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잘하는 학교 끌어내리기식 정책, 교육 발전의 毒이다

이재경 미국 뉴욕주립대 버팔로 교수 겸 풀브라이트 글로벌 스칼러 2022. 8. 1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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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은 백년대계(百年大計)인데 현재 한국 교육 체제에서 가능할까? 대통령 혹은 장관 한마디에 정책이 조변석개(朝變夕改)하는 풍토에서는 장기적 안목에 입각한 교육 정책이 설 자리가 없다. 최근 논란이 된 아동 취학 연령의 변경과 자사고·외고의 존치 혹은 폐지 방침의 발표와 번복이 그 증거다. 교육 정책의 난맥상은 교육부 수장의 전문성 결여와 여론 수렴의 부족 때문만이 아니다. 근본적으로 교육의 비전과 전략, 정책 우선순위를 결정하고 소통하는 시스템과 리더십의 부재에서 비롯된 일이다.

학제나 학교 유형 같은 교육 제도의 변경은 시급한 문제가 아니다. 중장기 과제로 국가교육위원회 같은 기구를 통해 신중하게 연구를 통해서 논의하고, 교육 공급자뿐 아니라 수요자의 입장에서 균형적으로 접근해야 할 문제다. 제도 변경에 대한 찬반 논의에 앞서 미래 교육의 목표에 비추어 현행 제도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먼저 진단하고 분석해야 한다. 이해관계가 서로 다른 집단들 간에 의견 차이가 있으면, 제일 먼저 아이들의 행복과 미래를 위한 이해를 우선해서 판단해야 한다. 수시로 바뀌는 제도 속에서 정작 교육의 수혜자인 학생들은 실험 대상으로 전락해 버린다.

우선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5세로 낮추는 방안은 아동의 발달 단계와 사회심리적 요구를 고려하지 않은 어른 위주의 획일적 발상이다. 정작 필요한 것은 현행 유치원을 유아 학교로 전환하고 공교육 제도에 포함시켜 무상 의무교육화하는 동시에 초등학교와의 교육적 연계를 강화하도록 프로그램을 개편하는 일이다. 유치원을 뜻하는 ‘킨더가르텐(Kindergarten)’은 아이들의 정원, 즉 놀이와 체험 학습의 공간인 동시에 초등학교 입학에 필요한 준비를 하는 예비 단계로서 지원해야 한다.

이전 정부에서 추진한 자사고 및 외고 폐지 문제 역시 학생과 학부모들의 교육 선택권과 사립학교의 교육 자율권을 무시한 횡포다. 사회 계층 편 가르기, 잘하는 학교 끌어내리기식 발상은 교육 발전에 독이 된다. 현 정부서 검토한 자사고는 존속하고 외고는 폐지한다는 발상도 자의적이다. 교육의 다양성과 자율성을 지원하는 동시에 사회적 책무성을 강화하는 대안이 바람직하다. 민족사관고 같은 우수한 학교를 더 많이 만들고 동시에 취약계층 학생들이 더 많이 진학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교육의 질도 높이고 기회균등에도 기여할 수 있다. 특권층과 부유층의 소위 ‘스카이 캐슬’, 즉 교육 기회 사재기에 대한 대책은 스카이(명문 학교)를 없애는 게 아니라 전국 모든 학교의 질을 더 높여서 사교육 의존도를 줄이고 교육 기회의 사다리를 늘리는 것이다.

교육부가 우선 해결해야 할 과제는 학교 현장의 불부터 끄는 것이다. 코로나 대유행으로 인한 대면 수업의 중단과 원격 수업으로 인한 학습의 결손, 기초 학력의 저하, 그리고 학생의 건강과 복지 문제 해결이 급선무다. 코로나 이후 사회적 취약계층 아동·청소년의 학습 결손 및 학력 격차가 더 커졌다. 교육 정책의 우선순위를 재조정하고 모든 역량을 정상적 학교 교육의 회복과 취약계층 학생 지원에 집중해야 한다.

한국 교육 정책의 가장 큰 문제는 정책적 일관성과 신뢰성의 상실이다. 교육부 입장에서는 교육 자치제의 강화로 종이호랑이 신세가 되었는데 욕만 먹는다고 억울해할지 모른다. 그러나 교육부가 공교육 컨트롤 타워로서 리더십을 발휘하고 공을 세울 일은 여전히 많다. 코로나 이후 학교 교육 정상화, 영·유아 무상교육, 초·중등 교육과정 개선, 입시 개혁과 사교육비 경감, 대학 구조조정과 경쟁력 강화, 지역 및 계층 간 교육 격차 해소 등이다. 4차 산업혁명, 인구 감소, 사회 양극화 등 격동기 속에서 교육부가 제 역할을 잘해야 공교육이 산다. 이제는 교육부가 그 존재 가치를 국민, 특히 학생들에게 증명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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