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버텨야 산다..투자 얼어붙자 '몸집 줄이기'

정인선 2022. 8. 11.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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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침체 '혹한기' 맞는 스타트업들
구조조정·신사업 가지치기
게임회사 베스파, 70% 감원
형편 더 나은 곳도 채용 '스톱'
배민보다 이용자 많은 당근마켓
적자 줄이려 기업 광고 '고육지책'
왓챠는 웹툰·음원 신사업 재검토
게티이미지뱅크

“재무제표에서 탑라인(매출)을 늘릴지 바텀라인(이익)을 늘릴지, 많은 스타트업이 선택의 기로에 있을 겁니다.”

한 스타트업 대표가 지난 4일 익명을 전제로 <한겨레>에 한 말이다. 이 스타트업은 지난해 200여명에 이르던 직원 수를 최근 100명 가까이로 줄였다. 말하자면 ‘바텀라인 ’ 쪽을 택한 셈이다 . “스타트업들이 투자금을 받으면 인건비 지출을 늘릴 것인지, 마케팅비 지출을 늘릴 것인지 등을 선택하잖아요. 마찬가지로 (투자금이 마를 때에도 ) 한정된 자원을 어디에 집중해야 더 좋은 성과가 날지 제각기 판단해 결정하는 거죠 . ”

코로나19 대유행 기간 풀린 막대한 유동성이 끊기며 투자 시장이 얼어붙자, 스타트업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월동 준비’에 들어가고 있다. 신규 채용 속도를 늦추고 구조조정을 하는 등 인건비 고정 지출을 졸라매 ‘바텀라인’을 늘리려는 기업이 있는가 하면, 당장 매출이 나오는 쪽으로 사업 모델을 바꿔 ‘탑라인’을 늘리려는 기업도 있다.

대규모 투자로 늘린 인력 ‘다이어트’

대표적 고정비인 인건비부터 줄여 ‘런웨이’(추가 투자 없이도 살아남을 수 있는 기간)를 최대한 늘리려는 움직임이 여기저기서 포착된다. 특히 지난 2∼3년간 시리즈 에이(A)∼디(D) 단계 투자를 유치하며 인력과 서비스를 늘렸던 스타트업들이 다음 단계 투자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다시 ‘다이어트’에 나서는 경우가 많다.

최근 대다수 직원을 대상으로 권고사직 시행을 예고한 중견 게임업체 베스파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모든 직원 연봉을 1200만원씩 올려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신작 게임 흥행과 추가 투자 유치에 실패하자, 지난해 6월 기준 367명이던 직원 수를 지난달 105명까지 줄였다. 이어 지난달 초에는 대다수 직원을 대상으로 권고사직 시행을 예고했다.

개인 오디오 방송 플랫폼 ‘스푼’을 운영하는 스푼라디오도 지난해 말 이후 직원 수를 30% 넘게 줄였다. 최혁재 스푼라디오 대표는 지난 6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작년 말 시리즈D 투자 유치에 실패한 후 자금이 말라가기 시작했다. 마케팅 비용을 대폭 줄이고도 현금 흐름이 부족해, 경영진 연봉을 삭감하고 주요 임직원의 연봉을 동결한 데 이어 일부 직원을 떠나보내야 했다”고 밝혔다.

시장이 얼어붙기 전 투자 유치에 성공한 기업들도 신규 채용 속도를 늦추는 분위기다. 올 초 800억원대 투자를 유치한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시장 상황이 나빠지기 직전에 대규모 투자 계약을 마무리한 덕분에 다른 곳들보다 사정이 나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신규 채용을 멈추는 등 인력 운용을 보수적으로 해야 한다는 내부 합의가 있다”고 전했다. 박희덕 트랜스링크인베스트먼트 대표는 “이전에는 포트폴리오 기업들에 1년∼1년 반 정도를 런웨이로 확보해 두라고 조언했지만, 최근에는 가급적 2∼3년동안 추가 투자 유치가 어려울 수 있다는 전제 아래 현금을 최대한 확보해 두라고 조언한다”고 말했다.

매출 안나도 이용자 모으고 보자? “이젠 옛말”

‘탑라인’을 늘리기 위해 당장 매출이 안나오는 신사업을 ‘가지치기’ 하거나, 돈 되는 새 수익모델을 기존 서비스에 덧붙이는 경우도 있다. 중고 거래 플랫폼 당근마켓은 올해 5월 기준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와 누적 가입자 수가 각각 1800만명과 3천만명을 넘었다. 토스와 배달의민족 등보다 많은 이용자를 확보한 셈이다. 하지만 지역 소상공인들로부터 받는 광고비 외엔 이렇다 할 매출원이 없어, 당근마켓이 ‘만년 적자’ 구조를 개선할 수 있을지 우려스럽게 보는 시선이 많았다. 당근마켓은 결국 지난 6월 프랜차이즈 기업 광고를 싣는 ‘브랜드 프로필’ 난을 새로 선보였다. 업계에선 당근마켓이 ‘지역 밀착 커뮤니티’라는 정체성을 다소 희생하고서라도 만년 적자 구조를 개선할 필요가 커진 끝에 고육지책을 택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명함 관리 서비스로 출발한 ‘리멤버’도 채용 솔루션 사업을 확장하면서 지난달 과금 체계를 개편했다. 헤드헌터들이 일정 금액을 지불하면 정해진 기간 동안 구직 중인 인재를 검색해 채용 제안 메시지를 보낼 수 있게 하던 것을, 적립금을 선불로 넣게 한 뒤 채용이 성사될 때마다 수수료 명목으로 차감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오티티(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업체 왓챠는 최근 상장 전 투자(프리 IPO) 유치에 난항을 겪으며 신사업 가지치기와 인력 감축 등 두가지 카드를 함께 꺼내들었다. 왓챠는 지난달 임직원들에게 “손익분기점을 넘길 때까지 핵심 사업인 오티티에 집중하고, 장기 성장 가능성을 보고 추진하던 웹툰·음원 등 신사업은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알리고 희망퇴직 신청을 받기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490억원 규모 투자를 유치할 당시만 해도 왓챠는 기업가치를 3천억원 가량으로 평가받았다. 이 때 손에 넣은 자금을 지렛대 삼아 올해 1천억원 규모의 상장 전 투자(Pre IPO) 유치를 추진했으나, 투자 수요가 급감하며 계획에 차질이 빚어졌다. 현재 투자 업계에선 왓챠의 기업 가치를 지난해 말보다 한참 떨어진 1500∼2000억원 수준으로 보고 있다. 왓챠는 지분 일부 매각 방안까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청한 한 스타트업 종사자는 “지난해까지는 수익성이 적더라도 서비스를 통해 모아 놓은 이용자 수가 많으면 투자 유치가 가능했지만, 올해 들어서는 일정 규모 이상의 이용자를 확보했더라도 당장 매출과 이익이 나오지 않는 구조라면 투자 받기가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정인선 기자 r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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