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cal Mania | 윤보선길..전통과 조화로운 현대 감성
서울 시민들이 사랑하는 동네는 어디일까. 각각의 이유로 여러 동네들이 떠오르겠지만 그중 북촌은 세대와 남녀를 불문하고 불호가 없다. 북촌은 넓게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의 동네. 이곳에는 조선 500년 역사의 전통과 현대의 감성 그리고 그 둘을 이어주는 공감이 상존한다.

북촌의 초입 윤보선길. 말 그대로 윤보선 전 대통령이 살던 집이 있어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 안국역1번 출구 20m쯤이 이 길의 시작이다. 길의 양 옆에는 2, 3층 규모의 빌라들이 연이어 서 있고 1층은 거의 다 상점이다. 제일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 집은 하얀 건물에 붉은색 장식의 수제마카롱집 라포레이다. 집의 외형에서 붉은 장식 부분은 한옥의 지붕을 연상시킨다. 초입부터 북촌다운 센스가 엿보인다.
길을 따라 카페, 갤러리, 소품숍 등이 1, 2층에 자리하고 있는 것은 북촌의 여느 길과 큰 차별이 없다. 조금 심심할 순간 색색의 등이 눈에 들어온다. 베트남 식당 나항이다. 이 집이 튀는 것은 그 외모 때문이다. 나항은 입구부터 붉고 노란색 등이 화려하게 자태를 뽐낸다. 밤이 되면 홍등의 운치를 제대로 맛볼 수 있다.
지유가오카핫초메라는 상호역시 궁금증을 유발한다. 이 지유가오카는 일본 도쿄 메구로구에 있는 지명이다. ‘자유의 언덕’이 뜻인 지유가오카는 도쿄에서도 기치조지와 함께 명품숍, 카페거리가 있어 도쿄인들이 가장 살고 싶어 하는 동네이다. 도쿄의 가게에서 이름을 따왔다. 많은 사람들이 SNS인증샷을 찍는 드라마 출연 장소라는 만화방이 모퉁이에 있다. 이름은 만화방이지만 커피나 음료, 악세서리를 구매할 수 있는 곳이다. 말 그대로 세상의 물건을 다 살 수 있는 작지만 강한 가게이다.
이윽고 윤보선 저택이 나온다. 윤보선은 대한민국 제2공화국 대통령. 4.19로 이승만 정부가 무너지고 헌정 사상 처음 의원내각제 하에서 대통령을 맡았지만 5.16으로 물러나고 그 뒤 민주화 운동에서 큰 역할을 다했다. 이 집은 1870년 대에 지었다. 당시 민간에서 가장 큰 99칸으로 조선 세도가의 위용을 자랑한다. 이 집을 고종이 사 일본 망명생활을 하고 돌아온 개화파 박영효에게 하사했다. 박영효는 철종과 후궁 숙의 범씨 소생의 영혜옹주 남편으로 철종의 부마. 그 뒤 이 집을 윤보선의 아버지 윤치소가 매입해 지금에 이르렀다. 대지가 약 1400여 평의 넓은 집으로 인근 사람들은 이 집을 ‘안동궁’이라 불렀다. 개방은 하지 않는데 지난 4월22일 이 집에서 클래식 연주회가 열렸다.
그 맞은편에 안동교회가 있다. 1908년 박승봉, 유성준 등이 나라의 운명을 생각해 기호학교 즉 지금의 중앙중고등학교를 설립하고 이듬해 김창제의 집을 기도처로 해 안동교회를 시작했다. 당시 선교사의 도움 없이 양반들이 설립한 교회이다. 특히 박승봉은 ‘부산에서 신의주까지, 서울에서 회령까지 철로가 난다 하니 정거장이 서는 읍촌마다 교회와 학교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 개혁자였다. 넝쿨이 가득한 교회 벽에서 시선을 내리면 작은 한옥이 교회와 붙어 있다. 이 한옥은 소허당으로 ‘허심한 마음으로 웃는 집’이란 뜻이다. 안동교회 한옥으로 갤러리, 전시, 차담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30분이면 다 돌아볼 수 있는 윤보선길. 이 길은 북촌의 여러 길의 시작점이다. 일견 무질서해 보이지만 이 길의 작은 가게들은 나름 북촌의 일원이라는 자부심이 가득하다. 개화기와 현대사를 관통하는 윤보선 가(家), 당시 기독교의 시대 정신을 중심으로 약 100여 년 동안 동네와 가게의 정체성을 연결 지으려는 그들의 노력이 엿보인다.
[글과 사진 장진혁(프리랜서)]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841호 (22.08.09)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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