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이고 상품이면서 생존, 고기는 복잡하다
한 농민에게서 연락이 왔다. 깊은 산골, 듣기 좋은 말로 청정지역이라 하지만 외진 동네의 과수원 자리를 밀어버리고 있길래 ‘뭔 다른 농사를 지으려나’ 했더니 ‘계사(축사)가 들어온다는데 어찌하면 좋겠냐’며. 과실수 농사는 워낙 고돼 고령의 농민이 임대하거나 폐원하지만, 경종농업(씨를 뿌려 작물을 키우는 농업)을 하던 농민이 갑자기 축산업으로 전환하는 것은 어렵다. 축산업은 시설 투자를 비롯한 초기 자본이 많이 드는데다 숙련된 사육 기술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마 이번에 조성된 계사 자리에는 외지인이 들어오거나 업체에서 들어올 것 같은데 어떻게든 막아보고 싶다고 그는 말했다. 축산농가도 농가이고 농민인데, 농촌사회학 연구자인 나는 왜 축사 건립을 막는 일에 힘을 보태려는 걸까?
일단 축산업은 ‘민원의 온상’이라 할 정도로 농촌 주민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산업이 됐다. 가장 큰 문제는 악취다. 예전에도 분명 동네마다 축사가 있었고 심지어 부엌 안에 외양간이 있어 가축을 ‘생구’라 하며 식구로 여겼던 때가 있었으나 그런 낭만적인 이야기는 이미 1980년대에 끝났다.
서울 복판에 없는 세 가지
1980년대 이전 축산업은 농가의 부산물로 가축 몇 마리를 기르며 살림에 보태는 부업이었지만, 이후 소득 증가로 고기 수요가 늘어나 뚜렷한 전업화, 대형화 흐름을 탔다. 축산업 종사자는 줄어도 사육 마릿수는 오히려 늘어났다. 따라서 축산업은 경종농업과는 차원이 다른 독립적인 산업의 면모를 갖춰왔다. 더 많은 투자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산업으로 말이다. 여기에 사료산업을 필두로 한 기업의 축산업 직접 진출도 활발하게 진행됐고 여전히 진행 중이다.
농촌 주민에게 축산농가는 농촌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웃이 아니라, 외지에서 차만 타고 왔다 갔다 하며 이주노동자만 부리고 마을에 피해만 주는 산업이라 여겨지기 시작한 것이다. 악취에다 폐수 문제까지 겹쳐 축산업에 대한 농촌 주민의 불만은 오늘도 계속 쌓이고 있다. 특히 한 번씩 터지는 동물 전염병 문제로 지척에서 동물이 죽어나가는 상황을 직간접으로 겪는 것만으로도 괴로운 일이다. 이에 각 지방자치단체는 민원에 시달리면서까지 축사를 허가하지 않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서울 복판에는 세 가지가 없다. 송전탑을 비롯한 발전시설, 쓰레기처리장, 그리고 도축장이다. 고기 하면 떠오르는 서울 ‘마장동’은 1959년 우리나라에서 처음 개장한 합법적인 도축장이 자리하던 곳이다. 고기의 공급과 수요 모두 미미한 시대에는 주로 밀도살이 이뤄졌는데, 시설 내에서 대량 도축할 수 있는 도축장이 1960년대 이후 서울에 자리잡기 시작했다. 고기 수요는 인구가 많은 수도권에 집중됐기에 잡는 시설도 가까운 것이 유리했다. 당시 냉장시설이 열악하고 운송 여건이 좋지 않아서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유명한 서울 왕십리나 응암동 같은 고기 골목들의 연원이 예전 도축장 인근이다. 하지만 1989년 마장동 도축장은 개설 30년 만에 문을 닫고 현재는 유통과 판매 기능만 남아 있다. 아파트를 지어 부동산 가치를 남겨야 하는 서울에서 도축시설을 남겨둘 리 없다. 그래서 기르고 죽이는 일 모두 농촌에 떠넘기고 오로지 먹는 입만 대도시에 남겨둘 뿐이다.
최근 전북 고창군에서 육계기업인 동우팜투테이블이 하루에 80만 마리 이상의 닭과 오리를 도축할 수 있는 도축장 건설을 추진하다 결국 사업을 접는 일이 있었다. 도축장 건립을 두고 주민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폐수 배출을 비롯해 악취 문제다. 아무리 냄새 저감장치를 설치해도 공기가 무거우면 냄새가 넓게 퍼진다. 구순의 할머니들이 삭발까지 하며 3년 동안 싸워 고창군민들은 도축장을 막아냈지만 작은 지역사회는 큰 상처를 입었다.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이인데 얼굴 붉힐 일이 만들어졌다는 것 자체가 괴로운 일이다. 얼마 전에는 청정지역인 전북 장수군에 있는 도축장에서 도축 폐수 120t을 무단 방류한 사건이 있었고, 경기도 안성 양성면 주민들은 도축장 건립 문제로 아직 싸우고 있다. 이렇게 가축을 기르는 일뿐만 아니라 죽이는 일까지 그 고통은 모두 농촌에서 일어나고 있다.
명실상부한 기업 행위로 흘러가는 축산업
‘공장식 축산’이란 말은 곱씹어보면 농장이 아닌 공장 같은 시스템을 도입해 동물을 생명이 아닌 제조업의 상품처럼 대량으로 찍어낸다는 의미다. 이는 반대로 말하면 축산 현대화 단계에서 고도의 표준화 과정을 달성해 축산물 품질을 균질하게 만들어 소비 효능을 높이는 일이다. 아기의 분유처럼 성장 단계에 맞춰 사료를 배합해 먹이고 방역사와 수의사가 주기적인 예찰과 질병 관리를 한다. 여기에 도축업 종사자와 고기를 파는 자영업자까지 고기 한 덩어리가 오는 과정은 복잡다단하며 그 과정마다 생계를 거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생명이지만 상품이기도 한 고기는 복잡하다. 생명을 상품으로 만드는 일에 종사하는 이들이 축산 문제를 ‘생존권’ 문제로 받아들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 농업에서 축산업이 차지하는 위상도 역사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산지가 많고 농토가 좁은 한국은 전후 자본이 부족한 상황에서 환금성이 높은 상업작물을 재배하기가 어려웠다. 작물을 길러 가족을 부양하고 나면 남는 것이 없는 구조였고 오히려 모자라 외국에서 원조받는 처지였다. 이런 조건에서 전망 있는 산업이 바로 축산업이었다. 한정된 공간에서 무언가를 길러 더 많은 소득을 올릴 수 있는 것이 가축이기 때문이다.
현재 고령에 접어든 축산업 1세대는 한때 책을 보고 국가가 주도하는 훈련을 받아 축산업으로 일가를 이룬 이들이다. 이들을 보통 ‘선진농민’으로 불렀고 ‘지역 유지’로도 대접했다. 가축은 중요한 담보물이 되어 금융대출을 받기도 좋았다. 하지만 축산업을 둘러싼 사회문화적 환경이 급변했고 이 산업 자체의 전망이 어두워 2세대 승계가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다. 이미 2019년 기준으로 축주의 62%는 만 65살을 넘어섰다. 전형적인 고령화 상태에서 그나마 이주노동자를 고용해 유지하던 산업이 축산업이다. 축주가 더 늙고 숨지면 한국의 축산업은 자연스럽게 구조조정 상황으로 넘어갈 것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축사 신규 허가가 거의 나지 않는 상황에서 축산기업들이 기존 축사를 포획하고 인력(주로 이주노동자)을 고용해 축산업의 기업화 방향을 만들어갈 것이다. 이미 몇 년 전에 축사 건립 승인을 받은 토지를 축ㅈ산업자(기업형 축산업 종사자를 농민들은 이렇게 부른다)가 매입한다는 것이 농촌 주민의 증언이다. 만약 이런 방향으로 한국의 축산업이 흘러간다면 축산업은 더는 농업 행위가 아닌 명실상부한 기업 행위가 된다. 이는 완벽한 형태의 ‘공장식 축산’ 시대가 열리는 일이다.
기업은 건드리지 못하고 만만한 농업만
한때 까다로운 취향으로 여겨졌던 채식에 대한 수용성이 높아지고 있다. 동물복지와 환경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 사회운동 차원과 식문화로 받아들여진다. 채식 전문 음식점을 비롯해 대체식품 시장도 나날이 성장 중이다. 실제 음식 매체에서 지난 몇 년간 새로운 소비 트렌드의 핵심으로 ‘비건’(채식)을 꼽았다. 마켓 혹은 시장이 형성된 것이다.
채식에 대한 관심은 공공영역으로도 옮겨져 학교급식과 군대급식에도 일부 채식급식이 제공되고 있다. 최근 몇몇 교육청을 중심으로 ‘그린급식’이나 ‘초록급식’ 등을 내걸고 채식하는 학생에게 채식급식을 제공하고 비록 채식하지 않더라도 학교급식을 통해 채식을 경험할 수 있는 쪽으로 방향이 맞춰지고 있다.
이에 축산단체의 반발이 매우 거세다. 비건 단계의 완전 채식도 아니고 일주일에 1회 혹은 한 달에 2회 정도 제공될 뿐인데 너무 과민하지 않냐는 의견도 있다. 축산업계는 무엇보다 기후위기의 주요 요인으로 축산업을 적시한 교육청 공문에 반발하고 나섰다. 축산업이 ‘기후위기 주범’이란 주장으로 축산업계에 대한 혐오를 부추긴다는 주장이다. 각 교육청이 이번 채식급식의 근거로 삼은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축산업의 긴 그림자’ 보고서는, 2006년 작성된 오래된 자료인데다 축산업이 운송부문보다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한다는 논지에 정면으로 비판한 것이다. 이 보고서에서 축산업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사료작물 재배부터 사료 제조, 운송, 가축 사육과 도축, 가공, 판매, 폐기에 이르는 공급망 전체를 포함한 반면 운송부문은 주행 중 발생하는 온실가스양만을 합산했다. 축산업계는 비교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한다. 기업을 건드릴 용기는 없고 만만한 농업, 그중에서도 축산업을 건드린다는 주장이다.
이는 수리에 기반한 전문 영역이므로 사회학 연구자인 내가 논평할 문제는 아니다. 다만 ‘기후위기의 주범 축산업’ 프레임에 대한 반발은 앞으로 더 거세질 것이며 양쪽 논의가 공회전할 공산이 크다는 점은 분명하다. 채식급식은 어린이와 청소년이 기피하는 나물과 채소 음식에 대한 경험을 넓히고 농업의 지속가능성 문제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다뤄질 필요가 있다. 여기에 더해 채소를 기반으로 하는 한국의 전통 식문화에 식생활교육 차원에서라도 권장돼야 하지만 한 산업을 안티테제로 삼는 것이 현명한지는 숙고해봐야 한다. 결국 육식과 채식의 문제를 옳고 그름의 문제로 가두면 기르고 잡고 먹는 이들은 ‘그른 사람’이 돼버리기 때문이다.
한 산업을 적으로 만드는 ‘지속가능성’의 고민
적어도 현재의 푸드시스템이 위기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기후위기 주범이 축산업이 아닐 수는 있어도 기후위기에 가장 민감한 산업인 것만은 분명하다. 극단적으로 덥고 추워지면서 가축이 받는 스트레스는 더욱 많아진다. 사료작물 재배도 기후위기 영향을 받는데, 한국 축산업은 낮은 곡물 자급률로 글로벌 공급망 상황에 따라 격하게 출렁댈 것이다. 축산 현장은 러시아 침공으로 벌어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50% 이상 치솟은 사룟값에 헉헉대고 있다. 향후 가속화할 기후 문제로 국가마다 곡물 확보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다. 이에 한국 정부의 선택지는 많지 않다. 비싼 값에 사료곡물을 들여오거나 고기 자체를 들여오거나다. 최근 정부가 물가안정 대책으로 사룟값 지원이 아닌 수입 축산물의 관세 면제 카드를 꺼낸 것을 보면 정부는 축산업계 요구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국가 차원에서 대안으로 제시하는 ‘경축순환 모델’(퇴비화한 가축분뇨를 농경지에 환원해 농업·축산·환경을 조화하는 방식)도 당장 실현하기는 어렵다. 전술했듯 축산업과 경종농업의 협력 모델은 1980년대 전후로 이미 깨졌다. 축분(가축의 똥과 오줌)보다는 비료 쓰는 일이 더 익숙한데다, 논과 밭을 축산업의 배후지로 만들려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드러내기도 한다. 아무리 좋은 대안이더라도 관행대로 이어온 산업 구도를 당장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가축의 부산물인 똥과 오줌을 땅으로 보내려면 가축이 건강하게 길러져야 하고 귀하게 아껴 먹어야 한다. 하지만 이 선순환의 고리를 과연 누가 엮을 수 있을지, 이렇게 늙어버린 농민들이 해낼 만한 일인지 예측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토록 고기는 매번 복잡하다.
정은정 농촌사회학자·<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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