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르는 척 하지는 말자

한겨레21 2022. 8. 11.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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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 비긴'(Vegan Begin) 통권호(제1424·1425호)에 글을 싣고 싶다고 보내주신 독자들의 사연 가운데 일부를 싣습니다.

비건은 동물의 문제인 줄 알았지만 결국 서로 잘 사는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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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 비긴]

1424호 표지이미지
‘비건 비긴’(Vegan Begin) 통권호(제1424·1425호)에 글을 싣고 싶다고 보내주신 독자들의 사연 가운데 일부를 싣습니다. _편집자

누구보다 어떤 브랜드의 치킨을 좋아했고, 공식처럼 좋은 곳에 여행 가서 육식을 즐겼다. 다른 방법으로도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지금은 더 다양한 방법으로 나의 행복을 찾아가고 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방송인 타일러 라시가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을 말했고, 지구를 위해 실천할 수 있는 일을 설명했다. 평소 생각조차 해보지 않은 내용이었다. 그날부터 나는 전자우편함에 1천 개 넘게 쌓인 전자우편을 지웠다. 그것이 시작이었던 것 같다.

평소엔 생각지 못하고 지나쳤던 행동이 환경을 해쳤다는 것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점점 환경은 한 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인권, 경제, 동물 등과 연관 있음을 알게 됐다. 그렇게 하루에 한 끼 채식부터, 가장 먼저 육류 소비를 끊었고 유제품과 달걀, 해산물은 줄였다.

채식을 검색하면 나오는 피라미드 모양의 다양한 채식 단계. 아무것도 모르고 처음에는 현실과 내가 타협해서 나 자신을 페스카테리언(페스코)이라고 칭했다. 그런데 내가 만났던 사람들의 ‘페스코’와 내가 생각한 ‘페스코’의 개념은 차이가 있었다. 채식을 단계별로 나누는 건 생명의 귀중함을 비교하는 인간의 기준으로 타협점을 찾고 죄책감을 더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페스코라고 해서 ‘가축의 생명은 중요한데 물살이의 생명은 소중하지 않다’고 여기는 것은 아니다.

동물권의 시선으로 바라보니 달걀과 유제품, 해산물은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먹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고, 내가 먹을 음식이라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최근 해양쓰레기 문제점을 직면하다보니 해조류 섭취도 꺼린다.

비건을 하다보면 질리도록 듣는 이야기, 영양과 단백질. 비건 이전에는 지금보다 몸을 망치는 식습관을 가지고 있었는데도 주변에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았지만, 비건이 되고 나서는 모두 내가 어떤 걸 어떻게 먹는지 지켜보는 감시자가 된 듯하다. 채식하면 부족할 것 같고, 육식은 건강할 것 같은 이미지. 모두 만들어진 이미지라고 생각한다.

공장식 축산으로 생산된 고기와 날갯짓 한 번 할 수 없는 케이지에서 자란 닭, 분뇨와 사체가 쌓인 더럽고 좁은 스톨 안에서 키우느라 생기는 병을 막기 위해 항생제를 과도하게 투약하고, 방역하며, 빠르게 키워서 많이 팔아야 하니 성장촉진제와 유전자조작 사료를 먹인 동물들, 넘쳐나는 해양쓰레기와 미세플라스틱이 가득한 바다에서 자란 어패류, 물고기, 혹은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병에 걸리지도 않은 동물을 산 채로 묻은 땅과 그곳에서 자라나는 식물은 과연 영양을 위해서 먹는 것이라 할 수 있을까.

하지 마! 먹지 마! 뜯어말린다고 말려질 것인가? 그렇지 않다. 외면하고 피하지 말고 사실을 본 뒤 선택했으면 좋겠다. 아무것도 모른 채, 모르는 척하고 선택하는 게 속상할 뿐이다. 나를 위해서도 우리를 위해서도.

조금만 둘러보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동물이 착취되고 죽어간다. 그 과정에서 사람의 인권 또한 무너진다. 비건은 동물의 문제인 줄 알았지만 결국 서로 잘 사는 방법이었다. 아무리 이렇게 저렇게 글을 써봐도 이미 마음에 부정적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한 문장 한 문장에 의문을 가질 것이다. 부정적 시선으로 ‘왜 저래?’가 아니라 관점을 다르게 해서 ‘왜 저렇게까지 할까?’를 생각해보면 좋겠다.

박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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