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상권 침해?..대형마트 '반값치킨' 이번엔 당당했다

유선희 2022. 8. 11.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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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솟는 물가]홈플러스 6900원 치킨 인기에 이마트·롯데마트 가세
프랜차이즈 업주들 "대형마트와 단순 비교는 불공평"
"본사의 원부자재 비싸고 배달앱 수수료까지 덤터기"
골목상권 침해 논란..소비자 "선택의 문제로 봐야"
업주들 "마트 치킨 전쟁 보며 본사가 폭리 반성해야"
국내 주요 마트 3사가 ‘초저가 치킨 경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 6월 홈플러스가 한 마리에 6990원, 두 마리에 9900원짜리 ‘당당치킨’을 판매하기 시작한 데 이어 이마트와 롯데마트까지 치킨 할인에 나섰다. 사진은 서울의 한 대형마트 치킨 판매대. 연합뉴스
“단돈 100원이 남아도 손해는 아니니까, 대형마트의 ‘그래도 남는다’는 말은 사실이죠. 다만, 프랜차이즈 치킨집은 한 마리당 몇백원 남겨서는 유지가 안 되니까요. 자꾸 대형마트 치킨과 단순 비교를 하니 죽을 맛입니다. 그런데, 비싸다는 원성을 들을 주체는 업주가 아니라 가맹본사 아닌가요?”

10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프랜차이즈 치킨 매장에서 만난 업주 ㄱ(52)씨는 애꿎은 치킨 상자만 접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ㄱ씨는 최근 ‘오픈런’까지 불러왔다는 대형마트의 ‘치킨 전쟁’을 보며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고 했다. “프랜차이즈 본사 영업이익률이 최대 30%대라고 하잖아요? 밀가루, 식용유, 닭고기, 포장 상자, 하다못해 호일 한장까지 본사 제품을 써야 하는 업주들 입장에서는 손님들이 ‘왜 이렇게 비싸냐’고 하면 난감하죠.”

홈플러스의 ‘당당치킨’을 시작으로 대형마트 3사가 1만원 이하 치킨 상품을 잇달아 내놓으면서 프랜차이즈 치킨 업주들의 시름이 깊어가고 있다. 지난 6월 홈플러스가 물가안정 대책의 하나로 한 마리에 6900원에 내놓은 당당치킨이 6월30일부터 8월7일까지 누적판매량 30만 마리를 기록하고, 이에 힘입어 두 마리에 9900원인 ‘두 마리 후라이드 치킨’을 선보이며 소비자들의 호평을 받자, 이마트와 롯데마트까지 저렴한 치킨 경쟁에 합류했다.

이마트는 지난달부터 “에어프라이어 190도로 5분만 돌리면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의미를 담은 9980원짜리 ‘5분 치킨’을 판매하고 있고, 롯데마트도 11~17일 행사 카드로 결제하는 소비자를 대상으로 ‘뉴 한통 가아아득 치킨’(한통치킨)을 기존 1만5800원에서 8800원으로 44% 할인 판매한다.

이들 대형마트가 치킨을 이렇게 할인된 가격에 선보일 수 있는 이유는 ‘박리다매’ 전략을 구사하기 때문이다. 홈플러스 쪽은 “대량 구매를 통해 닭의 매입가격을 낮추고, 매장에서 직접 조리해 마진을 최소화한 상태로 소비자에게 판매하기 때문에 가능한 가격”이라고 설명한다.

홈플러스 당당치킨 등 대형마트의 치킨은 일반 프랜차이즈 치킨 매장에서 사용하는 10호 닭(1kg 내외)이 아닌 8호~9호 닭(800~900g 내외)을 사용한다. 프랜차이즈 치킨업계 한 관계자는 “10호는 가장 육질이 맛있는 닭으로, 한 마리 메뉴에 쓰이는 보통 닭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즉, 마트 치킨의 원재료인 8~9호 닭은 10호보다는 크기가 더 작고, 상품성과 선호도가 조금 떨어지는 닭이라는 설명이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옛날 통닭’ 집에서도 10호보다 저렴한 8~9호 닭을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프랜차이즈 치킨 업주들 입장에서는 대형마트와 동일 선상의 가격 비교가 절대 불가능한 이유로 본사에서 납품받는 원재료 가격이 치솟았다는 점을 든다. 한 업주는 “한 통에 식용유가 6만8천원 정도인데, 튀김기 1구 기준으로 1.8통 정도가 들어가고 (현실적으론 불가능하지만) 최대 100마리를 튀긴다고 해도 산술적으로 기름값만 마리당 1156원”이라며 “닭 한 마리에 5천원, 여기에 치킨 무, 포장 용기, 콜라 등등을 합치면 최소 1500~2000원이라 도저히 대형마트와 경쟁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인건비, 카드수수료, 부가세, 월세에다가 최근에는 배달 앱 수수료까지 3천~4천원씩 물어야 하는데 이 모든 비용 차이를 무시하고 비싸다는 원성만 하면 억울하다”고 호소했다.

치킨 가격 논란에 대한 화살은 과도한 마진을 남기는 가맹 본사를 향해야 한다는 지적이 쏟아진다. 앞서 소비자단체협의회가 국내 치킨 프랜차이즈 업계 매출액 상위 5개 브랜드(교촌, 비에이치시, 비비큐, 처갓집, 굽네)의 가맹본부 매출액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최근 5개년 매출액의 경우 굽네치킨(8.8%)을 제외한 나머지 4개 업체 가맹본부 모두 연평균 10% 이상씩 증가했다. 영업이익 역시 5개 업체 모두 5년 동안 연평균 12% 이상씩 증가했으며, 비비큐의 경우 같은 기간 영업이익이 연평균 33.8%나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즉, 프랜차이즈 치킨 가격 2만원 시대를 연 것은 가맹본부의 ‘폭리’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전국가맹점주협의회 박승미 정책위원장은 “가맹점주들이 폭리를 취하는 게 아니라 본사에서 판매하는 원부자잿값이 높게 책정된 것이 치킨 가격 상승의 원인”이라며 “치킨을 다른 상품 판매를 위한 미끼상품처럼 이용하는 대기업 산하 대형마트와 비교해 가맹점주들을 비판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말했다.

한 업주는 대형마트의 치킨 전쟁이 가맹 본사의 폭리를 저지할 기회가 되기를 바라기도 했다. 경기도 고양시에서 치킨집을 운영하는 ㄴ씨는 <한겨레>에 “대형마트가 협상력을 발휘해 싼 가격에 닭을 대량 공수해온다는데, 프랜차이즈 본사의 협상력이 대형마트에 견줘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프랜차이즈 치킨이 비싼 이유는 업주들 문제가 아니라 가맹 본사의 무리한 이윤 추구에 있음이 더 확실해지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여론 역시 지난 2010년 롯데마트 ‘통큰치킨’으로 벌어졌던 ‘골목상권 침해 논란’ 때와는 반응이 다르다. 당시 9호 닭으로 5천원짜리 ‘통큰치킨’을 선보였던 롯데마트는 골목상권 침해 비판 여론에 밀려 열흘 만에 판매를 중단한 바 있다. 하지만 걷잡을 수 없이 고공행진 중인 ‘외식물가’로 서민들의 주머니가 얇아진 요즘은 소비자들도 대형마트 초저가 치킨에 환호하고 있다. 이번 논란을 ‘취향에 따른 선택’의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다. 자신을 ‘치킨 마니아’라고 밝힌 김정윤(32)씨는 “고물가 상황에서 저렴한 치킨을 원하는 소비자는 대형마트 치킨을 선호할 것이고, 나처럼 다양한 맛을 원하는 소비자는 비싼 가격을 지불하더라도 프랜차이즈 치킨을 사 먹는 것 아니겠냐”며 “마트에서 파는 초밥과 횟집에서 파는 고급 초밥 가격이 다르고, 소비자들이 각자 취향에 맞게 선택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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