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과 산책과 강과 노을 | 역사의 숲, 자연의 힘, 행주산성 생태계

2022. 8. 11.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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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고양에 위치한 행주산성은 권율 장군, 행주치마, 돌맹이 등등 전쟁의 유적지로 보전되고 있는 문화 역사 공간이다. 가벼운 산책하기에 더 없이 좋은 위치에 있지만 가 보지 않고서는 그 진가를 알 수 없는, 그러나 한 번 가 보면 쉽게 잊혀지지 않는 깊고 곱고 전망 좋은 데이트 코스이다.

▶포위된 역사 현장, 행주산성

행주산성은 한강 하류 최고의 공원 중 한 곳이다. 주차장이 널찍하고 숲길 조성이 깔끔하게 되어 있으며 역사적 스토리에 비해 유물이나 건축물들은 소박하게 조성되어 있어서 편안하게 걸을 수 있다. 게다가 토성이 남아 있는 지역에 나 있는 산책길은 약간의 운동이 될 정도로 적당한 길이와 언덕으로 조성되어 있어서 천천히 산책하기에 더 없이 좋은 곳이다. 긴말할 것도 없다. 숲이 예쁘고 걷기 좋으니 이보다 더 좋은 공원이 또 있을까. 게다가 행주산성 꼭대기에 오르면 한강 동쪽과 서쪽이 한눈에 들어온다. 특히 동쪽으로는 방화대교, 마곡대교, 가양대교, 월드컵대교 등은 물론 여의도 빌딩숲까지 조망할 수 있다. 한강변을 달리는 자전거들과 습지들의 풍경도 낯설지만 아름다운 모습이다.

행주산성 접근법은 쉽고 간단하다. 진입로로 들어가는 길이 초행의 경우 다소 헷갈릴 수 있지만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대로 행주산성공용주차장에 도착하면 끝이다. 버스는 921, 870, 1082, 9707번 등이 있는데, 행주산성입구 정류장에서 내려 걸어 올라가면 된다. 주차장을 가로 질러 가면 행주산성의 출입문인 대첩문이 있다. 지붕 안쪽에 홍살문을 설치한 것이 의미 있어 보인다. 대첩문은 세 개의 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축제 등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가장 오른쪽 문만 사용하고 있다.

대첩문을 들어서면 저절로 권율 장군 동상 방향으로 걷게 된다. 1986년 조각가 김세중이 고증과 연구 끝에 권율 장군의 모습을 재현했다. 장군의 모습도 모습이지만, 배경으로 조성된 4편의 부조물도 눈여겨볼 만하다.

삼국시대 때 조성된 이 토성의 이름이 행주산성이 된 것은 임진왜란 때 이곳에서 큰 전쟁이 벌어지면서 마을의 여성들이 행주치마에 돌을 날아와 무기로 사용하도록 하는 등 실질적 참전을 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여성뿐이랴. 전쟁을 이끈 조선 관군, 전쟁이 나면 당연하게 등장하는 의병, 숭유 억불 정책 속에서 천덕꾸러기 처지가 되어놓고도 나라를 살리겠다며 언제나 무기를 들고 모여든 승병 등 4대 항전 주역들의 전투 모습은 보는 이들이 주먹을 불끈 쥐게 하는 생생한 전투 현장의 모습이다.

널찍한 숲길을 따라 올라가노라면 오른쪽으로 충장사 입구가, 가운데로 대첩비와 덕양산 정상으로 오르는 직선 숲길이, 그리고 왼쪽으로는 토성 구간을 통해 정상으로 향하는 흙길이 나온다. 충장사 홍살문을 지나면 권율 장군의 영정을 모신 충장사가 나온다. 아담한 규모에 정원도 예쁘다. 원래 1842년 조손 헌종 때 지금의 행주서원 자리에 기공사라는 이름의 사당이 있었으나 훗날 폐허가 되었고 지금의 충장사는 1970년에 새로 지었으며, 무너졌던 기공사 또한 원래 자리에 복원해 두었다.

충장사를 나와 메인숲길 토성길을 걸었다. 평일이라 더욱 그렇겠지만, 흙길에 산성다운 거칢이 살아있는 산책로였다. 행주산성은 삼국시대 때 조성된 토성이다.

한강과 고양시 평야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해발 125m의 덕양산 꼭대기에 흙으로 성을 쌓았고, 주로 한강과 주변 하천, 들판 경계를 위한 이용되었다고 전해진다. 삼국시대에 조성되었을 것이라고 하는 것은 정상부를 에워싸고 있는 작은 내성과 북쪽으로 뻗은 골짜기를 에워싼 외성의 이중구조라는 점, 절벽을 이용했다는 점, 동쪽, 북쪽, 서쪽으로 평야를 감싸고 있는 형태를 근거로 한다. 삼국시대 초기 산성의 형식이 대부분 그랬던 것이다.

삼국시대, 고려 때의 행주산성이 어떤 이름으로 불렸는지 모른다. 단, 조선 임진왜란 때 권율 장군과 의병들이 일본군을 격파한 승리의 공간이라는 점이 밝혀진 이후 임진왜란 3대 승전 산성으로 기록되었고 1963년 1월21일 국가 문화재로 지정된 이후 행주산성은 사적지, 그리고 숲과 전망이 좋은 공원으로 진화하기 시작했다. 공원 형태로 문화재가 되는 것은 그 연유가 어찌 되었든 일단 반기게 된다. 국가 문화재가 되면 숲과 내부 건축물 관리가 체계적으로 이뤄지고, 그 과정에서 숲과 나무와 꽃과 건축물들, 그리고 건축물 뜨락의 꽃밭 등을 동시대 후손들이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후손들이 역사적 공간의 자연과 스토리를 향유할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 아니겠는가. 행주산성을 특별히 좋아하는 이유는 서울과 경기도 고양시, 김포시, 파주시를 흐르는 한강 본류 가운데 이처럼 숲이 예쁘고 전망이 아름다운 곳이 없기 때문이다. 동쪽 끝 아차산, 잠실, 성수, 동작에서 한번씩 꺾인 강물은 동작에서 행주산성을 지나 강화 통진까지 일자로 흐른다. 개나리가 예쁜 응봉산, 억새바람의 하늘공원, 해질녘 서쪽 하늘에 물드는 노을공원 등이 있지만 단정함으로 따지면 행주산성만 한 곳은 없다.
행주산성대첩비

▶왜구에 포위되고, 폐허에 무너진 성의 부활

행주산성에서 벌어진 행주대첩은 한산도대첩, 진주대첩과 더불어 임진왜란 3대 승리 대첩으로 기록되어 있다. 물론 더 많은 곳에서 더 많은 군사와 의병들이 왜군들을 물리치곤 했지만 ‘대첩’으로 기록된 것은 이 세 곳의 전장이다. 행주대첩은 행주산성 정복을 통해 조선에서의 완전한 승리를 이루겠다는 일본군이 총력을 다해 공격을 해 온 엄청난 전쟁이었다. 반면에 조선군은 행주산성 전쟁에서의 승리를 통해 한양을 되찾아 전쟁의 양상을 완전히 조선의 것으로 돌려놓겠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었다. 이 전쟁에서 일본군은 무려 일곱 차례나 모든 전력을 쏟아 부으며 공격을 감행했지만, 행주산성을 지키고 있던 관군, 의병, 승병, 여성들까지 목숨을 던져가며 방어해 산성을 포위하고 있던 일본군을 쩔쩔매게 했다. 때맞춰 경기, 충청 병력이 한강을 통해 화살 수만 개를 가져와 결국 일본군은 꽁지가 빠지도록 달아날 수밖에 없었다. 권율 장군이 이끈 행주대첩은 즉시 조선군의 사기를 하늘로 끌어올렸고, 권율 장군은 도원수가 되었으며 선조로부터 충장공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행주대첩이 벌어진 게 1593년의 일인데 전쟁 중인지라 그 승리를 남길 그 어떤 비석 하나 세우지 못한 채 세월이 흘렀다. 그러다 1602년이 되어서야 대첩 때 권율 장군과 함께 싸운 휘하 장수들이 중심이 되어 행주대첩비가 세워진다. 대첩 9년 만의 일이었다. 비문은 조선 중기의 문인이자 문신이었던 최립이 지었고, 글씨는 조선 명필 한호(한석봉)가 썼으며 머릿글은 김상용(조선 중 후기 문인, 시인, 정치가로 병자호란 때 강화도가 함락되자 문루에 화약을 쌓고 불을 붙여 자결한 선비다)이 썼다. 당연히 이 행주대첩비는 행주산성의 맨 꼭대기, 중앙에 위치, 산성의 상징이 되었고 산책이나 여행을 온 사람들도 한석봉의 살아 있는 글씨체를 보기 위해 가까이 접근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행주산성은 대첩비 건립 이후 거의 폐허로 방치되었고, 산성 곳곳은 공동묘지가 되어버렸다. 다행히 더 이상 망가지지 않도록 조선 정부에서 최소의 관리를 하였으나 일제시대와 한국전쟁 등을 거치면서 전략적 요충지로서의 역할을 하되 역사적 가치를 되찾는 일은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다. 그러다 1963년 박정희 대통령의 특별한 지시로 행주산성은 부활했다. 성지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위한 묘지 이장, 나무 식재, 부속 건물 건축 등 외형적인 것은 물론, 이념 교육의 현장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국가의 체계적 관리가 시작되자 행주산성은 걷기 좋고 전망 좋은 유적지이자 공원으로 변모하게 된 것이다. 행주산성의 숲길에서는 권율 장군 동상, 대첩비, 충장사 외에도 행주대첩 당시 무기 등을 재현 전시해 놓은 대첩기념관, 1970년에 건립한 진간정, 덕양정 등 정자 등 현대에 건축되었으나 조선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건축물들도 마주할 수 있다.

▶행주산성의 확장적 미래 역사공원과 장항습지

인천공항이 생기기 전에는 수도권에는 오로지 김포공항 하나뿐이었다. 그래서 신혼여행을 떠날 때는 신랑 신부와 그의 친구들이 행주산성을 함께 산책하고 비행 시간에 맞춰 공항으로 떠나곤 했다. 기분이 들뜬 젊은이들이 수시로 모이는 곳이 되다 보니 세련된 식당과 커피숍이 생겼고 그에 따른 가격 프리미엄도 생겨났다. 그러나 이제 공항 시간을 맞추거나 결혼식 뒷풀이를 위해 일부러 행주산성을 가는 사람은 없다. 물론 당시 신혼부부와 그의 친구들이 행주산성을 즐겨 찾은 이유는 단순한 거리 때문만이 아니었다. 먹거리가 풍부하고 풍광이 아름다웠기 때문에 결혼식 뒷풀이 장소로 그만 한 곳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뒷 세대들에게 행주산성은 국수집으로 기억된다. 오늘의 중장년들은 한강변에서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 거의 최초의 인류들인데, 그들은 목적지인 행주산성에 도착하면 빼놓지 않고 챙긴 게 잔치국수, 콩국수 등이었다. 이뿐 아니다. 행주산성 인근 한강과 장항 습지에서는 장어, 농어, 황복, 붕어, 치리 등 민물고기들도 많이 서식하고 있으며 어업 활동도 이뤄지고 있다. 행주산성 근처에 유난히 장어집이 많은 것과 이 일대에서의 어업 활동이 어느 정도 관계가 있는지 정확한 취재를 하지는 못했지만, 황복과 장어만 바닷 물고기이고, 나머지 어종 모두가 민물고기라는 사실은 여전히 살아 숨쉬는 행주산성 일대의 생태계를 보여주는 놀라운 일이라 할 수 있다.

특별히 장항습지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인공 하구둑이 없는 자연 하구로 2006년 4월부터 습지보호구역으로 관리받고 있으며 람사르 습지로도 등록되어 있다. 장항습지가 람사르습지로 인정받은 것은 자연하구라는 점 외에도 뱀장어, 말똥게, 갯물숲, 갯골, 재두루미, 저어새 등 풍요로운 생태계도 한몫했음은 물론이다. 장항습지가 자연 보전과 시민과의 공유를 위한 공원화되기를 바라는 마음들이 가득하지만, 오랜 세월 군사지역이었다는 이유로 공원화를 위한 사전 확인 작업에 꽤나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고, 그로 인해 장항습지는 아직 생태계의 천국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행주산성 역사공원에서는 실제로 행주산성 방문객보다 더 많은 가족 여행자들이 공원과 물가에서 여가를 즐기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강아지들과 뛰어노는 사람들, 공던지기 놀이를 하는 엄마와 아들, 운동에 열중하고 있는 사람들 등 살아있는 생태계와 똑같이 강한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는 것이다. 공원에서 빼놓지 말고 찾아가 봐야 할 곳이 장항버들장어전시관이다. 규모는 아담하지만 그 안에는 행주산성 일대의 생태는 물론 풍천(바다와 민물이 만나는 하구 지역)에 살다 성체가 되면 필리핀과 괌 중간 지점인 마리아나 해구 심해로 들어가 마리당 약 60만 개의 알을 낳고 생을 마감하는 뱀장어의 삶과 죽음의 이야기까지 들을 수 있는 곳이다. 그렇게 태어난 알은 대만 지역 가까이 거슬러 올라와 ‘아기 장어’라 할 수 있는 댓잎장어로 성장하고 한반도 대륙붕 근처로 이동, 실뱀장어로 자란 후 황뱀장어로 성장하거나 포획 양식되어 민물에서 살아가게 된다. 전시관에서는 뱀장어뿐 아니라, 어류, 조류, 갯골, 버드나무숲 등 모르고 살았던 생명의 숲 습지에 대한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있다. 예전에는 행주산성 서북쪽 일산, 김포방향은 철책이 막고 있었지만 지금은 평화누리길 4코스로 연결, 행주산성에서 일산호수공원까지 이어지는 도보 여행길를 걸을 수 있다. 최근 행주산성은 역사 공부 현장 학습의 공간, 그리고 산성과 연결되어 있는 행주산성역사공원, 장항습지 등 21세기 세대에 걸맞는 새로운 아이콘으로 자리하고 있다. 부모와 함께 오든 숙제를 위해 찾아오든 행주산성과 주변 생태계들이 새로운 세대들에게는 확장성 강한 공간으로 인식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행주산성은 산성 자체로서의 역사적 가치도 대단하지만, 산성을 중심으로 하는 살아있는 생태계를 통해 오래된 세대는 물론 10대에 이르기까지 즐겨 찾을 만한 역사 문화 공간이 된 것이다.

행주산성과 행주산성역사공원, 장항습지는 하나의 권역을 이루고 있다. 자동차를 가져갔을 경우 행주산성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행주산성, 역사공원 모두를 둘러보는 것도 괜찮다. 다소 거친 시골길을 걷는 느낌이 좋고 땀도 꽤 흘릴 수 있는 기회다. 그러나 날씨가 너무 더울 땐 역사공원까지 다시 자동차로 이동, 공원 주차장을 이용하는 것도 좋겠다.

▷행주산성 Info

-개방 시간 09:00~18:00(입장 마감 17:00)

-이용 요금 무료

-문화관광해설 10:00~17:00

[글과 사진 이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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