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석의 푸드로지>열무쌈·호박전·가지튀김.. 여름엔 菜力이 체력

기자 2022. 8. 11.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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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호락 ‘애호박찌개’
라이아 ‘라타투이’
배진강 ‘열무쌈’
향미 ‘어향가지튀김’

■ 이우석의 푸드로지 - 제철 채소

호박은 ‘中서 온 박’이란 뜻

지친 몸에 활력·肝해독 도움

씨 볶아먹고 잎 데쳐 쌈으로

가지, 안토시아닌 풍부하고

식이섬유 많아 腸에도 좋아

伊선 그라탕·파니니로 즐겨

흥겨운 대중가요에서 ‘여름은 젊음의 계절, 낭만의 계절’이라 노래하지만, 사실 여름엔 제철 먹거리가 별로 없다. 기껏해야 민어, 농어, 성게 정도다. 바닷물이 뜨거운 탓이다. 물이 차야 온갖 제철 해산물이 쏟아진다. 하지만 신은 공평하다. 대신 뜨거운 여름에 맛난 채소를 온천지에 나게 했으니 말이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는 푸성귀가 생선이며 조개를 대신한다. 감자며 양파, 가지, 토마토, 오이 등 줄기 및 뿌리 작물과 각종 열매, 잎사귀 채소에 맛이 제대로 들 때가 여름이다. 결실의 계절 가을이 오기 전, 무더운 여름에도 체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채력(菜力) 덕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인의 식습관은 채소를 많이 섭취하는 편에 속한다. 일단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쌈을 즐기는 식문화 덕분이다. 농가월령가 ‘오월령’에는 “아기 어멈 방아 찧어 들바라지 점심하소. 보리밥 파찬국에 고추장 상추쌈을 식구 헤아리되 넉넉히 능을 두소” 하며 쌈 식문화를 묘사한 글귀가 등장한다. 이처럼 한국인은 여름이 되면 쌈으로 맛과 영양을 두루 챙겨왔음을 알 수 있다.

외국에는 밀전병이나 쌀 반죽을 넓게 펴 재료를 감싸 먹는 문화는 더러 있지만, 이파리로 싸는 쌈은 거의 없다. 베트남 쌈(스프링롤)은 채소와 고기를 쌀가루 전병으로 싸먹는 방식이니 아예 반대 개념이다.

세르비아, 아제르바이잔, 튀르키예(터키), 그리스 등 발칸반도 요리 중에서 고기와 양념을 포도잎(또는 양배추잎)에 싼 다음 쪄내는 사르마(sarma), 돌마(dolma), 돌마데스(dolmades) 등도 있지만 이는 채소 만두에 가깝지 생채로 싸는 쌈은 아니다.

우리나라 쌈의 기원은 무척 오래됐다. 삼국시대와 고려 때 문헌에도 등장한다. 고구려에서 상추씨를 매우 비싼 값에 사온 까닭에 상추(生菜)를 천금채(千金菜)라 불렀다는 이야기도 내려온다. 조선시대에는 쌈이 얼마나 대중화됐는지 쌈을 먹는 예법도 있었다. 예법에는 ‘쌈을 싸되 입을 크게 벌릴 정도로 크게 싸면 예(禮)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정했다.

채소가 많이 나는 여름날에나 먹을 수 있었던 쌈은 편리하고 맛있던 ‘별미’였다. 서애 류성룡의 일화 중에는 친구와 바둑을 두면서 한 손으로는 쌈을 싸먹으며 정무까지 처리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샌드위치의 어원이 됐다는 영국 존 몬태규 샌드위치 백작의 일화와 비슷하다.

맛있는 여름 채소를 즐길 수 있는 것이 어디 쌈뿐이랴. 여름에 특히나 입맛이 당기는 채소에는 호박과 가지, 옥수수 등도 있다(물론 꺼리는 이들도 있다). 반찬 그릇엔 고구마줄기, 마늘종, 열무김치도 올라와 계절을 증명하고 있다.

호떡이나 호부추처럼 호박은, 중국(胡)에서 넘어온 박이란 뜻이다. 늙은 호박이 만주로부터 전래된 까닭이다. 단호박은 일본에서 넘어온 품종이다. 노화방지(항산화)에 효과가 있는 베타카로틴을 많이 함유한 호박은 여름철 더위에 지친 몸에 활력을 준다. 간 해독에도 도움을 주며 나트륨 배출에도 좋고 부기를 빼주는 펙틴도 많다. 호박은 과육이나 씨, 이파리 모두 버릴 것이 없다. 씨는 볶아 먹고 잎은 데쳤다가 쌈채로 먹는다. 애호박은 전을 부쳐 먹거나 찌개를 끓인다.

요즘 수확 철을 맞은 가지(Eggplant)는 호불호가 정말 갈리는 작물인데 한식에선 조리하는 방법도 얼마 없다. 데쳐서 나물로 먹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단 색이 매끈한 검보라색이라 낯설어 식욕이 일지 않는다는 이들이 많다. 게다가 익지 않은 과육은 떫고 익히면 물컹한 식감을 내는 탓에 웬만한 음식은 모두 먹지만 가지만큼은 꺼리는 경우도 제법 있다.

가지의 매력은 단맛이다. 여름 채소답게 과즙이 많은 데다 씹을 때 폭신하고 끝맛이 달다. 다만 삶았을 때 축 처진 속에 질긴 껍질 특유의 식감 때문에 싫다고들 한다. 아이들에겐 당근과 함께 기피하는 단골 편식 메뉴 최상위에 속한다. 처음부터 가지나물로 경험했다면 특히 그렇다.

하지만 튀기거나 잘 구워내면 맛도 식감도 괜찮다. 속에 고기를 채워 튀겨내면 단숨에 인기메뉴가 된다. 평소 가지라면 아예 입에도 대지 않던 사람이 중국음식점에서 어향가지를 맛보고 손가락을 곧추세우는 경우도 많다. 껍질을 벗겨 양식 스테이크 가니시로 낸 것을 냉큼 잘 먹던 이가 “바로 그게 가지”라고 밝히면 깜짝 놀라는 것도 봤다.

가지는 안토시아닌을 많이 함유해 여름철에 딱 좋다. 껍질의 보라색을 내는 안토시아닌과 레스베라트롤 등 파이토케미컬이 풍부하다. 파이토케미컬(phytochemical)이란 식물성(phyto)과 화학(chemical)의 합성어로 건강에 좋은 식물성 화학물질을 뜻하는 말이다. 게다가 식이섬유도 많아 변비나 당뇨, 장 트러블에 특히 좋다고 한다.

가지는 원래 중국에서 온 말이다. 한자어로 ‘가자(茄子)’로 쓰는데 이게 그대로 읽으면 ‘체즈’라 한다. 일본에선 똑같이 쓰고 나스(ナス)라 읽는다. 한식에선 전으로 먹거나 쪄서 나물을 무치는데 중국과 일본은 다양한 조리법으로 가지를 즐긴다.

특히 고기와 양념을 갈아 넣고 볶는 어향가지나 가지튀김, 지삼선(地三鮮) 등은 요즘 둥베이(東北)성 출신이 하는 중국음식점에서 많이 팔아 한국인에게도 인기를 얻고 있다.

프랑스나 이탈리아에서도 가지를 즐겨 먹는다. 이탈리아식 가지 그라탕인 ‘파르미자나 디 멜란차네’(Parmigiana di melanzane)는 가지와 치즈를 넣고 만든다. 파니니 등에도 들어간다. 가지를 끼워 넣은 샌드위치는 여름날의 별미다. 지중해 국가인 튀르키예와 그리스 등에서도 가지를 즐긴다. 특히 요즘 같은 때면 어느 집 식탁에나 오른다 해도 과장이 아니다.

여전히 휴가철이라 지역의 제철 음식에 대한 관심이 많다지만, 막상 가보면 여름철에 내세울 것이 별로 없다. 딴 계절의 것을 기어코 찾아 먹으면 자칫 독소 탓에 배만 아프고 만다. 이럴 땐 뜨거운 태양 볕과 소나기, 산들바람이 빚어낸 신선한 여름 채소로 입맛을 달래면 될 일이다. 상큼한 쌈채와 달달한 호박, 부드러운 가지는 물론이며, 포슬포슬한 감자에다 존득한 옥수수, 아삭한 양파도 마침 나와 있다. 다른 계절에는 지금과 같은 맛을 보려고 해야 볼 수 없는 여름날의 별미다.

놀고먹기연구소장

■ 어디서 맛볼까

◇가지 라타투이 = 라이아. 프랑스 니스 지방 음식 라타투이(ratatouille)는 가지를 비롯해 호박, 피망, 토마토 등 여름 채소에 허브를 넣고 뭉근히 끓여 만든 스튜 요리다.

이탈리아 카포나타(caponata) 등 지중해에는 이와 비슷한 요리가 많은데, 이 집은 서울에서 와인과 함께 정통 지중해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큰 볼에 가지를 메인으로 토마토, 피망, 올리브유 등을 넣고 국물은 거의 없이 자작하니 끓여낸다. 다양한 가격대의 와인도 갖췄다. 서울 동대문구 제기로 53-16. 가지 라타투이 2만5000원.

◇단호박 덴푸라 = 이치젠. 단호박은 ‘가보차’라고 해서 일식에서 중요한 식재료다. 특히 고급요리인 ‘덴푸라’에 빠지지 않는다.

후숙해서 당도가 오른 단호박에 튀김옷을 입히고 뜨거운 기름에 순식간에 튀겨내 ‘겉바속촉’ 상태로 익은 덴푸라를 덮밥이나 요리로 즐길 수 있는 집이다. 부드럽고 달달한 맛이 짭조름한 양념국물(쓰유)과 잘 어우러진다. 큼지막한 왕새우와 궁합도 맞다. 서울 마포구 포은로 109. 에비텐동 1만1000원.

◇애호박찌개 = 애호락. 가게 상호 자체가 애호박을 메인으로 하는 전문점이다. 은근히 달고 싱그러운 애호박의 맛을 최대한 끌어낸 애호박찌개로 유명하다. 고추장 양념 육수에 돼지고기와 애호박을 푸짐히 넣고 끓여낸 애호박찌개가 여름철 달아난 입맛을 단번에 소환한다. 칼칼하지만 달달한 국물은 특히 여성들에게 인기다. 안줏거리로 좋은 전골도 있고 식사용 정식도 있다. 서울 종로구 계동길 41 2층. 9000원.

◇열무쌈 = 배진강. 네덜란드인 하멜 일행이 잡혀있던 병영성이 요즘은 돼지석쇠구이 골목으로 더 유명하다. 연탄에 초벌해 불향 가득 밴 돼지불고기를 푸짐한 반찬에 곁들여 열무쌈에 싸먹는다.

열무쌈은 전남 지방에서 즐겨 먹지만 서울에선 쉽게 접할 수 없는 계절 별미다. 부드럽고 싱그러우며 아삭하다. 이 맛에 빠지면 주인공이 돼지고기인지 살짝 잊게 된다. 전남 강진군 병영면 남삼인길 6. 2만5000원(2인분).

◇가지튀김 = 향미. 중식에선 가지를 많이 쓰는데 다양한 조리법이 있다. 연남동 중식 노포 향미에는 아예 메뉴판에 지삼선, 어향가지볶음, 가지튀김 등 여러 가지 ‘가지’ 코너가 있다.

가지 속에 고기소를 채우고 옷을 입혀 동그랗게 튀겨낸 가지튀김이 그동안 가지에 대한 오해를 깡그리 불식시킨다. 언제나 팔고 있지만 요즘이야말로 계절의 맛이다. 서울 마포구 성미산로 193. 가지튀김 2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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