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 이민진, 한국 독자와 첫만남.."진실은 반복해 말해야"
"한국 독자들에 감동"..한일관계·페미니즘·차별과 혐오 등에도 소신 밝혀
(서울=연합뉴스) 성도현 기자 = "진실은 중요한데 남에게 강요하기는 어렵죠. 일본이나 다른 나라 역사가들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을 부인하는 것도 사실이고요. 그러나 진실은 반복해 이야기하면 됩니다. 가장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을 알려주는 거예요."
재미교포 이민진(54) 작가는 지난 10일 서울 광진구 세종대 대양홀에서 열린 소설 '파친코' 개정판 출간 기념 북 토크에서 닷새 앞으로 다가온 제77주년 광복절 관련 질문에 답하며 이렇게 말했다. 답변 도중 한국말로 "만세"도 외쳤다.
일제강점기 일부를 배경으로 '파친코'를 쓴 이 작가는 "우리 역사는 단순히 좋은 편, 나쁜 편이 있었던 게 아니라서 아주 복잡하다"며 "좋지 않았던 일을 포함해 실제 있었던 일을 다음 세대에 전달하면 혐오의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다. 늘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건 또 하나의 감옥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5·18 광주민주화운동,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의혹, 제주4·3사건을 언급하면서는 "우리도 떳떳하지 않은 것들이 있는데 올바르게 (진실을) 세워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파친코'를 쓰게 된 동기도 "부족한 것을 바로잡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이 어떻게 일본의 식민지가 됐는지를, 재일교포를 전 세계가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재일교포들은 지금도 모욕당하고 있고, 지저분하며 부도덕하다는 비난을 받는다. 이런 편견을 옹호할 수는 없었다"고 덧붙였다.
또 "억압을 받고 어려움이 있으면 우리는 반항할 수 있다. 불평등 앞에서 저항할 수 있고, 낙심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며 "세상엔 불공평한 게 너무 많지만 계속 나아가고 전진해야 한다. 인생이란 모험은 아름답다"는 메시지도 전했다.
당초 초본을 썼다가 완전히 내용을 바꾼 경험을 이야기하면서는 "삶의 모든 순간이 낭비처럼 느껴지고 실망스러울지라도 그 어떤 것도 낭비되는 것은 없다"고 밝혔다. '파친코' 후속편 집필 여부에 관한 질문엔 "절대 나오지 않을 것이고, 원하지 않는다. 나머지는 독자들의 몫"이라고 답했다.
이 작가는 '급진적 페미니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나는 페미니스트다. 평등을 믿는 모든 사람은 급진적인 사고를 갖는 사람들"이라며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와 선진 국가들은 남녀가, 성 소수자가, 종교적 소수자가 동등하게 대우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수용해야 한다"는 소신을 밝혔다.
차별·혐오와 관련해서는 "내 아이가 불평등을 겪는다면 잊어버리라고 말하기 쉬울 것 같다. 하지만 아이가 학교에서 안 좋은 일이 있었다고 하면 잘 들어봐야 한다"며 "집단적 행동을 한다면 대가는 점점 작아진다.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것을 이야기할 땐 분노하지 말고 차분하게 말하라"고 조언했다.
그는 차기작인 소설 '아메리칸 학원'을 두고는 "정말 고통스럽게 집필하고 있다. 거북이처럼 천천히 가더라도 건강만 허락하면 끝까지 쓸 것"이라고 했다. 또 자신이 어떻게 말하고 표현하는 것을 배웠는지 회고록 성격의 책 '네임 레코그니션'(Name Recognition)도 쓰고 있다고 전했다.
이날 행사에는 북클럽 운영자, 학원 운영자 아들, 작가 지망생 등 1천200여 명이 참석해 이 작가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이 작가는 행사를 마치고 휴대전화를 꺼내 강연장을 채운 독자들을 배경으로 함께 셀카도 찍었다. 이 작가의 부모와 남편, 언니, 외사촌 동생인 배우 김혜은 등 가족들도 자리했다. 그는 "가족에게 늘 사랑의 빚을 지고 있다"며 고마워했다.
이 작가는 행사 종료 직후 연합뉴스와 만나 "1천 명 이상의 한국 독자들이 한 공간에서 내 이야기를 들어준 경험은 처음이라 정말 얼떨떨하고 깜짝 놀랐다"며 "처음에 백인과 흑인 독자들이 대부분이었지만 '파친코'는 한국인을 위해 쓴 책이다. 오늘 너무 큰 감동을 받았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rapha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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