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밥상' 높드리에 살어리랏다, 고랭지 여름 밥상
오는 11일 오후 7시 40분 방송이 될 ‘한국인의 밥상’에서 푸르름 가득한 여름 밥상을 찾아 높드리에 오른다.
여름에도 초록빛 물결 넘실대는 높드리, 평창으로 가본다. 해발고도 700미터의 산비탈에서 고랭지 대표 작물 수확이 한창이다. 높은 일교차에 당분을 비축해 더 아삭하고 달큰해진 고랭지 배추다.
기후변화와 병해충으로 한숨 짓는 여름 배추 농가들이 많은 요즘, 다행히 이곳 배추가 푸릇푸릇 잘 자랄 수 있었던 것은 땅의 회복력을 살려내기 위해 애써온 마을 사람들의 지혜와 깊은 배려 덕분이다.
자식처럼 공들인 배추를 잘 키워 시집장가 보내는 날! 평생 맨손으로 자갈을 골라내며 고랭지에서 배추를 키워왔다는 농부 홍성자 씨가 그 기쁜 마음을 이웃들과 풍성한 밥상으로 나눈다.
김장배추 못지않게 아삭한 여름배추로 겉절이를 만들 때에는 얼었다 녹았다 하며 부들부들해진 황태포를 더하는 게 비법은 1년 내내 선선한 평창이라 가능한 고랭지의 맛이다. 여기에 배추 농부들의 기력 보충을 위해 당귀와 배추로 느끼함을 잡아낸 수육을 더하면 금상첨화다.
짙푸른 수박이 옹골차게 익어가는 경북 봉화의 고랭지. 여름향기 가득한 이곳에서 10여 년 전, 귀향했다는 농부 신무섭 씨를 만난다. 가파른 산길을 30분 넘게 올라 도착한 곳은 산꼭대기에 자리한 신무섭 씨의 고향 집은 수도 시설도 없는 깊은 산속의 집에서 아내 곽복희 씨와 손자를 키우고 있다.
각박한 도시 생활에 지친 부부와 몸이 약한 손자는 이곳에 살며 건강을 되찾게 됐다. 부부는 부모님이 일군 삶의 터전과 유산인 대추나무 덕분이라고 말한다. 산꼭대기 아궁이 앞에 앉아 가마솥의 대추를 젓고 또 저어 오랜 시간 고아내는 ‘대추곰’을 만들며 부모님의 헌신과 애정을 깨닫게 됐다는 며느리 곽복희 씨. 부모님이 살아온 길을 따라가며 삶의 여유와 자유를 되찾게 된 부부의 사연을 들어본다.
강원도 삼척의 두메산골에는 매일 흥겨운 노랫소리가 울려 퍼진다. 구성진 노래 솜씨의 주인공은 험한 산자락을 누비며 도라지를 캐는 김선녀, 이선녀 어르신이다. 넘치는 흥처럼 이름도 닮은 선녀님들로 거친 땅을 일구고 약초를 캐내 팔던 선조들, 화전민처럼 평생 산자락을 누비며 살아온 이들이다.
평소 쉽게 볼 수 없는 오래 묵은 황기를 캐낸 선녀님들이 이웃 동생에게 보양식을 차려준다며 잔뜩 신이 났다. 가족 같은 산골 동무를 위해 어떤 밥상을 차려낼까. 얼마 전 다리를 다친 이금녀 씨 댁, 점리마을의 ‘하늘 아래 첫 집’으로 향한다.
국토의 70%가 산지인 우리나라. 요즘에는 인생 2막의 무대로 산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많다. 영월의 고랭지 옥수수 밭에서 만난 이청산 씨도 마찬가지. 18년 전, 이곳에 들어와 쫄깃한 강원도 찰강냉이의 맛에 푹 빠졌다는 이청산 씨, 성명희 씨 부부는 치열한 도시의 삶에서 벗어나 자신들만의 느린 속도로 살아가고 있다.
너와집에 텃밭까지 직접 일구고 살다보니 가장 큰 변화는 밥상에서 왔다. 힘들어도 내 손으로 요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는 부부는 꾸지뽕, 헛개나무 등 5가지 약재와 얼큰하게 끓여낸 여름 보양식, 닭개장으로 이웃 농부들의 기력을 보충하는 풍성한 밥상을 차려진다.
자연의 끈질긴 생명력과 땅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의지, 그리고 누군가가 곁에 있어 늘 넉넉하고 풍성한 높드리의 밥상을 11일 ‘한국인의 밥상’에서 만나본다.
손봉석 기자 paulsoh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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