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길의 다석 늙은이(老子) 읽기(52)다시리는이

김종길 다석철학 연구자 2022. 8. 1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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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리는이의 속알맘은 때마다 다른 온씨알의 속알맘으로 비춰지기 때문이지. 늘 어떤 속알맘을 가지게 되면 온씨알의 속알맘이 있는 그대로 맑게 비춰질 수 없어. 속알맘은 우물거울이거든. 늘 텅 빈 속알맘이지. 닝겔, 흐르는 시선8, 2022, 아이패드

늙은이(老子) 49월은 ‘다시리는이’(聖人)의 길이다. 다석 류영모는 성인(聖人)을 ‘씻어난이’로도 풀고 ‘다시리는이’로도 풀었다. 성인이란 글씨를 띄어쓰기하지 않듯이 ‘씻어난이’와 ‘다시리는이’도 띄어쓰기하지 않았다. 이 글에서도 다석의 풀이를 쓸 때는 그대로 따른다.

한자어 성(聖)은 갑골문에 사람의 큰 귀(耳)와 입(口)으로 그려져 있다. 오래전 철 그릇이나 구리 그릇에 새긴 금문(金文)에는 사람이 발돋움하고 선(壬) 모습이다. 귀는 뛰어난 듣깸(聽覺)을 나타내고, 입은 뛰어난 말을 나타낸다. 크게 듣고 잘 말하는 ‘솟날뚜렷’의 거룩함이 담겼다. 그러니 성인은 더할 수 없이 뛰어난 이요, 거룩한 이며, 씻어난 이, 다스리는 이라 할 것이다. 그이의 귀는 늘 하늘에 열려있고, 그이의 입은 늘 땅에 열려있다.

다석이 ‘다시리는이’라고 한 것은 노자 늙은이가 말하는 성인을 ‘다시 임한 그이의 다스림’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의 풀이는 노자 늙은이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자세다. 늙은이 3월에서 “씻어난이의 다시림”으로 풀 때는,

라고 했다. 늙은이 5월에서는 이렇게도 풀었다.

하늘 땅이 어질지 않은가, 잘몬을 가지고 꼴개를 삼으니.

다시리는이 어질지 않은가, 씨알을 가지고 꼴개를 삼으니.

이렇게 볼 때 ‘다시리는이’의 큰 숨 돌아가는 마음은 늘 비어있고 또 씨알을 가지고 꼴개를 삼는다. ‘다시리는이’야말로 길 가는 이의 삶이요, 늘 스스로 저절로 있는 그대로의 삶이고, 늘 비어 빈 빈탕 속알맘(德心)으로 노는 이다. 그러므로 그는 늘 가진 속알맘이 따로 없다. 온씨알(百姓)의 속알맘을 가지고 속알맘을 하기 때문이다.

5월에서 떠돌이가 그 말을 풀기를 : “씨알은 다 꼴개야. 나무도, 새도, 산도, 강도, 물고기도 다 꼴개야. 세상에 꼴개 아닌 건 없어. 그런데 씨알 마음에 하늘 모시니 하늘이 환하게 열렸어. 환빛으로 터져서 짱짱하게 비어서 맑고 시원해. 몸이 속알맘이 되어서 얼나로 깨어 솟아 돌아가는 거야. 그렇게 얼나가 깨어 돌아도 씨알은 이 땅에서 씨알의 삶을 살아. 하늘땅이 다 들어차서 속알맘이 저절로 그대로 돌고 돌아도 씨알의 몸은 꼴개로 사는 삶이지. 자,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하지? 어진 삶이야. 어진 삶을 살아야 한다고.”라고 말하면서 “꼴개는 한낱 껍데기야. 그 껍데기를 벗어야 참나가 솟지. 벗기 전까지 씨알은 다만 꼴개에 지나지 않아. 알알이 알맞이로 하늘 모신 자리에 참나의 참꼴이 환빛이지. 꼴개 벗고 참꼴의 얼나 솟도록 씨알은 어진 삶으로 살아야 돼!”라고 외친다.

하늘 모신 온씨알의 속알맘은 있는 그대로 ‘다시리는이’의 속알맘이다. 그냥 맘과 속알맘은 다르다. 그냥 맘은 마음을 줄여 쓴 말이지만, 속알맘은 ㅁ과 ㅁ사이에 아래아(ㆍ)를 넣은 말이다. 하늘 숨 하나가 ㅁ과 ㅁ사이에 있어 돌아간다. 속알 숨이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둘은 가려 써야 한다.

마음, 그 맘은 아직 ‘하고잡’이 붙어 있다. 속알맘은 ‘하고잡’을 버리고 스스로를 고디 세워 도는 것이다. ㅁ과 ㅁ사이의 ㆍ는 바로 세운 가온 숨 돌돌이다. 속알 알짬이다. 바탈 속알맘이 돌돌 돌아야 산숨(生氣)이 붙는다. ‘하고잡’에 매인 ‘맴’과 ‘하고잡’이 모인 꼴 ‘몸’은 그만 끊고 텅 텅 비워야 속알맘이다. 가온찍기도 바로 이 속알맘에 있다!

여섯은 그대로다. 아래가 저절로 터 되어 열린 동그란 마당에는 외짝 지게문도 없이 다 훤하다. 여섯이 그 훤한 그림으로 본 ‘씻어난이’는 가지 않고 알고, 보지 않고 밝으며, 하지 않고 다 되었다. 길 가기를 멈추지 않으니 날로 덜어져서 비었고, 늘 일없이 있으니 세상을 집고 일어 설만 했다. ‘씻어난이’는 ‘다시리는이’로 일어섰다. 늙은이와 깨달이가 그이의 길을 보았다.

늙은이 : 풀어 말하면, 다시리는이는 늘 가진 속알맘이 없다. 온씨알 속알맘을 가지고 속알맘하기에.

깨달이 : 다시리는이의 속알맘은 때마다 다른 온씨알의 속알맘으로 비춰지기 때문이지. 늘 어떤 속알맘을 가지게 되면 온씨알의 속알맘이 있는 그대로 맑게 비춰질 수 없어. 속알맘은 우물거울이거든. 늘 텅 빈 속알맘이지.

늙은이 : “온씨알 속알맘을 가지고 속알맘한다”는 말을 다시리는이의 속알맘으로 ‘삼는다’로 보거나 ‘여기다’로 보는 것은 그렇게 인정하고 생각한다는 뜻이니, 온전히 온씨알의 속알맘이라고 할 순 없어. 늘 텅 빈 속알맘의 우물거울에 있는 그대로 맑게 비춰져야 똑같지.

깨달이 : 다시리는이는 잘한이에게 ‘잘하였다’ 하고 잘못한이에게는 또 ‘잘하라’ 하려고 해야지, 늘 그런 속알맘으로 살아. 그러니 그는 속알잘(德善)이지.

늙은이 : 8월에서 “썩잘은 물과 같고나.”(上善若水)라고 했어. 물은 거의 길이라고도 했고. 속알잘도 그와 같아. 썩잘이요, 물이요, 거의 길과 같은 그것, 바로 속알잘이지. 속알에 가득가득 썩잘이 흐르는 셈이야.

깨달이 : 다시리는이는 믿이를 ‘믿거라’ 하고 못믿이를 또 ‘믿으라’ 하려고 해야지, 늘 그런 속알맘으로 살아. 그러니 그는 속알믿이(德信)이지.

늙은이 : 잘(善)과 믿(信)은 좀 달라. 잘은 ‘에게’로 풀었고, 믿은 ‘를’로 풀었어. 왜 그랬을까?

깨달이 : 늙은이 38월에 “높속알은 함없고 라함없으며, 얕속알은 하고 라함이 있으며”라고 했어. 다시리는이는 늘 ‘잘하였다’ 또 ‘잘하라’ 하려고 함으로써 얕속알에서 높속알로 오르지. 그래야 온씨알의 속알맘도 속알잘이 되거든. 그러니 온씨알에게 직접 말해야 하는 거야. 늙은이 17월에는 “믿음 모자란데, 못믿음 있소라.”라고 했지. 떠돌이가 “씨알이 믿음 주지 못하면 윗길 윗자리도 씨알 못 믿어 하겠지. 못 믿어 하는 마음이 미움 자리야. 씨알 믿음 얻으려 애 써야지. 미움 키우면 스스로 내리막이야. 꽃길 열려면 그 스스로 저절로 있는 그대로의 믿음을 짓고 일으켜야 해. 스스로의 믿음 없이는 씨알 믿음 얻지 못해. 윗길 윗자리의 믿음은 씨알 믿음이 넉넉해야 시원해져. 차고 맑고 환해서 비어도 빈 것 같지가 않아.”라고 풀었어.

늙은이 : 그러니 믿음 모자란데 못믿음이 있지. 믿음이 차야 못믿음이 없어져. 믿음을 일으켜 세우지 못하면 똑발라지지 못하고 올발라지지도 못해. 떠돌이의 말을 받아서 어린님이 말한 거야. 잘(善)은 속알맘에 있어도 몸으로 하지 않으면 이뤄지지 않아. 그렇지만 믿(信)은 속알맘이 아주 중요해. 몸으로 한다고 채워지는 것은 아냐. 속알맘에 믿이를 일으켜 세워야 하는 일이거든. 그러니 믿이를 믿거라 하는 거야. 속알믿이(德信)여야 하거든.

깨달이 : 풀어 읽어 보면, 다시리는이 세상에서 크게 숨을 들이쉬며 쩝, 쩝, 세상 때문에 그 속알맘을 온통으로 하늘 숨 돌리니, 온씨알은 다 귀와 눈을 그리로 물 흐르듯 따르도다.

늙은이 : “쩝쩝”(歙歙)은 크게 숨을 들이쉬며 속알맘을 돌리는 소리지. 들이쉴 흡이요, 잇고 이을 흡이니 속알맘이 하늘 숨 들이쉬어 먹는 꼴을 나타낸 것이야. 다시리는이가 세상에 있으면서 늘 하늘 숨 들이쉬며 그 속알맘으로 온통 다하니, 온씨알의 모든 귀와 눈이 그리로 물 흐르듯 따르지 않겠는가.

깨달이 : 다시리는이는 다 어린이 달래듯이 달래도다. 온씨알을 어르고 달래서 가라앉히게 하는 것이지. 세상은 속알맘을 온통으로 다하지 못하면 언제든지 뒤죽박죽되어 버리니까.

늙은이 : 어르고 달래는 것은 온씨알의 속알맘이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늘 고루 편안, 평안, 태평하기를 바라기 때문이야. 세상의 삶은 기울지 않은 그 고름에 이르기 전까지 조금씩 기우뚱거리며 나아가지. 달래지 않으면 크게 무너지는 뒤범벅의 싸움판이야. 그러니 어린이 달래듯이 달래야지. 자, 그럼 49월을 새겨볼까!

■김종길은
다석철학 연구자다. 1995년 봄, 박영호 선생의 신문 연재 글에서 다석 류영모를 처음 만났는데, 그 날 그 자리에서 ‘몸맘얼’의 참 스승으로 모셨다. 다석을 만나기 전까지는 민중신학과 우리 옛 사상, 근대 민족 종교사상, 인도철학, 서구철학을 좇았다. 지금은 그것들이 모두 뜨거운 한 솥 잡곡밥이다. 함석헌, 김흥호, 박영호, 정양모, 김흡영, 박재순, 이정배, 심중식, 이기상, 김원호 님의 글과 말로 ‘정신줄’ 잡았고, 지금은 다석 스승이 쓰신 <다석일지>의 ‘늙은이’로 사상의 얼개를 그리는 중이다.

■닝겔은
그림책 작가다. 본명은 김종민이다. 대학에서 철학을, 대학원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했다. <큰 기와집의 오래된 소원>, <소 찾는 아이>, <섬집 아기>, <워낭소리>, <출동 119! 우리가 간다>, <사탕이 녹을 때까지> 등을 작업했다. 시의 문장처럼 사유하고 마음을 움직이는 그림으로 독자들과 만나는 작가다.

김종길 다석철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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