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동에서] 만 6살부터 성범죄 노출..'국민 레이싱 게임' 실태는?

민지숙 입력 2022. 8. 11. 09:01 수정 2022. 8. 11.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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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연령가 모바일 A게임 성범죄 판결 전수조사
피해 연령 '만 6세'부터..절반 이상 '집행유예'
게임 채팅으로 접근해 SNS로 성착취물 제작

■ 올해로 18년 된 ‘국민 레이싱 게임’ 드리프트와 코너링. 두 가지 ‘운전 기술’을 처음 알려준 레이싱 게임이 있습니다. 진짜 운전대를 잡은 지금도 가끔 도로 위에서 떠오르는 귀여운 카트의 이미지. 초등학생 시절부터 즐겨 하던 추억의 게임이 요즘은 PC뿐 아니라 모바일 버전으로도 인기라는 게 놀랍지 않았습니다. 달리는 차 위에서 아이템을 던지는 위험한 설정이지만 그 어떤 게임보다 무해한 이미지로 기억됐기 때문입니다.

최근 이 게임과 관련된 성범죄가 골치라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와닿지 않았던 이유기도 합니다. N번방, 트위터, 텔레그램도 아닌 A게임이? 당장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벌써 20살 가까이 나이를 먹은 이 게임은 매년 중고등학생 e-스포츠 대회가 열릴 정도로 국민 게임으로 거듭나고 있었습니다. 클린한 이미지 덕분에 각종 캐릭터 상품과 남녀노소를 위한 이벤트에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전체연령가 게임이 아동 성착취 범죄의 새로운 창구가 되고 있다는 제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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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게임을 통해 성범죄를 당한 초등학생 사건의 변호를 맡고 있다. 그런데, 피해자가 이 학생뿐이 아닌 것 같다.”

친분이 있는 변호사로부터 들은 이야기였습니다. “일선 경찰서의 여성청소년과도 요즘 이 게임과 관련된 성범죄 사건들로 난리라고 한다”는 얘기까지 덧붙였습니다. 사실인지 확인해보기 위해 인터넷을 통해 공개된 판결문을 검색해봤습니다. 검색 기간 ‘지난 2년’, 키워드 ‘A게임’을 넣어 엔터키를 누르자 전국 각지 법원에서 다룬 사건 14건이 나왔습니다. 사건의 숫자보다 더 눈에 띄는 것은 ‘죄명’이었습니다. 보통 게임과 관련된 범죄 혐의는 아이템 거래에 관한 사기 사건인 경우가 많은데, A게임 관련해서는 ‘아동·청소년성보호에 관한 법률’ 일명 아청법과 관련된 사건이 대부분이었습니다.

■ ‘2020.XX.XX 경 A게임을 통해 알게 된 피해자 B양(만 6세)을’

범죄 사실마다 공통적으로 시작하는 문장. 실제로 A게임을 통해서 알게 된 아동을 대상으로 성범죄가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법원을 통해 A게임과 관련된 성범죄 사건이 더 있는지 확인해봤습니다. 항소 기간이 남아 아직 판결이 확정되지 않은 사건까지 포함해 총 24건. 여러 명의 법조계 인사들은 결코 적지 않은 수치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피해 사실을 신고하고, 범죄 사실이 소명되기까지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야 하는 만큼 실제 발생한 사건의 양은 훨씬 더 많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포켓몬스터’ ‘마인크래프트’ ‘어몽어스’ 등 다른 게임도 키워드로 넣어 봤지만 이 정도로 유의미한 숫자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외부에 공개된 판결문을 모두 입수해 살펴봤습니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성범죄 피해자의 나이였습니다. 피해자 전원이 미성년자로 평균 피해 연령 만 10.3살, 가장 어린 피해자는 만 6살였습니다. 6살 남자 아이에게 성인 여성인 척 성별을 속이고 접근해 나체 사진을 받아낸 사건도 있었습니다. 현역 군인이 군 부대 안에서 범행을 저지르기도 했고, 가해자 본인이 미성년자인 ‘소년범’이라 감경했다는 기록도 눈에 띄었습니다. 4명의 아이들로부터 2백 장이 넘는 음란 사진을 받아낸 경우도 있었습니다. 게임 채팅을 주고받다 이어진 오프라인 만남에서 성폭행이 이뤄지기도 했습니다.

■ 채팅방엔 1분에 10여 개 성관계 암시글…“게임은 원래 그렇지 않나?”

취재를 하며 취재진이 직접 게임에 접속해봤습니다. 모두에게 공개된 채팅방엔 ‘12여라인친구구함’ 과 비슷한 류의 채팅이 1분에 10여 개씩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얼핏 또래 친구를 구하는 순수한 글처럼 보이지만 성범죄 판결문들을 읽고나서는 분명 다른 의도가 숨겨져 있는 글이란 의심이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노골적으로 성적인 관계를 요구하는 단어도 적지 않았습니다. 순식간에 비슷한 글들이 광고처럼 채팅창을 도배하고 있었습니다. 한 때 스마트폰으로 A게임을 즐겨 하던 남편은 “게임이 원래 그렇지 않나”며 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고 말했습니다. 12세 이용가, 15세 이용가가 붙은 게임에서는 일상처럼 마주치는 풍경이었기 때문입니다.

■ “좋아한다. 나랑 사귀자”에서 ‘노예 게임’으로

온라인 공간에 대한 경험치가 쌓인 성인이라면 이런 제안에 ‘낚일’ 가능성이 낮겠지만, 어린 학생들은 달랐습니다. 아이들이 성착취 범죄에 노출되는 첫 번째 창구가 이곳이었습니다. 직사각형의 작은 게임 화면 한편에는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되는 전체 채팅방이 떠있습니다. 1분에 친구 추가 귓속말 잠깐 들여다보기만 해도 1:1대화 상대를 구하거나 노골적으로 음란 사진과 영상을 요구하는 글이 정신 없이 올라왔습니다.

‘자동차 게임’이 ‘노예 게임’으로 이어지는 것은 순식간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게임 속 채팅으로 접근해 조금씩 친해집니다. 그런 뒤에 카카오톡이나 라인과 같은 1:1 채팅방으로 불러내 본격적으로 성착취물 요구하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좋아한다. 사귀자” 와 같은 이야기를 넌지시 던집니다. 이성 관계에 호기심이 많은 아이들이 ‘유사 연인 관계’로 대화를 이어가는 와중에 일단 사진 한 장 영상 한 개를 전송하면 걷잡을 수 없어집니다. “학교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리겠다”거나 “게임 아이디를 알고 있다”며 해당 성착취물을 퍼트리겠다는 협박이 시작됩니다.

■ 감경 사유 “책임져야 할 배우자와 어린 자녀가 있어”

저희가 확보한 판결문 사건 15건 가운데 10건은 집행유예 처분을 받았습니다. 아동청소년성범죄에 대한 형량이 낮지 않다고 알고 있는데, 정작 실형을 선고 받는 비율이 높지 않았습니다. 법관 입장에서는 살인이나 절도 등 다른 범죄에 비해 성범죄 관련 양형이 계속해서 높아져 부담스럽다는 이야기도 들렸습니다. 지나치게 자주 바뀌는 성범죄 관련 법률을 따라가기 어렵다는 말도 나왔습니다. 물리적인 신체 접촉이 있는 성범죄 사건 수도 계속해서 늘어나 재판부의 업무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고도 했습니다. 사이버 공간에서 어린 아이들을 상대로 벌어지는 성범죄에 대해 큰 관심을 두기가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나 싶었습니다.

판결문 속 피고인은 ‘소년범’, ‘현역 군인’, ‘처자식이 있는 남성’ 등으로 지칭되었습니다. 소년이 자라 군인이 되고 누군가의 남편이자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그런 지위들이 곧 감경 사유로 이어지는 것을 보며, 오히려 가중 처벌을 해야 하지 않나 의문이 들기도 했습니다. 과거 성폭력 범죄로 실형을 선고받은 적 있는 남성이 온라인에서 범행을 이어나간 경우도 있었습니다. 게임 이용자 평균 연령만큼 가해자의 나이도 대체로 어린 편이었습니다. 어린 나이부터 잘못된 성 인식을 가지고 성인이 되면 어떤 범죄자로 자라날 수 있는지 그대로 드러나 있었습니다.

■ 처벌 수위보다 ‘가해자 특정’이 문제라는 지적도 처벌 수위를 논하기 위해선 벌을 줄 피고인을 특정하는 것부터 성공해야 합니다. 하지만 직접 관련 사건을 맡은 변호인의 말을 들어보니 그것부터가 큰 난관이었습니다. 사이버상에서 일어난 범죄이기 때문에, 가해자를 특정하는 것도 피해 사실을 입증하는 것도 쉽지가 않다는 겁니다. 수사 기관에 신고를 해도 해외 사이트의 자료는 받기가 어렵습니다. 중고 사이트에서 게임 계정을 사서 이용했다면 사실상 추적이 불가능합니다.

결국 변호인과 가족들이 직접 구글링으로 가해자의 개인정보를 추적하는데 매달려야 한다고 합니다. 여기에 익명성을 사랑하는 아이들은 계속해서 사이버 공간을 자유롭게 누빕니다. 게임과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익명으로 활동하고 또다른 익명의 이용자와 대화하는 즐거움을 멈추질 못합니다. 이 과정에서 욕을 먹거나 성희롱을 당해도 ‘관심’이라 착각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일단 친구나 연인으로서의 관계성을 맺고 시작되는 범죄 행위다 보니, 피해자 본인이 가해자의 처벌을 원치 않아 고소를 취하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여러 모로 가해자를 법정에 세우는 것은 쉽지가 않습니다.

■ 게임사 '모니터링'의 한계 게임사에서도 손을 놓고 있지만은 않았다는 입장입니다. 모바일 출시 이후 음란 채팅 및 게시글들에 대해 악성 키워드를 자동으로 걸러내는 AI 시스템을 운영 중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근절을 위한 캠페인과 실시간 모니터링도 병행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답변만 들어봐도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는 않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모니터링을 하더라도 1대1로 이뤄지는 개별채팅까지 할 수는 없으며, 계정에 대한 접속 제재 조치를 해도 마음만 먹으면 다른 계정을 구해 얼마든지 다시 들어올 수 있다는 겁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밖에 제재를 위한 명확한 자체적 기준도 없었고, 현 실태에 공감은 하면서도 마땅한 대안은 없다는 취지였습니다.

■ '채팅 기능' 꼭 필요할까? 사회문제를 지적할 때마다 가장 중요한 건 단연 대안이겠죠. 이번 기사를 준비하며 가장 힘들었던 점이 여기에 있었습니다. 저희 셋이서 한참동안 머리를 맞대보기도 하고, 각종 전문가들에게 문의도 해봤지만 무릎을 칠 만한 대안을 찾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다행히도 해당 게임사에서 곧바로 대처에 나섰습니다. 저희가 문제에 대해 회사에 접촉해 취재를 시작한 다음날 아동・청소년 보호를 위한 정책을 신설했고, 방송기사가 나가고 하루 뒤부터 전격적인 시행에 들어갔습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7. 아동·청소년 보호를 위한 정책 아동·청소년은 자신에 관한 정보를 결정할 수 있는 정보주체로서, 회사는 아동·청소년이 스스로 내리는 개인정보에 대한 판단과 결정이 보호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합니다. 아동·청소년이 게임 내 개인정보 관련 피해 예방 및 개인정보 정정·삭제권 등의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아래의 내용이 적용됩니다.

또한, 아동·청소년이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커뮤니티를 가꾸기 위하여 회사는 아동·청소년 보호에 최선을 다합니다. 아동·청소년을 유해 콘텐츠에 노출시키거나 성적대상화 하는 등 아동·청소년을 위험에 빠트릴 수 있는 행위에 대하여는 엄정하게 대처합니다.

[7-1] 아동·청소년은 청소년보호법 상의 기준에 따릅니다.

[7-2] 개인정보란, 그 자체로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정보 뿐 아니라 다른 정보와 결합하여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정보까지 포함합니다. 아동·청소년 고객은 본인의 휴대폰 번호, 주소, 이름, SNS정보, 사진, 동영상, 학교, 거주지,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가 타인에게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7-3] 아동·청소년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정책 [7-3-1] 아동·청소년 시기에 본인 또는 제3자가 등록한 휴대폰 번호, 주소, 이름, 이미지, 동영상 등 개인정보에 대해 삭제를 요청할 수 있습니다. [7-3-2] 아동·청소년의 휴대폰 번호, 주소, 이름, 이미지, 동영상 등 개인정보에 해당하는 데이터는 본인 또는 제3자의 요청으로 예고 없이 삭제되거나 숨김 처리될 수 있습니다. [7-3-3] 아동·청소년의 개인정보를 획득하거나 이를 시도하는 경우 서비스 이용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7-3-4] 아동·청소년의 개인정보를 도용 · 유포하는 경우 적발 즉시 서비스 이용이 제한될 수 있으며, 조사결과에 따라 영구 게임 이용제한, 수사기관 의뢰 등의 조치가 진행될 수 있습니다.

[7-4] 아동·청소년 인권 보호를 위한 정책 [7-4-1] 아동·청소년 대상으로 음란 또는 비윤리적 행위와 욕설과 비하 등 모욕적인 언행을 할 경우 서비스 이용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7-4-2] 성적 접촉을 목적으로 서비스 내에서 아동·청소년과 정서적인 관계 구축을 시도하거나,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서비스 외부의 만남을 시도 또는 주선하는 행위가 적발되는 경우 즉시 접속제한 될 수 있으며, 조사결과에 따라 영구 게임 이용제한, 수사기관 의뢰 등 조치가 진행될 수 있습니다. [7-4-3]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성적인 내용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거나 성적인 내용을 암시 또는 언급하여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음란성행위가 적발되는 경우 즉시 접속제한 될 수 있으며, 조사결과에 따라 영구 게임 이용제한, 수사기관 의뢰 등 조치가 진행될 수 있습니다.

주요 내용은 게임 내에서 아동・청소년에게 성적 접촉이나 만남 시도 등을 할 경우 수사기관 의뢰 조치 등을 통해 아동・청소년에 대한 접근을 사전에 막겠다는 취지입니다.

■ 해외 사례는? 해외의 경우를 살펴보면 미국 뉴욕주에서는 이를 위해 아예 성범죄자들은 온라인게임에 접속할 수 없게 하는 정책이 시행 중이지만, 이 부분은 인권침해 소지가 발생할 수 있어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입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부 소속 더불어민주당 이상헌 의원도 저희가 지적한 문제에 대해 공감한다며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게임 내 귓속말 기능, 즉 1대1 소통을 할 경우 미성년자 본인의 동의를 거쳐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방식입니다. 이상헌 의원은 “나이를 불문하고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진 전체이용가 게임에서 그 취지와는 반대로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가 발생하고 있다.”며, “게임이 미성년자 성범죄의 사각지대가 되지 않도록 대응 정책을 지속적으로 마련해나가겠다.”라고 밝혔습니다.

게임뿐만 아니라 모든 생활이 점차 온라인으로 옮겨가고 있는 추세를 고려할 때 온라인상의 성범죄는 앞으로도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이상적이면서도 실현가능한 방안은 어린 시절부터 성교육과 같은 온라인 예절교육을 의무화해 범죄율을 낮추려는 노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들에게 온라인도 하나의 사회공간이고, 익명성을 띤다고 상대방에게 나쁜 마음을 먹으면 안된다는 인식을 이용 초기부터 심어준다면 지금과 같은 무분별한 채팅문화는 막을 수 있지 않을까요?

[민지숙 기자 knulp13@gmail.com, 정태웅 기자 bigbear@mbn.co.kr, 이성식 기자 mods@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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