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지키려 에어컨 끕니다"..'에어컨 문명'에 도전하는 청년들

김윤주 2022. 8. 11.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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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풍기에 아이스팩 붙여놔도
방 온도 31도..바깥보다 더워
땀 많이 흘려 수시로 옷 빨래

폭염 심할수록 에어컨 늘어나고
사용량 늘수록 온난화도 심해져
"기후위기 시대에 할 수 있는 일
전체소등 같이 모두 함께 했으면"
거주지에서 에어컨을 사용하지 않고 지내는 모습을 사회관계망서비스 등에 올리는 행사를 진행 중인 청년단체 ‘청년너울’의 배준용 대외협력팀장이 지난 8일 오전 서울 노원구 집에서 얼음주머니를 붙인 선풍기 바람을 쐬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우리는 ‘에어컨 문명’에 살고 있다. 세계에서 가동 중인 에어컨은 20억대. 세계 인구의 5분의 2다. 한국은 중국, 미국, 유럽연합, 일본에 이어 에어컨이 가장 많은 나라다. 가구당 에어컨 수는 0.97대. 기후위기 시대, 에어컨은 세탁기(0.99대), 냉장고(1.01대)와 같은 수준의 필수품이 됐다.(전력거래소 2019년 통계) 이 기획은 에어컨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통해 본 에어컨 문명의 스케치다. 편집자주

지난 8일 낮 서울 노원구 한 아파트. 대학생 배준용(25)씨의 집에 들어가자 후덥지근한 공기가 훅 끼쳐왔다. 배씨는 2주 넘게 에어컨을 켜지 않고 있다. “지구 온도가 1도만 높아져도 지구에 큰 악영향을 끼친다는데, 기후위기 시대에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해야겠다는 생각에 에어컨을 끄고 지냅니다.”

폭염에도 배씨처럼 일부러 에어컨을 끄는 이들이 있다. 기후위기·복지 등 활동을 하는 청년단체인 ‘청년너울’은 에어컨을 끈 사진을 ‘#기후위기’ 등 해시태그와 함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는 ‘에어컨 끄기 챌린지’를 지난달 말부터 진행 중이다. 에어컨 사용이 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사용을 줄이자는 취지다. 에어컨은 실내를 차갑게 하면서 실외로 뜨거운 바람을 내뿜고, 장기적으로는 온실가스를 배출해 지구 온도를 높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배씨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그는 선풍기에 아이스팩을 붙여두고 바람을 쐤다. “땀을 많이 흘려서 온몸이 끈적할 때가 많아요. 잠옷, 이불 등을 자주 빨아야 해요. 그래도 여름이 끝날 때까지 버텨보려고요.” 이날 오전 11시30분 배씨의 방 온도는 31.2도, 습도는 83%였다. 같은 시간 서울 노원구의 기상청 자동기상관측장비(AWS)의 관측 기온은 27.2도였다.

직장인 김로윤(31)씨도 이달부터 에어컨 챌린지를 시작했다. 지난 5일 밤 경기 고양시 거주지에서 만난 그는 창문을 모두 활짝 열어두고, 스테인리스 텀블러에 담긴 얼음물을 홀짝거리고 있었다. 이날 밤 9시 김씨의 집 실내 온도는 32.5도, 습도는 76%였다. 같은 시간 경기 고양시의 기상청 자동기상관측장비(AWS)의 관측 기온은 26.7도였다.

그는 “격일로 재택근무를 하는데, 한낮 무더위에 노트북에서 나오는 열기가 합쳐지면 특히 힘들다”고 했다. 김씨와 함께 사는 부모님도 김씨가 집에 있을 때는 에어컨을 켜지 않는다. 가족들은 더위를 조금이라도 덜 느끼려고 전등을 최소한으로 켜고, 그나마 시원한 거실에서 함께 자고 있다. “예전엔 전기세 때문에 어머니가 ‘에어컨 켜지 말자’, ‘가만히 있으면 시원하다’고 말하곤 하셨는데, 이젠 환경 때문에 제가 그렇게 말하고 있어요.”

그는 “더위에 괴로우면서도 동시에 ‘원래는 이게 당연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예전엔 에어컨 없이 사는 게 당연했는데, 에어컨에 적응되다 보니 에어컨을 안 틀면 여름을 못 견디는 것처럼 변한 것 같아요.”

거주지에서 에어컨을 사용하지 않고 지내는 모습을 사회관계망서비스 등에 올리는 행사를 진행 중인 청년단체 ‘청년너울’의 김로윤 서울본부장이 지난 5일 밤 경기 고양시 집에서 온도계를 들어 보이고 있다. 김윤주 기자 kyj@hani.co.kr

기후위기 시대지만 에어컨의 영토는 확장되고 있다. 20세기 초중반 불모지였던 미국 서남부의 사막과 열대 지역이 에어컨이 딸린 주택단지를 통해 개발됐음이 여러 연구를 통해 조명됐다. 최근에는 인도네시아 등 열대 도시를 중심으로 에어컨이 ‘빵빵’ 나오는 대형 쇼핑몰이 생기고, 길거리는 인적이 뜸해지는 방향으로 도시 구조와 동선이 재편되는 경향도 포착된다. 에어컨 보급률은 기록적인 폭염을 겪은 뒤 특히 증가한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에서는 여름에도 기온이 상대적으로 높지 않아 가정 에어컨 보급률이 3~5%에 불과하다. 그러나 최근 유럽에서 40도를 웃도는 폭염이 발생하자 에어컨 판매량이 급증했다고 있다고 외신들이 보도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유럽연합 내 에어컨 수량이 2019년 1억1000만대에서 2050년 2억7500만대로 두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추정한다.

그래픽_한겨레 스프레드팀

하지만 에어컨 사용량을 늘리는 데는 위험이 따른다. 에어컨을 사용할수록 지구온난화는 심해지고, 온난화로 더워진 날씨에 에어컨을 더 찾는 악순환에 빠지기 때문이다. 에어컨은 실내의 공기를 차게 만든 뒤, 그 열기(폐열)를 실내 밖으로 내보내는 ‘약탈적 기계’다. 이런 원리 때문에 도시의 대기 온도는 ‘열섬 효과’로 외곽 지역보다 높아진다. 프랑스 파리에서 기상모델을 기반으로 시뮬레이션한 결과, 에어컨이 대기 온도를 0.5~1도 높이는 사실이 2013년 <국제기후저널>에 소개되기도 했다.

에어컨에 쓰이는 2세대 냉매(수소염화불화탄소‧HCFCs)와 3세대 냉매(수소불화탄소‧HFCs) 또한 온실효과를 낸다. 지난해 11월 기후변화센터가 낸 보고서를 보면, 국내에서 사용되는 2·3세대 냉매량은 연간 약 3만5000톤이다. 이를 이산화탄소로 환산하면 약 6300만톤CO₂eq로, 2018년 기준 한해 국내 온실가스 총배출량(7억2760만톤CO₂eq)의 9%에 달한다.

3년째 집에서 에어컨을 거의 켜지 않는다는 프리랜서 이승훈(31)씨는 “에어컨을 사용할 때 에어컨이 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좀 더 생각하자”고 강조했다. “에어컨을 켜면 실내는 시원해지지만 당장 밖에서 실외기 옆을 지나가는 사람은 더 더워지잖아요. 바로 내 옆에서 기후변화가 일어나는 거죠.” 혼자 사는 그는 1년에 3∼4차례 정도 다른 사람이 집에 올 때만 에어컨을 켜고, 평소에는 선풍기로 버틴다.

에어컨 챌린지 참여자들은 때론 자신들이 외롭다고 느낀다. 이씨는 “여름철 문을 활짝 열어놓고 에어컨을 켜놓은 상점 앞을 지나갈 때면 마음이 불편하다”고 말했다. 직장인 박세진(19)씨는 “집에서 에어컨을 열심히 끄다가도 대형마트 등에서 추울 정도로 에어컨을 트는 걸 볼 때면 나 하나 줄인다고 달라질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모두가 조금이라도 에어컨 사용을 줄이자”고 제안한다. 김로윤씨는 “‘어스아워’(3월 마지막 주 토요일에 1시간 소등하는 캠페인)같은 캠페인을 벌여서 함께 짧은 시간이라도 에어컨을 끄면 좋겠다”고 말했다. 배준용씨는 “모두에게 에어컨을 아예 끄자고 할 수는 없지만 다 같이 조금씩 줄일 수는 있지않나. 많은 사람들이 함께 노력하면 좋겠다”고 했다.

김윤주 기자 kyj@hani.co.kr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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