있던 젊은 작가의 눈이었다. 작가의 시선은 감각적이다. 이희준은 홍대, 한남동 주택가의 평범한 일상에서 발견한 아름다운 찰나를 건져 올린다.

개인전 ‘희준 리(Heejoon Lee)’(8월 14일까지, 국제갤러리 부산)를 열고 있는 국제갤러리 관계자는 “자신을 둘러싼 공간의 안팎에서 끊임없이 생각하고, 걸어다니며 만난 도시의 풍경을 통해 작품의 영역을 확장해갔다”고 말했다.

발길이 머무는 도시의 모습을 회화로 담아낸 ‘색면추상’ 시리즈인 ‘어 쉐이프 오브 테이스트(A Shape of Taste)’는 이희준 작가의 대표 시리즈 중 하나다. 이 작업의 세련된 색의 조합이 낯이 익을 수 있다. 삼성 비스포크 냉장고는 지난 2019년 이희준 작가와 협업, 그의 작품세계를 가전제품 안에 담았다.

이 작가는 거리의 곳곳에서 톡톡 튀는 색을 발견한다. 최근 국제갤러리에서 만난 이 작가는 “길을 가다 보면 만나는 옷가게에선 다양한 색을 볼 수 있다. 전체 톤을 개나리색이나 하늘색으로 맞추는 곳들도 있었다”며 “그런 곳에서 사진으로 찍어둔 색을 가져와 쓰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희준의 화면엔 쉽사리 시도하지 않은 색깔들이 감각적으로 조화를 이룬다. 그 스스로도 “이 작업 자체는 일종의 감각의 지표”라고 했다.

“사실 어릴 때의 전 색을 굉장히 못 쓰는 사람이었어요. 미술을 시작할 때만 해도 자꾸 이상한 색이 나왔고요. 유학할 땐 주로 회색을 많이 썼는데 한국에 와서 보니 더 다채로운 색을 써도 된다고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누군가가 보기엔 예쁘지 않고, 탁해 보이는 색들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고 의외로 예쁠 수도 있어요. 다양한 조합이 제 감각들과 섞여 나오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색면추상과 함께 2019년부터 이어오고 있는 ‘이미지 아키텍트(Image Architect)’는 회화 작업 안에선 보이지 않는 색이나 면에 가려진 기억 속 풍경을 불러온다. 길을 걷거나, 여행 중 마주한 풍경을 사진으로 담아 이미지를 수집하고, 그것을 확대해 캔버스에 부착하는 포토 콜라주 기법의 작업이다.

이 작가는 “여행하다 만난 공간은 물론이고 일상의 경험 속에서 전혀 기대가 없던 공간이 다르게 느껴질 때가 있다”며 “그 공간이 습도와 온도, 채광으로 순간 순간 달라지는 모습을 할 때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 찰나를 포착한다. 그 순간 내가 느끼는 감정을 담아내고자 시작한 작업이 ‘이미지 아키텍트’다”라고 말했다.

‘이미지 아키텍트’ 작업 과정은 건축과 닮았다. 작가의 시선과 감정이 담긴 사진을 가장 먼저 올린 뒤, 그 위로 회화 작업을 진행한다. 다양한 점, 선, 면, 곡선의 요소를 활용하고 리드미컬과 조형감과 작가의 색채 감각을 입힌다. 이 작가는 “회화라는 매체가 어떻게 건축과 만나 건축적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지 생각했다”며 “기존 회화 작업이 건축의 구조를 따라가는 방식으로 진행됐다면, ‘이미지 아키텍트’ 작업은 레퍼런스로 사용하는 사진 이미지를 배경으로 깔고, 그 위에 자의적으로 어떤 환경을 새롭게 건축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고 말했다.

‘이미지 아키텍트’의 각 작품마다 “가장 주력하는 색상은 해당 장소에서 가장 큰 인상을 받은 색”이다. 그 아래로 깔려 여러 겹 덧칠한 색은 모호해진 ‘순간의 기억’을 고스란히 표현했다. “단편적인 순간의 기억은 때로는 이런 느낌도 있지만 저런 느낌도 있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마음들을 담아 가장 아래 깔려있는 색은 한 겹 한 겹씩 쌓아 올라갔어요.”

지난 몇 년 사이 꾸준히 선보이는 이 작업들로 ‘88년생’ 작가는 MZ 세대와 미술시장이 주목하는 작가로 성장했다. 지난 5월 열린 ‘아트부산’에서 이희준의 회화 작품 7점(300만원~4000만원)은 5분 만에 완판됐다. 그는 “앞으로도 회화라는 매체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를 이어갈 것 같다”고 말했다.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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