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잃고 나서야 깨달은 벽시계의 소중함

서울문화사 2022. 8. 11.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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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나는 한쪽 발을 헛딛었다는 걸 깨닫기도 전에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병원에서 나오는 길, 목발을 짚고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가'를 고심했다.

발등뼈의 건강과 인간의 존엄성이 직결되는 문제임을 알았다면, 나는 그날 조금 더 조심히 걸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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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을 잃고 나서야 깨달은 벽시계의 소중함.


일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나는 한쪽 발을 헛딛었다는 걸 깨닫기도 전에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무언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타는 듯한 고통이 수치심보다 먼저 찾아왔기 때문이다. “발등뼈가 부러졌네요.” 나라 잃은 표정으로 앉아 있는 내게, 의사선생님은 그렇게 담담히 말했다. 왼발에 통깁스를 하고 6주를 지내야 한다는 진단이었다. 병원에서 나오는 길, 목발을 짚고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가’를 고심했다. 되새겨봐야 소용 없는 일이었다. 탓할 건 나 자신뿐이었으므로. 걸음이 느린 아이로서의 삶은 이렇게 예고 없이 찾아왔다.

내가 시인이었다면 이 부상을 빌려 새로운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이 글은 느리게 걸어야 비로소 보이는 아름다운 것들에 관한 찬미로 가득했을 터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그냥 직장인이다. 내게 거리는 비로소 보이는 혹독함으로 가득했다. 그러므로 이 글은 볼멘소리가 대부분이다. 기상 상황은 땡볕 아니면 폭우! 용산구의 수많은 계단과 오르막길과 내리막길! 상점마다 있는 높은 턱! 너무 짧은 보행자 횡단보도 초록불 시간! 길 위 쓰레기를 잘 보고 다니지 않으면 나머지 뼈도 부러질지 모른다는 불안감! 그래. 나의 아름다웠던 도시는 이제 매 순간 나를 사면초가에 밀어넣고 있었다. 진정 ‘이불 밖은 위험’한 상황. 나는 신체와 영혼의 안식을 위해 집에 머무는 편을 택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집에 있는 것이 모든 걸 해결해주리란 생각은 착각이었다. 샤워 후 물이 뚝뚝 떨어지는 가운데 홍학처럼 한쪽 다리로 몸을 지탱하고 수건을 꺼내 드는 일, 어기적대며 간신히 방으로 돌아온 후 안경을 욕실에 두고 왔다는 걸 깨닫는 일, 안경을 가지러 꾸역꾸역 가는 길이 고되어 물을 한잔 마시려다 중심을 잃어 쏟는 일, 그걸 치우겠다고 외다리에 의지해 낑낑대다 지친 몸으로 다시 방으로 돌아오는 일, 그제야 화장실에 놔둔 안경이 다시 생각나는…. 그리고 이런 패턴이 모든 일상에 적용되는 일. 곤혹스럽다.

골절인으로서, 집 안에서 겪는 일 중 가장 곤혹스러웠던 때를 고르라면 ‘시간이 궁금할 때’라고 답하겠다. 우리 집엔 벽시계가 없다. 어떤 종류의 시계도 없다. 노트북, 태블릿, 스마트폰까지 있으니 굳이 시계가 필요할까 싶었다. 다쳤을 때에 비로소 깨달았다. 벽시계는 필요하다. 벽시계는 내 움직임이 많은 동선에 꼭 놓아야 한다. 다리를 다친 채 무언가를 하면 시간이 얼마나 소요되는지 자연스레 알아낼 수 있고(부상 이후 스케줄 조절을 위해), 전자 기기를 찾겠다고 온 집 안을 콩콩 걸음으로 뛰어다닐 필요도 없다. 어쩌면 시간을 알려주는 전자기기가 이토록 많은 시대에도 여전히 벽걸이 시계가 출시되고, 또 새로 디자인되는 이유는 인간적 존엄성을 지켜주는 아이템이어서가 아닐까. 어쨌든 건강이 최고라는 어른들 말씀엔 틀린 것이 없다. 발등뼈의 건강과 인간의 존엄성이 직결되는 문제임을 알았다면, 나는 그날 조금 더 조심히 걸었을 텐데. 이달엔 나의 쾌유를 바라는 마음에서, 벽시계를 꼭 사기로 결심했다.

에디터 : 박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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