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에 3000만원.. 그럼에도 더 많은 미술책이 필요하다
아는 만큼 보이기에, 더 많이 읽어야 한다.
지난 9일 서울 한남동에 현대미술 서적 6000여 권으로 이뤄진 작은 도서관 하나가 들어선 이유다. 2006년부터 뉴욕현대미술관(MoMA·모마)과 파트너십을 맺은 현대카드가 전시 후원에 이어 미술 책방(현대카드 아트 라이브러리)까지 꾸린 것이다. 2년간 30여 국을 뒤져 앤디 워홀·장 미셸 바스키아 등 주요 작가 관련 서적부터 시중에서 구하기 힘든 초희귀본까지 모아놓은, 한국에선 흔치 않은 공간이다. 전권(全卷) 수집도 진행해 뉴욕현대미술관 1929년 개관 이래 발행한 전시 도록 710권, 1895년부터 발간된 베네치아비엔날레 도록 98권 전체 등을 책장에 꽂아놓았다. 100평 규모로, 예약만 하면 누구나 공짜로 책을 뒤적일 수 있다.
수집 장서 선정 및 도서관 개관식을 위해 최근 방한한 뉴욕현대미술관 도서관 총괄 질리안 수아레즈(37)는 “H.W. 잰슨의 ‘서양미술사’ 같은 개론서부터 전문 이론서까지 여러 층위를 아울러 방문객들에게 충분한 자료를 제공하고자 신경 썼다”고 말했다. 수아레즈는 대학에서 미술사를 전공하고 미국 휘트니미술관, 구겐하임미술관 사서(librarian) 등을 거친 미술관 전문 사서다. “미술책 도서관은 갤러리스트나 옥션 관계자 등 대부분의 미술계 인사가 찾는 사랑방 같은 곳”이라며 “전시의 역사를 정리하고 의미 있는 사료를 제공해 미래 전시의 준비 공간이 된다”고 말했다. “다음 전시를 위한 자양분이 되는 것”이다.
현대미술의 첨단을 대표하는 뉴욕현대미술관은 1932년부터 미술관에 도서관을 열어 장서 수집을 시작했다. 100만권 가까운 자료가 소장돼있다. “미국의 웬만한 미술관은 도서관을 운영하고 우리는 그 중간 규모”라며 “변화를 주시하고 끊임없이 토의해 책을 늘려간다”고 했다. 현재 이들이 주목하는 분야는 작가가 직접 제작하는 ‘아티스트 퍼블리싱 북’이다. 책인 동시에 미술 작품이다. “1990년대부터 아티스트북을 본격 수집했다. 이전에는 각광받지 못했으나 도서관이 주목하면서 전시로 이어져 유망 장르가 되는 경우도 있다. 사진집 수집도 그중 하나이고, 작년에 관련 전시를 진행했다.”
이번에 한남동에 들어선 책방에서도 40여 권의 ‘아티스트 퍼블리싱 북’을 접할 수 있다. 이탈리아 조각 거장 루초 폰타나가 1966년 금색 종이에 구멍을 내고 아코디언처럼 접어 펼쳐낸 200부 한정 ‘공간 개념’, 인도 출신의 세계적 설치미술가 애니시 커푸어가 2005년 세계지도책에서 중동(中東) 지역만 도려내고 빨갛게 칠해 국제 지형을 추상적으로 뒤바꾼 뒤 단 26권만 출간한 ‘Turning The World’, 미국 개념미술가 로버트 모리스가 제록스 복사기로 인쇄한 그래픽 책 ‘제록스북’ 등이다. 이름만으로 구미 당기는 작가들답게, 한 권에 3000만원에 육박하는 귀한 책도 있다. 만지려면 비치된 비닐장갑을 껴야 한다.
국내에도 2019년 첫 공립 미술 전문 도서관(의정부미술도서관)이 생기는 등 미술 도서관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뉴욕현대미술관은 큐레이터만을 위한 소규모 도서 공간을 따로 둘 정도로 책과 긴밀하다”며 “깊은 연구가 더 나은 전시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책은 읽히기 위해 존재하는 모두의 것이다. 더 많은 사람이 더 많은 책과 만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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