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히 베스트셀러 되는 게 아니더라 [삶과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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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함께 광화문 교보에 갔다.
대형 서점에 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세상에 책이 이렇게나 많다니, 하고 숨이 막힐 지경이다.
출판기획자인 아내는 잠시 후 한숨을 거두더니 오히려 이런 책에서 우리가 배워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다.
베스트셀러를 읽지 않는 걸 자랑처럼 얘기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게 취향일 순 있어도 자랑까지 되는 건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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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함께 광화문 교보에 갔다. 대형 서점에 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세상에 책이 이렇게나 많다니, 하고 숨이 막힐 지경이다.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다는 건 다 거짓말이다. 아내가 에세이 베스트 코너에서 책을 한 권 꺼내 읽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가서 들춰보니 이건 에세이가 아니라 잠언록을 길게 이어 붙인 것처럼 보였다. 어디를 펴 봐도 한 문단이 서너 줄을 넘지 않았다. 흡사 종이로 된 트위터였다. 요즘 사람들의 문해력이 떨어진다는 소리는 많이 들었지만 이 정도인지는 몰랐다며 혀를 찼다. 그러나 어찌되었건 이게 지금 가장 많이 팔린다. 출판기획자인 아내는 잠시 후 한숨을 거두더니 오히려 이런 책에서 우리가 배워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다. 베스트셀러 하나 만들기가 얼마나 어려운 줄 아느냐는 것이다.
베스트셀러를 읽지 않는 걸 자랑처럼 얘기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게 취향일 순 있어도 자랑까지 되는 건지는 모르겠다. 수준이 낮고 단순해 보여도 대중이 원해서 베스트셀러 자리까지 올려놓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베스트셀러 작가 중에 글을 못 쓰거나 문장이 후진 사람은 거의 없다. 아무리 통속적인 내용의 글을 쓴다고 해도 기본 필력이 없으면 이야기를 만드는 것부터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글은 감성이나 상상력도 중요하지만 문장력, 맞춤법 같은 기본기가 뒷받침되어야 비로소 다른 사람들에게 읽힌다. 맞춤법 정도는 출판사에서 나중에 다 점검해 주지 않느냐고 물으신다면 그렇지 않다고 말씀드리겠다. 세상의 그 어떤 편집자나 심사위원도 맞춤법이 엉망인 채 보내온 작가의 글은 열심히 읽어주지 않을 테니까.
영화도 마찬가지다. 요즘 흥행하는 영화 '한산: 용의 출현'을 보았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은 단 한 번이라도 지면 큰일 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그는 23전 23전승을 기록하고 죽는다(이순신 장군이 죽는 것도 스포일러라고 하시면 곤란하고요). 나는 이순신이 홀로 종이를 펴놓고 앉아 학익진을 구상하는 장면을 보면서 장군과 똑같은 입장에 서서 고민했을 김한민 감독을 떠올렸다. 유치했든 '국뽕'이었든 전작 '명량'은 1,761만 명이 관람한 국내 관객 동원 1위 작품이다. 이번 작품 또한 전작 못지않게 엄청난 자본과 이해관계가 얽혀있을 게 뻔하니 그 스트레스가 얼마나 클까. 신경 써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을까.
그래서 이 작품을 IP-TV나 컴퓨터 화면이 아닌 아이맥스 영화관에서 보기로 결심했다. 어느 것 하나 잘못해서 흥행에 실패하면 큰일 나는 영화여서 그런지 작품 곳곳에 감독과 제작자의 염려와 배려가 묻어났다. 심지어 해상 전투신에서 포탄이나 배 부딪히는 소리에 묻혀 대사가 안 들릴까 봐 우리나라 배우들이 말을 할 때도 자막이 나올 정도다. 관객을 위해, 흥행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다 한다는 감독의 마음이 읽혀서 잠시 숙연해졌다. 영화를 본 뒤 내가 쓴 리뷰를 읽은 한 드라마 제작사 대표는 '큰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고 좋은 결과까지 내는 사람은 무조건 존경받아야 마땅하다. 일도 일이지만 그들은 엄청난 감정 노동에 시달리는 사람들이다'라는 댓글을 달았다.
베스트셀러엔 당대의 시대정신이 들어 있는 법이다. 이 영화에 들어 있는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생각했다. 이순신이 거두었던 것처럼 우리에게 승리의 경험이 필요한 걸까, 아니면 이순신처럼 통솔력 있고 자애로운 리더가 필요한 것일까… 블록버스터를 봤는데도 뒷맛이 개운하지 않다.
편성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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