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출두한 트럼프 “아무 대답도 안할 것”

뉴욕/정시행 특파원 2022. 8. 1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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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시 맨해튼 5번가 트럼프 타워 앞. 체감온도가 섭씨 40도까지 치솟은 폭염 속에 두 편으로 갈린 시민 수십 명이 성난 얼굴로 시위를 벌였다. 전날 연방수사국(FBI)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플로리다 마러라고 리조트 별장을 전격 압수 수색하자, 트럼프 지지자와 현 정부 지지자들이 각각 그의 집 앞에 몰려든 것이다. 트럼프는 지난 8일 저녁 바로 이 빌딩 펜트하우스에서 압수 수색 사실을 긴급 타전했다.

트럼프 수사를 촉구하는 이들은 ‘트럼프를 구속하라’ ‘누구도 법 위에 있지 않다’ ‘(트럼프 측근) 루디 줄리아니, 로저 스톤도 기소하라’는 팻말을 들었다. 반면 트럼프 지지자들은 ‘트럼프는 순교자’ ‘트럼프 2024′ ‘마녀사냥을 멈추라’는 내용의 현수막을 들고 성조기를 흔들었다. 한 시민은 “트럼프가 바로 지금 (2016년 대선 출마 때처럼)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출마를 선언하고 ‘미국을 민주당에서 구해내겠다’고 선언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을 비하하는 문구(Let’s Go Brandon)’를 적은 픽업트럭이 경적을 울리며 지나가기도 했다.

FBI의 플로리다주 팜비치의 마러라고 리조트 압수 수색 다음 날인 9일 인근에서 트럼프 지지자들이 '법무부와 FBI가 부패했다' '트럼프가 나의 대통령'이란 문구와 그림을 들고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EPA 연합뉴스

뉴욕만 두 쪽 난 게 아니다. 당국의 강제 수사 소식에 전날 밤부터 플로리다 마러라고 앞에 트럼프 지지자 수백 명이 몰려 항의 시위를 벌였다. 9일 워싱턴DC와 애리조나 피닉스 등 각지의 FBI 사무실 앞에서도 찬반 시위가 이어졌다. 뉴욕포스트와 폭스뉴스는 “FBI가 9시간 반 동안 마러라고의 방 128개를 이 잡듯 훑으며 멜라니아의 옷장까지 뒤졌다” “트럼프 변호인은 입회조차 못 하게 했다” “압수 수색 영장을 발부한 판사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에게 기부한 적이 있다”는 속보를 쏟아냈다. 이날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빗발치는 기자들 질문에 “압수 수색 사실을 우리도 언론 보도를 보고 알았다”며 수사 관련성을 부인했다. 건국 이래 246년간 전직 대통령에 대한 기소와 처벌의 사례가 전무했던 이 나라에서 이번 트럼프 수사 본격화가 향후 엄청난 후폭풍을 일으킬 것임을 예고하는 장면이었다.

플로리다 마러라고 리조트가 FBI 압수 수색을 당한 다음 날인 9일 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어딘가로 외출했다가 현 거주지인 뉴욕 맨해튼의 트럼프 타워로 들어서면서 지지자들과 취재진에게 손들어 인사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당국의 수사는 급물살을 타는 모습이다. 트럼프는 10일 오전(현지 시각)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뉴욕주 검찰청사에 출두했다. 그는 검찰 조사에 앞서 “인종차별론자인 뉴욕주 검찰총장을 만나게 됐다” “나는 수정헌법 5조에 따라 검찰 질문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을 것” 등의 입장문을 냈다. 그가 말한 ‘인종차별론자’는 흑인 여성인 레티샤 제임스 뉴욕주 검찰총장이다.

앞서 트럼프는 지난 9일에는 2024년 대선 재출마를 암시하는 캠페인 영상도 공개하고 “우리는 부서지지도, 굴복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했다. 정치자금 모금 이메일에선 “불법, 정치적 박해, 마녀사냥을 폭로하고 막아야 한다”고 했다.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트럼프가 11월 중간선거 전후로 저울질하던 출마 선언 시기를 더 앞당길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와 가디언은 트럼프가 ‘부패한 정부에 마녀사냥 당한 순교자’ 이미지를 굳힐 것이며, 공화·민주 양당도 중간선거가 그런 구도로 급속히 재편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트럼프와 지지자들은 지난해 ‘1·6 의사당 난입 사태’ 관련 수사와 하원 특위의 공개 청문회가 이어지면서 크게 위축돼 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압수 수색이 ‘약자’인 전직 대통령에 대한 정치 보복으로 비쳐 여당에 역풍으로 불고, 트럼프가 이를 지지층 결집의 호재로 활용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FBI가 지난 8일 9시간 반 동안 압수 수색을 벌인 플로리다 마러라고 리조트 전경.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에게 받은 편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주고받은 친서 같은 국가 기록물뿐 아니라 미 대통령으로서 세계 정상이나 외교 사절에게 받은 선물들을 대거 들고 나왔고, 정부의 거듭된 반환 요청도 거부한 것으로 나타났다. /UPI 연합뉴스

반(反)트럼프 진영에서도 이번 수사가 미 정계의 오랜 금기를 깬 데다, 트럼프의 각종 위법 행위에 오히려 ‘정치적 면죄부’를 부여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터져 나왔다. 민주당에서는 “당국이 압수 수색 이유를 명확히 설명하지 않으면 정치적 술수로 간주돼 향후 수사 신뢰가 떨어질 것”(앤드루 쿠오모 전 뉴욕주지사), “국가 기록물을 잘못 다뤘다는 것만으론 압수 수색감으로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트럼프에게 훌륭한 선거 재료로 보인다”(앤드루 양 전 대선 경선 후보)란 말이 나왔다. 공화당 내 트럼프의 대선 경쟁자인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은 “미 역사상 어느 전직 대통령도 자택을 급습당한 적은 없었다. 사법 시스템의 신뢰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메릭 갈런드 미 연방 법무장관 겸 검찰총장이 지난 2일 워싱턴 DC의 교정국에서 새 국장 임명을 발표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임명한 갈런드 장관은 정치적 독립과 중립성을 강조해왔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수사 방침에 대해서도 항상 "누구도 법 위에 있지 않다"고 해왔다. 그러나 FBI의 강제 수사를 기점으로 갈런드도 정치적 논란의 한복판에 뛰어들게 됐다는 말이 나온다. /AP 연합뉴스

미 법무부도 정치 논쟁 한복판에 뛰어들게 된 모양새다. 워싱턴포스트는 “메릭 갈런드 법무장관이 정치적 중립과 독립성을 강조해왔지만, 수사와 기소의 최종 결정권자인 만큼 정치적 화염에 휩싸이고 있다”고 했다. 수사를 확대하는 것도 부담되지만, 정치적 고려로 트럼프를 기소하지 않는 것도 이상한 상황이 됐다는 것이다. 뉴스위크는 “갈런드는 결국 ‘바이든의 사람’인 만큼, 트럼프 수사에서 손을 떼야 한다”며 “여야가 합의하는 독립 특검을 구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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