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도설] 'banjiha'('반지하')

정상도 기자 2022. 8. 1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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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이 현실이 되는 건 판타지로 즐길 수 있으나 일어나선 안 될 일이 빚어지는 건 받아들이기 힘든 비극이다.

외신이 침수 피해에 취약한 서울의 반지하 주거 형태에 관한 기사를 쏟아냈다.

거칠게 표현하자면 세상이 번듯한 지상 저택과 반지하로 나뉜 셈이다.

첨단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홍수 위해 경고시스템' 구축, 반지하 등 안전 취약가구의 침수 피해 방지 등이 거론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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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이 현실이 되는 건 판타지로 즐길 수 있으나 일어나선 안 될 일이 빚어지는 건 받아들이기 힘든 비극이다. 똑같은 반지하 삶이다. 2년 전 영화 ‘기생충’은 아카데미 4관왕이란 해피엔딩이었다. 온 세상이 겪고 있는 양극화의 민낯을 제대로 보여줬다는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지난 8일 밤 수도권 물난리는 발달장애인 가족 3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재난은 약자에게 더 가혹했다. 순식간에 불어난 물에 손쓸 새 없는 취약한 구조가 반지하의 한계다. 그런 환경으로 내몰린 사람이 여전히 많다. 물난리로 드러난 우리 사회 단면이다. ‘기생충’은 허구지만, 반지하는 현실이다.


외신이 침수 피해에 취약한 서울의 반지하 주거 형태에 관한 기사를 쏟아냈다. 한국어 발음 그대로 ‘banjiha’나 ‘semi-basement’(준지하층) ‘underground apartment’(지하 아파트) 등 표현은 다양하지만 영화 ‘기생충’을 소환하는 건 공통적이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인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빈곤층 거주지’는 분단과 압축성장이 만들어낸 자화상이기도 하다.

반지하엔 분단의 상처가 깃들어 있다. 1970년 건축법 개정으로 단독주택이나 다세대 주택을 신축할 때 의무적으로 지하실을 만들어야 했다. 비상시 방공호로 활용하려는 목적이었다. 이런 지하실이 거주용으로 바뀐 건 1980년대부터다. 산업화 시대 도시로 사람이 몰리면서 주택 공급 여력이 부족했다. 처음에 창고용이던 지하실에 어느새 사람이 살게 된 것이다. 거칠게 표현하자면 세상이 번듯한 지상 저택과 반지하로 나뉜 셈이다. 봉준호 감독이 묘사한 ‘언덕 위 빛나는 저택과 칙칙한 반지하’다.

지난 9일 서울 신림동 발달장애인 가족 침수 사망사고 현장을 찾았던 윤석열 대통령은 10일 물난리 피해에 사과하며 근본적인 대책을 강조했다. 또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취약가구 거주자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기 위한 방안을 다짐했다. 대통령과 장관의 관심은 도심 침수 피해 예방에 맞춰져 있다. 첨단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홍수 위해 경고시스템’ 구축, 반지하 등 안전 취약가구의 침수 피해 방지 등이 거론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지하의 비극’을 막는 근본 대책은 서울 집중을 막는 균형발전, 사회적 약자에 대한 더 촘촘한 안전망 구축에서 찾아야 한다. 영화 ‘기생충’에서 저택과 반지하 삶을 가르는 중요한 잣대 가운데 하나가 냄새였다. 굳이 서울에서 살지 않아도 좋은 사회, 약자라고 재난에 무방비로 내몰리지 않는 구조가 된다면 퀴퀴한 반지하의 냄새도 사라질 것이다.

정상도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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